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말 못할 상처를 가진 찰리(로건 레먼)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어느 날 찰리는 타인의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는 샘(엠마 왓슨)과 패트릭(에즈라 밀러) 남매를 만나 스스로를 불량품이라 일컫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찰리는 샘을 사랑하지만 샘은 언제나 자신보다 훨씬 못한 남자들과만 어울리며, 게이라는 비밀을 숨긴 패트릭 또한 남들 앞에 떳떳이 연인을 소개할 수 없는 고통을 애써 모르는 척한다. ‘월플라워(Wallflower)’는 파티 등에서 아무도 말을 걸거나 춤을 신청하지 않아 벽 앞에 서 있기만 하는 인기 없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영화 ‘월플라워’에서 그 뜻은 조금 더 확장된 의미로 나아간다.
파티로 은유되는 인생 자체에 섣불리 끼어들지 못하고 언제나 지켜보거나 기다리기만 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더 가까워진다. 패트릭이 이름 대신 ‘아무것도 아닌 애(nothing)’로 불리는 건 세상의 모든 월플라워의 악몽이자, 또래들 사이에서 어떤 전형성의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아도 되는 커다란 가능성 양쪽 모두로 기능한다.
주인공들에게는 모두 약점이 하나씩 있다. 찰리에게는 죽은 이모와 친구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그는 그 기억들을 회피한다. 샘은 언제나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남자들과 구질구질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염증을 내면서도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패트릭은 언제나 쾌활하고 자신만만한 모습만을 내보이지만 성 정체성을 감춰야만 하는 고통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영화는 16, 17세에 불과한 이 소년소녀들이 어떻게 벽에서 등을 떼고 걸어나와 무리 속에 섞여들어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춤을 신청하게 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10대 청춘물의 꽤나 전형적인 구도로 시작하지만, 영화의 말미는 그런 전형성 안에서 몸을 비틀고 빠져나와 “나는, 우리는 무한하다”라는 외침으로 이어지기까지 설득력 있는 현실성을 담보한다. ‘월플라워’는 이제 막 인생의 첫 단계에 접어든 어떤 청춘에게는 ‘바로 내 이야기’라는 한숨 섞인 탄성을 내지르게 할 것이다.
주인공들의 쉽지 않은 방황에 열에 들뜬 듯한 청춘 특유의 분위기를 더해주는 건 음악이다. 스미스, 모리시, 에어로스미스, 데이빗 보위, 뉴 오더, 페이브먼트 등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을 망라하는 음악들이 주인공 심리와 동시에 관객들의 심정과 추억까지도 근사하게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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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용언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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