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나의 길

프로 바둑기사 입단 시험에 실패한 한국기원 연수생 장그래가 대기업 종합상사에 인턴으로 들어간다. 과로로 늘 눈이 빨간 오 과장, ‘버디’ 김 대리, 무결점 만능 인턴 안영이 등 어느 회사에나 있을 법한 인물들과 함께 있을 법한 일들을 겪는다. 웹툰 ‘미생’의 이야기다. 인턴과 취업, 그 이후에 따라오는 직장 생활까지 세밀하게 묘사해 직장인뿐만 아니라 대학생에게 인생의 가이드라인을 던져주고 있는 ‘미생’의 윤태호 작가를 만났다.
인기 웹툰 ‘미생’ 윤태호 작가 “도장을 꾹 찍듯이 하루하루 찐~하게 삽시다”
윤태호 약력

● 1969년생
● 1993년 ‘비상착륙’으로 데뷔
● 대표작 ‘야후 YAHOO’, ‘로망스’, ‘내부자들’, 웹툰 ‘이끼’, ‘미생’ 등
● 1999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우리 만화상
● 2002년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저작상
● 2007년 대한민국출판만화대상 우수상
● 2008년 부천만화상 일반만화상
● 2010년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만화부문 대통령상
● 2012년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만화부문 대통령상
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대우 교수
인기 웹툰 ‘미생’ 윤태호 작가 “도장을 꾹 찍듯이 하루하루 찐~하게 삽시다”
인기 웹툰 ‘미생’ 윤태호 작가 “도장을 꾹 찍듯이 하루하루 찐~하게 삽시다”
‘미생’ 의 인기가 뜨겁다. ‘미생’은 어려서부터 바둑만 보고 자랐으나 끝내 프로기사 입단에 실패한 청년 장그래가 대기업 종합상사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 상사맨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웹툰이다. 바둑과 직장 생활. 바둑에 문외한이거나 직장인이 아니라면 언뜻 지루하기만 할 소재다. 그러나 무뚝뚝한 소재는 작가 특유의 탄탄한 스토리와 폐부를 찌르는 명문장을 만나 최고의 흥행을 이뤄냈다. 인기를 반영하듯 ‘미생’은 단행본으로도 출간됐다.

만화작가를 지망하는 대학생 기자와 함께 세종대에서 ‘미생’의 윤태호 작가를 만났다. 윤 작가는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강의를 막 마친 참이었다. 작품 활동과 취재, 강의, 언론 인터뷰를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그의 눈은 오 과장의 그것처럼 빨갰다.

“전작인 ‘이끼’가 준비부터 연재 끝까지 5년 걸렸어요. 지금 하는 ‘미생’도 그 정도 걸릴 것 같고요. 그렇게 계산해보면 제가 60세까지 그릴 수 있는 타이틀이 3개밖에 안 남은 셈이죠. 매우 신중하게 잘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인터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독자들한테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작품을 만들어서는 안 되니까요. ‘이끼’ 전에 슬럼프 기간 동안 출판사나 신문사에서 많이 까였는데, 그 이유가 지명도가 없어서였거든요. 정말 ‘윤태호’라는 이름을 갖고 싶었죠.”
인기 웹툰 ‘미생’ 윤태호 작가 “도장을 꾹 찍듯이 하루하루 찐~하게 삽시다”
‘미생’은 ‘이끼’와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좀 더 건설적이고 따뜻하달까요. ‘미생’에서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건가요.

“기본적으로는 ‘샐러리맨’이라고 퉁쳐서 판단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각자의 존재 가치를 부여해주고 싶은 욕심이에요. 이 만화를 보고 나서 월급쟁이 남편 또는 아버지가 직장에서 하는 일이 뭔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고, 샐러리맨 스스로는 자기 일에 대해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거죠. 실제로 그런 댓글도 봤고요.”



그걸 보여주는 틀이 왜 하필 바둑인가요.

“바둑은 한판 끝났다고 바로 일어서서 가는 게 아니라 ‘복기’를 하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자기 반성적이고 사색적이에요. 주인공 장그래는 그런 바둑의 가이드를 가진 캐릭터죠. 사색적이고 자기 반성적인 눈으로 샐러리맨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목격하고 담담하게 묘사하고자 했어요.”



