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나를 웃고 울린 아랍 환자들

△최예슬 씨가 아랍에서 온 환자 친구와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최예슬 씨가 아랍에서 온 환자 친구와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한경잡앤조이=최예슬 하이메디 매니저]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요?’ 내가 종종 듣는 질문 중 하나다. 4년 전 하이메디에 입사한 이후로 정말 많은 아랍 환자들을 만났는데, 이 질문을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환자가 있다.

마르암은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난 환자다. UAE(아랍에미리트)에서 온 30대 여자 환자였고 보호자로 남편과 아들 두 명이 함께 왔다. 아랍에서 온 중증 환자들은 가족 단위로 움직이고 평균 4명, 많게는 10명 이상이 함께 한국으로 와 같이 거주하기도 한다.

당시 마르암은 간 이식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이 잘 됐지만 안타깝게도 수술 전 상태가 너무 안 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꾸준히 재진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한 번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위해 또 한 번은 부러진 팔을 수술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렇게 거의 매년 마르암 가족을 만났다.

마르암이 팔이 부러진 상태로 한국에 왔을 때는 속상한 마음에 “이 수술은 UAE에서도 가능할 것 같은데, 빨리 치료받지 왜 한국으로 왔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UAE의 의료환경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안 좋았다. UAE에서는 한국 병원처럼 협진이 가능한 병원이 없어서 간이식 및 무릎 관절 수술 등을 받은 이력이 있는 마르암은 ‘케이스가 복잡해 치료가 불가능하니 기존에 수술을 받았던 병원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병원으로 가기 위한 행정 절차가 진행되는 몇 개월 동안 팔이 부러진 상태로 몇 달을 지냈다고 한다.

이렇게 매년 마르암 가족을 만나다 보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생일이 되면 케이크를 사 들고 찾아가서 축하를 해주기도 하고, 무릎관절 수술을 받았을 때는 매일 찾아가서 재활치료를 도와주고 진심 어린 위로와 함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했다. 회사의 직원과 고객으로 만난 사이지만 이제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다신 안 봤으면 하는 환자들
아랍 분들은 한국인만큼 정이 많아서 꼭 성의 표시를 하고 싶어 한다. 귀걸이 등 액세서리를 주기도 하고, 옷, 향수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아랍인들은 향수를 정말 좋아해 사무실 서랍에 향수가 가득할 정도로 많이 받기도 했다. 선물을 주실 때면 극구 사양하지만, 나이가 훨씬 많은 환자나 보호자가 ‘어른이 주면 받아야지’라며 선물을 줄 때는 거절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 보면 한국과 아랍이 다른 점만큼이나 비슷한 점도 참 많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받았던 선물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선물이 있는데, 한 소아환자의 보호자가 준 선물이다. 만 4세 정도되는 간암 환자였는데,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간 이식을 받으려고 한국에 왔지만 그럴 경우 아이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니 환자 가족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망설였다. 결국 간 이식이 아닌 간 절제 수술을 받기로 했고, 정말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완치되었다. 수술과 회복을 위해 코로나19가 확산될 때에도 한국에 남아서 계속 치료를 받았던 가족인데, 얼마 전 한국을 떠나면서 작고 예쁜 쇼핑백을 담당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열어보니 문구점에서 산 귀여운 머리핀, 향초, 스티커, 볼펜 등의 잡화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선물을 고르고 포장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면서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고 예뻤다.

내가 배정받은 병원에는 소아병동이 있어서 아주 어린 외국인 환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 아이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 눈물이 금방 차오른다. 대부분 중증 환자라 정말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얼굴을 보게 되는데, 꽤 오랜 기간 함께 하다 보니 가끔씩 안부가 궁금해 보호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 너무 감사하게도 ‘덕분에 이렇게 건강해졌다’는 말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내주신다.

작고 소중한 그 환자들이 너무 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소아 환자의 경우 말 그대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많은 중증 환자들이 재진이 필요해 다시 한국을 찾게 되는데, 내가 만난 소아환자들은 재진이 필요 없을 만큼 수술이 잘 되고 예후가 좋아서 완치가 된 경우도 많다. 소아 환자를 대할 때면 보고 싶으면서도 다시는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꼭 한국에 있는 병원으로 보내주세요”
아랍 환자들을 만나면서 뿌듯한 순간 중 하나는 ‘반드시 한국에서 치료받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다. UAE의 경우 자국 내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의료 선진국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이때 모든 비용을 나라에서 지불한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에게는 선택권이 많은데, 세계적인 의료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미국, 독일, 일본이 아닌 한국에 가서 수술 받고 싶다고 말하는 환자들이 있다. K-의료가 이제는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고, K-Pop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대부분 가족, 친구 등 지인이 이미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난 뒤 엄지를 치켜들고 한국을 추천하기 때문이다. 환자들 입에서 한국 특히나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국위 선양에 아주 미약하나마 도움을 준 것 같아 큰 보람을 느낀다. 더 많은 아랍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가장 가고 싶은 나라로 ‘한국’을 꼽을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일해본다.


최예슬 씨는 우연히 시작한 아랍어에 빠져 아랍을 사랑하고, 사람 만나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다. 5년 전 외국인 환자 유치 스타트업 하이메디에 입사, 현재는 구독자 17만 명의 중동 전문 유튜브 ‘하이쿠리’를 기획, 촬영,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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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