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역병이 돌고 있다. 첫 신고자는 장 씨였다. 장 씨는 지난해 9월 말 멜버른의 한 공원에서 감염자들을 마주쳤다. 평범한 10대로 보이던 아이들은 장 씨에게 린치를 가하고 떠났다. 장 씨는 새끼손가락이 잘리고 왼팔이 부러졌다. 장 씨는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역병이 돌고 있다니까!” 장 씨는 인터넷으로 위기를 알렸다. 감염자들을 조심하라.

감염자들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10월 13일에는 김 씨가 귀가하던 중 자신의 집 근처 주택가에서 감염자들에게 당했다. 11월 25일에는 브리즈번 런콘 지역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진 조 씨가 통화 중에 감염자 2명에게 습격을 당했다. 11월 30일에는 골드코스트 사우스포트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감염자 3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감염자들은 겉으로 봐서는 감염 여부를 알 수 없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며 죄책감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말끝에 염병(fucking)을 붙인다고 한다. 증언에 따라 말을 풀이해보면 “역병에나 걸려라, 아시아인들아”가 된다.
[이종산의 이슈탐정소] 호주 역병 사건
역병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감염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비이상적인 감염 속도, 누군가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희생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는데도 호주 정부와 경찰은 역병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아시아인만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욱 완고하게 부인했다. “인종차별이라니, 절대 그럴 리 없어요.”

정부와 경찰은 감염자의 특징을 거의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까지 감염된 것이다. 호주에 갈 비행기 티켓 값은 수중에 없었다. 호주는 무슨. 히트텍이나 사러 가야지. 시내로 나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히트텍 광고 옆에 낙서가 있었다. 염병할 조선인, 조선인 OUT. 빨간 글씨로 휘갈겨진 그것은 감염자의 표식이었다.

벌써 여기까지 퍼진 거야? 다음 정류장에도, 그 다음 정류장에도 표식이 남겨져 있었다. “역병이 돌고 있어요. 조심하세요.” 나는 단골식당으로 달려가 조선족 이모에게 속삭였다. “역병 돈 지 오래됐어.” 이모가 혀를 차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감염자가 병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역병의 증상 중 하나라고 하던데. 나도 혹시 감염자가 아닐까? 염병, 그럴지도 몰라. 자각이 시급하다.


시사 키워드 다시 읽기

⊙ 2012년 9월 27일 호주 멜버른의 한 공원에서 한국인 유학생 장 모 씨가 백인 십대 10여 명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함.

⊙ 호주 경찰 “당신이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며 소극적 대응.

⊙ 장 씨가 경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문제점과 억울함을 호소한 글을 인터넷에 게재.

⊙ 2012년 10월 13일 시드니에서 김 모 씨가 집 근처 주택가에서 괴한에게 집단 폭행당함.

⊙ 2012년 11월 25일 워홀러 조 모 씨가 밤에 집 근처에서 휴대전화를 훔치려는 백인 2명에게 폭행당함.

⊙ 호주 주요 도시에서 잇따라 발생한 한국인 무차별 폭행 사건이 이슈화되자 호주 내 한인 사회에서 “실은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음.

⊙ 호주 정부와 경찰은 연쇄 폭행 사건이 인종차별과 무관하다고 주장. 자국 경제를 떠받치는 유학·관광 양대 산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임.



이종산

사건의 여파를 추적하는 이슈탐정소장. 잡글이라면 다 쓰는 잡문쟁이. 한량 생활에는 염증이 나고 샐러리맨이 되기는 두려운 졸업 유예자로 캠퍼스를 어슬렁대고 있다. rolel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