그래서인지 ‘미생’에서는 악역을 찾기 힘들더군요. 특히 주인공 장그래는 유독 남보다 자신을 탓하고요. 사실 직장인들의 공감을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소재는 ‘미운 상사’일 텐데요.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서 끊임없이 핑계를 대지만 사실 가장 큰 불만은 자기 자신이거든요. ‘난 왜 이렇게밖에 못하지’라는 생각, 거기서 탄력을 받아 남을 욕해요. 모든 갈등의 시초는 자신인 거죠. 잘 보세요. 난 어떤 사람이 엄청 싫어요. 그런데 누군가는 그 사람을 좋아해요. 그렇다면 결국 ‘내가’ 싫어하는 거예요. ‘미생’에서는 그런 기만을 없애자는 생각이었어요. 자기 문제에서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소박한 분투기를 그리고 싶었던 거죠.”
인기 웹툰 ‘미생’ 윤태호 작가 “도장을 꾹 찍듯이 하루하루 찐~하게 삽시다”
드라마나 영화 제작 제안은 없습니까.

“‘미생’은 드라마 쪽에서 많이 와요. 영화 쪽에서 오기도 하는데 딱히 사겠다기보다는 ‘팔렸어요?’ 이렇게 간 보듯이 물어보네요.(웃음) 우선 연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생각해봐야죠.”



기업 문화나 에피소드의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합니다. 취재는 어떤 식으로 하셨나요.

“취재하려고 실제 상사에 연락했는데 다 거절당했어요. 그러다 알음알음으로 종합상사에 다니시는 분들을 알게 돼서 취재에 도움을 받고 있죠. 저는 직장 생활을 전혀 안 해봤어요. 과장이 높은지 부장이 높은지도 몰랐을 정도로 조직을 몰라요. 그래서 취재라기보다는 거의 스터디 분위기예요. 저는 참한 학생이 되는 거죠. 요즘 직장인들이 굉장히 스마트한 것 같아요. 공부도 오래 했고 PT가 일상이어서 설명을 정말 조리 있게 잘해주세요.”



‘미생’에는 공감을 부르는 명문(名文)이 많습니다. 원천이 어디인가요.

“저는 후회가 많은 성격이에요. ‘그러지 말았으면’ ‘그때 그랬으면’ 했던 것을 메모해서 많이 써요. 제가 후회하고 살았던 일들을 문장화하고 그것을 소박한 언어로 만들려고 애씁니다. 많이 꾸민 느낌이 들지 않으면서도 멋있는 말로요. 만화는 문학이 베이스이기 때문에 좋은 문장력은 필수죠. 그래서 좋은 문장에 대해 예민해지려고 노력해요. 또 멋진 말이 되려면 적재적소에 말이 들어가야 해요. 그러려면 이 상황에서 요구되는 바가 뭔지를 작가가 제대로 알아야 하고요.”
인기 웹툰 ‘미생’ 윤태호 작가 “도장을 꾹 찍듯이 하루하루 찐~하게 삽시다”
초반에 주인공의 인턴십 생활이 나옵니다. 취재하면서 알게 된 팁이 있을까요.

“PT 면접 장면이 있어요. 전문가들한테 조언을 들으면서 내린 PT 면접에 대한 제 결론은 ‘정말 열심히 준비하되 소박해라’였어요. 면접장에 나오는 임원들은 진짜 고수예요. ‘미생’에서 임원이 면접자와 계산 대결을 하는 장면이 나와요. 임원이 ‘오랜만이라 잘될까 모르겠네’라고 말하죠. 그런데 나중에 취재원이 말하더라고요.

‘작가님, 사실 대기업 임원이란 건 그런 일을 암산으로도 끝내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반성 많이 했죠. 제가 너무 피상적으로 네거티브하게 생각했지만 억대 연봉을 받는 임원에게는 그만한 격이 있었던 거예요.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면접장에 오기 때문에 이들은 다 알아요. 얼마나 말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는 걸 감추려고 노력하는지요. 그래서 소박하되 열정적으로, 그리고 준비는 칼같이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네요.”



