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가는 당구장의 반란
[한경잡앤조이=이태호 올댓메이커 대표] 불경기가 지속되는 요즘,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이 있다.“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괜히 선뜻 새로운 일을 추진하려다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요즘 같은 시기에는 일 벌리지 말고 하던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다보니, 선뜻 무언가를 시도하기가 망설여진다. 보통 배짱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선 말이다. 이런 내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뭔가를 지속적으로 그려 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롭진 못한 것이 현재 나의 상태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나아짐이 보이질 않을뿐더러 ‘판’을 바꿔보겠다 했던 거창한 창업동기가 무색해 질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적은 비용으로 이룰 수 있는 '작은 혁신'에 집중하고 있다. 이 분야에 들어온 지도 이제 5년차가 되다보니, 호기심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로 불타올랐던 창업 초기보다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당구장은 혁신이 매우 느린 업종이다. 60대 고객이 경험한 당구장과, 지금의 10대가 경험하는 당구장이 아직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구장은 문제해결 요소가 없었던 것일까. 당구장에서도 변화를 시도했던 흔적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날로그 중심이었던 당구장에 디지털이 도입되기 시작한지가 불과 10년이 채 안됐다. 손으로 주판알을 빼던 방식에서 점수(평균 에버리지)를 관리하고, 수치화할 수 있는 디지털스코어판으로 대체되면서 전국 당구장에 빠르게 도입되었다. 이 디지털스코어판 도입 이후로 흔히 말하는 ‘다마 수’를 속일수가 없게 됐다.
당시에도 당구장 용품 중에서는 고가에 속했기 때문에, 보급이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구장에서 암묵적으로 내려오는 공식룰인 ‘패자가 게임비를 결제한다’라는 명제 하에 다마 수를 더 이상 속일 수 없게 된 것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이처럼 꼭 많은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 첨단 기술을 개발해야만 혁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이제는 본인의 당구샷을 영상으로 녹화해 모바일로 저장할 수 있을 정도까지 진화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당구대는 나무로 만들어진다. 수십 년째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우리가 만들어서 판매하는 당구대는 나무를 1%도 사용하지 않았다. 당구대는 나무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고 싶어,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그랬더니 견고하고, 공구름이 좋아졌다. 시장의 반응도 처음에는 여러 의문을 던졌지만, 곧장 익숙해져서 1년 만에 100대를 판매했다.
다음달부터, 우리는 당구대를 업계 최초로 온라인에서 팔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당구테이블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유통사들과의 유선방식을 통해 수기에 가까운 형태로 구매해야하는 방식이었다면, 당구대를 만든 회사에서 직접 홈페이지로 주문받는 형태는 최초다. 자동차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요즘, 당구테이블이라고 온라인으로 구매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수 있다.
경험이 감옥이라는 말이 있다. 더 경험치가 쌓여 익숙해지고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이 많아지기 전, 새로운 작은 변화를 쫓아야한다. 이런 작은 변화가 혁신의 시작점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태호 대표는 당구장 브랜드 ‘작당’을 운영하고 있다. 당구장 금연법 기사만 보고 무턱대로 흡연자들의 최후의 보루로 여기던 당구장이 금연법 시점으로 바뀔 것 같다는 촉 하나로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당구장 사업을 하고 있다.
<한경잡앤조이에서 '텍스트 브이로거'를 추가 모집합니다>
코로나19로 단절된 현재를 살아가는 직장人, 스타트업人들의 직무와 일상에 연관된 글을 쓰실 텍스트 브이로거를 모십니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 느꼈던 감사한 하루’, ‘일당백이 되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의 치열한 몸부림’, ‘코로나19 격리일지’, ‘솔로 탈출기’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직접 경험한 사례나 공유하고픈 소소한 일상을 글로 풀어내시면 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텍스트 브이로거 자세한 사항은 여기 클릭!>
khm@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