“2011년 7월이었어요. 코레일에서 성명을 냈죠. ‘서울역에 거처를 둔 노숙인들을 강제 퇴거시키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강제로 밀려나면 이분들은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노숙인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학교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죠.”
[창간 3주년 특집] ‘옷걸이’로 시작한 착한 기업의 꿈
두손컴퍼니 대표 박찬재
1987년생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4학년 휴학 중 연합동아리 ‘인액터스’ 활동
2012년 7월 두손컴퍼니 사업자 등록
2013년 1월 두손컴퍼니 법인 등록
2012년 두손컴퍼니 대표


성균관대 연합동아리 인액터스에서 활동하던 박찬재 학생은 ‘두손컴퍼니’ 박찬재 대표이기도 하다. 두손컴퍼니의 ‘두손’은 ‘노숙인들이 일하고자 하는 손과 돕고자 하는 손이 만났다’는 의미와 영어의 ‘DO’에서 따왔다. 두 개의 손이 합쳐져 일을 한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인액터스는 ‘비즈니스를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모토로 뭉친 국제 연합동아리죠. 그 안에서 노숙인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처음엔 저까지 4명이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8명 정도가 함께하고 있는데, 상근 인원은 저와 마케팅을 맡고 있는 후배 두 명이에요.”
[창간 3주년 특집] ‘옷걸이’로 시작한 착한 기업의 꿈
‘지역사회의 문제를 비즈니스로 푼다’는 모토는 박 대표가 항상 고민해왔던 여러 사회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였다. 노숙인들의 주거와 복지 문제도 마찬가지. 물고기를 선물하기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이들이 자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키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박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종이옷걸이’ 제작이다. 세탁소에서 사용하는 기존의 철제 옷걸이 대신 노숙인들이 만든 종이옷걸이를 사용하자는 것. 수익 모델은 간단하다. 종이 부분에 기업 등의 광고를 유치한 후 제작에 나선다. 옷걸이는 세탁소에 무료로 배포돼 광고 효과를 거두게 된다. 옷걸이 제작은 노숙인들의 몫이다. 광고 단가는 옷걸이 한 개당 500원, 제작에 참여한 노숙인들이 받는 돈은 옷걸이 개당 100원이다.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기업 꿈꾼다

프로젝트 시작까지 치면 2년, 사업자 등록은 지난해 7월, 정식 법인 등록은 올해 초에 마쳤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젊은 청춘들의 패기, 여기에 노숙인 자활이라는 사회적 의미까지 더해졌지만, 현실의 벽은 그리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실생활에 많이 쓰이는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광고나 마케팅에 나서면 사업성이 클 거라 판단했어요. 옷걸이를 사업 아이템으로 잡은 이유예요.”

사업의 핵심은 광고 영업이다. 하지만 대학생 신분으로 기업의 높은 벽을 뚫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인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으로선 무작정 전화부터 돌리고 미팅을 잡아나가는 게 전부.

광고주도 검증된 마케팅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아이디어만 믿고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지금까지 LG생활건강, 에뛰드하우스, 공연기획사, 성균관대 창업지원센터 등의 광고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보수적인 성향은 세탁소가 훨씬 심하다. “공짜로 드리겠다”고 해도 거절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역시 제일 힘든 게 영업이에요. 인력이 충분한 상황도 아니어서 더 그렇죠. 새로운 시도이다 보니 일단은 계속 설득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정부의 청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돼 2700여만 원의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이 돈이 없었다면 사업은 꿈도 꾸기 힘들었을 거라 말하는 박 대표. 유급 근로자 유무, 정규직 근로자 채용 등 사회적기업 선정 조건에 못 미치는 항목이 있어 현재로서는 별다른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창간 3주년 특집] ‘옷걸이’로 시작한 착한 기업의 꿈
“사회적기업이라는 말 대신 ‘소셜 벤처’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일자리와 이윤 창출은 물론이고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이나 가치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을 소셜 벤처라 하죠.”

취업 대신 창업, 그것도 돈 많이 버는 대박 아이템이 아니라 노숙인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늦둥이 외아들을 보는 부모님의 시선은 걱정 반 믿음 반이다. 학교 친구들 사이에선 취업 대신 기업을 직접 설립한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며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창업을 취업의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꾸준히 소셜 벤처에 대한 꿈을 키워왔거든요. ‘하다 안 되면 취업하지’ 하는 생각은 금물이에요.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감수할 수 있다면, 그때 도전하세요. 2년 전만 해도 옷걸이를 파리라는 생각은 꿈도 못 꿨죠. 하지만 지금은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모든 걸 걸고 있어요.”

박 대표의 꿈은 두손컴퍼니를 넘어선 ‘두손그룹’이다. 이후 교육, 기술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한다는 계획. 이를 통해 저소득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솔루션으로 두손그룹이 앞장서길 바라고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왜 그 일을 하는지’ 다른 사람이 가르쳐주는 데 익숙해요. 특히 대학생의 경우 한 번 취업하면 모든 게 끝나버리죠.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내가 왜 이 일을 하려는지’ 진지한 물음을 던져봤으면 해요. 그게 뭐가 됐든 간에.”



글 장진원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