인턴이나 신입사원의 전반적인 생활에 대해선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취재하다 보면 좋은 팀이나 상사를 바라기 전에 좋은 신입이 돼야 한다는 지적은 꼭 있더군요. 취재원들도 그렇게 말하고, 제2의 취재원인 웹툰 댓글에도 그렇고요. 오 과장이나 영업3팀을 꿈꾸기 전에 내가 먼저 장그래가 돼야겠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또 다들 도장을 꾹 찍듯이 하루하루 진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 오늘 하루 좋았어’ 하면서 푹 쉬어도 좋을 정도로 자기가 만족하는 수준이 있잖아요. 게을렀던 건데 여유 있게 쉰 것처럼 기만적으로 자기 포장하지 않고요.”



윤태호 작가는 누구보다 하루하루를 꾹 눌러 살아온 이다. 대부분의 만화작가가 그렇듯 윤 작가도 소싯적 작은 동네의 ‘그림 천재’로 시작했다. 당연하듯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세가 기울면서 방황의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 제대로 된 미술학원에도 다니지 못했고 선배의 화실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지냈다. 누구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 때문에 가난에 대한 심적 부담이 강했다고 한다. 윤 작가의 부친은 비싼 미대 등록금 때문에 그에게 대학 진학 포기를 권유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굉장히 분노에 차 있었어요. 나보다 못하던 애들도 번듯한 미대에 들어갔는데 나는 실패하는 상황 자체가 짜증이 났죠. 그래서 다짜고짜 아버지께 만화 그리겠다고 했어요. 지금으로 치자면 ‘나 가수 할래요’ 같은 거예요. 전혀 모르는 다른 세계의 직업인데, 당시에는 뭔가 단단히 화가 나 있던 상황이라 내뱉은 거죠. 그 기백에 놀라셨는지 아버지께서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곧바로 7개월치 만화학원비만 들고 상경했다. 노숙과 라면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중 우연히 허영만 화백의 주소를 알게 됐다. 찾아가 문하생을 자청했다. 이후 허영만 작가와 조운학 작가의 화실에서 실력을 쌓고 1993년 ‘비상착륙’으로 데뷔했다.

“쫄딱 망했죠. 제가 봐도 영 아니더라고요. 스토리도 그렇고. 그림은 어느 정도 됐는데, 결국 스토리와 상관없이 잘 그린 그림은 아무 소용없거든요. 다시 조운학 선생님 문하로 들어가서 2년 동안 스토리 공부만 했어요. 책 읽고, 스토리 습작하고, ‘모래시계’ 대본이나 최인호 소설 필사하고요. 장르문학도 탐독했어요. 욕망이 뚜렷하거든요. 속여야지, 감춰야지, 웃겨야지. 유머란 것도 구조화돼서 작전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나와요. 그런 면에서 장르문학의 학습 효과가 좋죠.”
인기 웹툰 ‘미생’ 윤태호 작가 “도장을 꾹 찍듯이 하루하루 찐~하게 삽시다”
그때 경험이 지금 작품에도 도움이 많이 됐겠군요.

“그렇죠. 처음에는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어요. 소설 많이 읽으면 저절로 글 쓰는 재주가 생기는 거라고 착각했죠. 다행히 운 좋게도 ‘스토리에는 각이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어요. 아무래도 허영만 화실 출신이라는 자존심 때문인 것 같아요. 선생님도 머리 싸매고 스토리 쓰시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술술 나오는 게 스토리가 아니다’라는 각성이 있었던 거죠.”


이후 다시 데뷔해 ‘혼자 자는 남편’ ‘연씨별곡’ ‘춘향별곡’을 거쳐 사회고발 성격의 ‘야후’로 출판만화에서 자리매김하셨습니다. 그러다 돌연 웹툰으로 방향을 바꿔 ‘이끼’를 연재하기 시작하셨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대중 작가는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내 작품을 발표하고 싶어합니다. 출판만화에 독자가 많이 없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였죠.”

하지만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넘어간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은데요.

“심리적인 진입 장벽이 있어요. ‘이끼’가 처음 연재된 곳은 포털이 아니고 유료 만화 사이트였어요. 처음 웹툰을 시작하기 힘들었던 이유가 후배들이 만든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그것도 출판만화가 흡수하지 못한 후배들. 그들이 한을 풀어놨던 공간이 유명해지니까 기성작가가 들어가는 게 반칙 같잖아요. 그러다 누가 유료 사이트를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무료 포털이 아니라 새로운 유료 사이트라면 후배 눈치 안 봐도 되겠다 싶어서 했는데, 그 사이트가 잘 안 돼서 망하고 포털 쪽에서 연락이 와서 옮기게 된 거죠.”



