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커피 한잔
‘보다 독하게’를 지향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홍수 속에서 따뜻한 경쟁으로 주목받았던 마스터셰프코리아(이하 마셰코). 어떤 맛일지 상상할 수밖에 없는 화려한 요리뿐 아니라 심사위원과 출연자들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그러나 마셰코가 배출한 진짜 스타는 가수 박선주와의 깜짝 결혼으로 많은 여성팬을 아쉽게 만들었던 훈남 강레오 셰프도, 우승 상금 3억 원의 주인공인 김승민 씨도 아닌, 서문기 씨가 아닐까.

하지만 그는 엄연히 마스터셰프에 도전하기 위해 호주에서 날아온 ‘경상도 사나이’라는 사실. 인터뷰 중 “남자라면 누구나 야망이 있다”고 말하는 귀요미라니. 심지어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다. 이쯤 되면 사심 가득 인터뷰되시겠다.

1991년생
경북생활과학고 졸업
호주에서 요리 수업
올리브TV ‘마스터셰프 코리아’ 톱5
현재 올리브TV ‘오프닝’ ‘쿡파라치’ 출연 중
“오늘 진짜 최고인데요?”
이날 인터뷰를 함께한 두 명의 동갑내기 미녀 여대생 기자를 보고 환하게 웃던 그가 건넨 첫마디다. “마셰코도 그렇고, 고등학교 졸업 후엔 또래들과 어울린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만 보면 정말 좋더라고요.” 대학생 기자들 덕분에 친구들과 이야기하듯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가장 먼저 물었다.
“초등학교 때 몸무게가 100kg 가까이 나갔어요. 어머니께서 살 좀 빼라며 춤을 배우게 하셨죠.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는데도 밥 먹는 것보다 춤추는 게 좋을 정도로 빠져들었어요. 4개월 만에 30kg을 뺐고요. 춤꾼이 되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많이 반대하셨죠. 그런데 철이 없을 때니까, 어머니가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춤을 그만둬야지’가 아니라 ‘안 보이는 데서 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향인 대구 경산을 떠나 구미에 있는 경북생활과학 고등학교 조리과에 입학했다. 요리엔 큰 관심이 없었다. 대신 구미의 유명한 댄스팀에 들어가 춤을 췄다. 그러다 고2 때 첫사랑을 만났다.

결국 첫사랑은 실패. 대신 ‘셰프 서문기’의 길이 시작됐다. 1년간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제과, 제빵 자격증을 따고 나갈 수 있는 요리대회는 모두 나갔다. 가다가 픽픽 쓰러질 정도로 먹지도 않고 춤만 추던 때의 무서운 집중력을 또다시 보여주던 시절이었다.
“제가 멀티태스킹이 잘 안 돼요. 하나에 집중하면 그것만 생각하니까요. 주위에서 말을 걸어도 대답을 못해서 혼난 적도 많아요. 호주에선 영어 못해서 그런다고 오해도 받았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돈이 없어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초기 정착비만 들고 호주로 갔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지만 한 달 만에 사기를 당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일을 배우고 돈을 벌었다.

어떤 동료는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보지 말라며 경계할 정도였다. 기술을 배우고 손님을 맞을 수 있게 되자 그는 밤새 연습하며 서문기만의 기술을 개발했다. 단골손님에게 ‘여기서 네가 최고’라는 칭찬도 받았다. 그런데 곧 재미가 없어졌다. 고급 요리를 하는 파인다이닝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일식을 전공한 한국인 총괄셰프를 만나 1년간 동고동락하며 요리를 배웠다. 형이라 부르며 따랐던 그 셰프는 서문기에게 “나한테 다 배웠으면 빨리 떠나라”고 말하곤 했다. 시간이 흐르며 파인다이닝 일도 익숙해졌다.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이었다. “어린 나이에 요리사로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경우는 제가 최초인 것 같아요. 셰프들은 보통 30대 이후부터 주목받기 시작하거든요. 방송의 힘인 것 같아요.” 방송 전후 달라진 점이 많지만 “즐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청춘이다. 계속 경쟁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마셰코 출연으로 얻은 것 중 하나가 반드시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방송을 통해 낱낱이 실력을 검증받았기에 당당할 수 있다.
“앞으로 외국을 다니면서 각 나라의 요리학교를 가겠다는 계획이 있어요. CIA나 르꼬르동블루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강레오 셰프님도 200만 원만 들고 무작정 런던으로 갔었대요. 그래서 제 호주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그의 생각은 학벌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돌직구’인 셈.
“지금은 저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30대가 되기 전에 제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내고 싶습니다. 요리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경영이에요. 음식의 퀄리티와 식당의 이익을 맞추는 게 힘드니까요. 제가 사업에도 관심이 많은데, 미리미리 공부해서 셰프와 사업가의 접점을 잘 찾고 싶어요.”
그는 미래에 대한 포부가 뚜렷한 청년이다. 구도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플레이팅을 배우며 자연스레 건축학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30대 이후에는 건축학 등 다른 분야를 배우고 싶단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김소희 셰프는 그에게 “너의 1년, 2년, 3년, 4년 후가 궁금하다”며 “최대 4년 안에는 뭔가 해낼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글 김효원 객원기자┃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인터뷰 동행 신지수 대학생 기자(동국대 경제 3)·류다영 대학생 기자(동국대 회계 2)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