출판만화와 웹툰 작업에 차이가 있을 텐데, 어떤 부분이 어려웠습니까.

“실재하는 원고가 없다는 것. 그리고 댓글에 대한 공포. 출판만화는 비교적 폐쇄적으로 작업해요. 피드백도 거부하면 안 볼 수 있고요. 그런데 웹툰은 끊임없이 댓글이 올라와요. 사람의 호기심이 스스로를 죽인다고 거기에 지옥이 있는 걸 알면서도 보게 돼요.

그리고 리듬이 달라요. 출판만화는 책장을 넘기면서 예측을 해요. 전문가건 아니건 알게 모르게 학습된 게 있죠. 그런데 웹툰은 그게 전혀 다르거든요.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이끼’에서는 3~4회 정도 지나고 자동감지센서 전등이 켜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서야 제 예측대로 리듬이 나오고 감이 잡히더군요.”
인기 웹툰 ‘미생’ 윤태호 작가 “도장을 꾹 찍듯이 하루하루 찐~하게 삽시다”
그 장면은 영화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원작자로서 영화 ‘이끼’는 어땠나요.

“제가 스태프처럼 끼어서 같이 작업을 한 거라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제 탓도 있죠. 이런 게 있더라고요. 방점을 어디에 둘 것이냐, 힘을 어디에 줄 것이냐가 만화랑 호흡이 달라요. 만화는 페이지가 넘어가니까 이것도 살리고 저것도 살릴 수 있는데 영화는 강제적인 흐름이 있다 보니 다른 방점은 힘을 뺄 필요도 있더라고요. 자동감지센서 장면이 대표적이죠.”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 자체가 전단지 역할을 해줘요. 작품에 별점이나 댓글이 있으니까 영화사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모든 검증을 할 수도 있고요. 또 웹툰은 안정적인 영상도 확보가 되니까 유리한 거죠.”



만화계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신호 아니겠습니까.

“만화가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타 매체로 전환이 이뤄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작품의 아이디어를 생각할 때 범주도 넓어지고, 물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요. 다만 다른 매체 전환이 용이한 작품으로만 아이디어 구상이 발현될까 우려도 해요. 그런 작품만 좋은 작품이라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웹툰 시장의 전망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나요.

“디지털 만화 시장은 계속 뻗어나갈 것 같아요. 새로운 디지털 도구와 기술이 생길 때마다 확산되고, 출판만화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디지털 콘텐츠를 무료로 시작할지, 유료로 할지에 대한 최초 접근 방식이 중요하겠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본 만화는 무엇입니까.

“‘슬램덩크’요. 작가가 캐릭터를 다루는 태도가 남달라요. 어떤 캐릭터도 놓치지 않고 가죠. 기계적으로 캐릭터를 배려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권준호라는 조연이 작품의 가장 하이라이트, 빛나는 순간에 들어가요. 권준호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걸 보는 것 자체가 작가한테 캐릭터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다는 거예요.”



처음에 잠깐 슬럼프를 언급하셨는데, 작품 활동이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그냥 앉아 있어요. 자리를 피해서 슬럼프를 극복하는 버릇이 생기면 자꾸 거기에 의지할까봐요. 저는 연재를 길게 하는 스타일이라서 그 자리에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돼요. 자학적으로라도 자리에서 해결을 보려 하죠.”



나름 성공한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음 작품이 궁금해요. 다음에 할 작품을 상상하는 게 즐거워요. 그걸 생각하면 지금 힘든 걸 버틸 수 있어요. 그 상상이 허무맹랑한 게 아니라 구체화되면 현실감 있게 재밌어져요. 그러다 보면 내가 원치 않는 작업을 하게 되는 실수의 폭이 줄어들죠. 자연히 내가 하려던 목적에 맞는 작품을 하게 되니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미생’ 다음으로 구상하고 있는 작품을 여쭤봐도 될까요.

“일단 인천상륙작전하고 신안 앞바다 보물선 도굴꾼 얘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때 가봐야 알아요. 그때 가서 가장 탐나는 게 있으면 그걸 하려고요.”



글 함승민 기자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