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약자 노인들이 찾는 ‘저렴한 동네' 종로
[우리도 언젠가 노인이 된다①]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창피스러워서..." 디지털 시대 속 설 자리를 잃은 노인들[우리도 언젠가 노인이 된다③] 왜 종로는 노인들의 놀이터가 됐을까?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 양정민 대학생 기자] 11월 11일 금요일 저녁, 종로5가 광장시장 앞 약국 거리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약국에는 약을 사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고객 대부분은 노인들이었다. 종로의 대표 약국인 A약국에서 일하는 약사 장용호(65・가명)씨는 손님들이 찾는 약에 대해 설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다른 지역의 약국에 비해 비타민 등 판매약 가격이 저렴했다. 다른 곳에서 60알 2세트를 기준으로 5만원에 팔리는 비타민 제품이 이곳 종로에서는 100알 2세트 기준으로 6만 5천원에 팔리고 있었다. 다른 곳에선 한 알에 416원 꼴인 것이 종로에선 325원으로 약 22% 저렴한 셈이다. 장 씨는 “우리 약국으로 약을 사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오니까 싸게 팔 수 밖에 없다”며 “노인층이 주 고객인 것도 이유 중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약 구입을 위해 종로를 찾는 노인들도 많지만 여가를 즐기기 위해 종로를 찾는 이들도 많다. 박종식(82・가명) 씨도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많이 놀아야 하지 않겠냐”며 “돈은 없는데 술 한잔 하고 싶어서 종로를 자주 온다”고 말했다. 종로에 노인 밀집 현상으로 인해 ‘노인 섬’이 만들어지며 노인 소외 현상이 심해지는 추세다. 소득이 적다 보니 이들은 저렴한 가격대의 음식점과 유흥거리를 찾을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인들이 싼 값에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종로 등 일부 지역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초고령화 사회는 이미 시작됐다
매년 노인들의 비중이 늘어나며, 한국 사회가 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4년엔 1천만명, 2049년엔 1천9백만명까지 노인 인구가 증가한다고 예측했다. 반면 노인층의 경제적 입지는 약한 편이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들의 연평균 가구 총소득은 2천 8백만원 수준이다. 70세 이상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들의 연평균 총소득은 2천 5백만원 가량으로 떨어진다.
노인에게 더 추운 경제 한파, 나이 들수록 수입 줄어드는 고령층
올해 들어 급속도로 냉각된 경제 한파가 유독 노년층에게 피해를 입히는 추세다. 이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약자인 노인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생활물가가 오르는 추세지만 일을 해도 많은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탑골공원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던 고봉학(80,가명) 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2년 전만 해도 무료급식을 받았는데 줄 서는 과정이 힘들어서 이젠 서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고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라 일을 하면 나라 지원을 받을 수 없어서 나라에서 받는 돈으로 지낸다”고 했다.
2020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연간 개인 총 소득은 1천 3백만원 수준이었다. 80세~84세 노인의 연간 개인 총 소득은 949만원, 85세 이상 노인의 연간 개인 총 소득은 892만원 수준으로 나이가 들 수록 소득이 크게 감소했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노인들은 많은 돈을 벌지 못했다. 노인 일자리 구직 사이트 ‘노인일자리여기’에 따르면 시니어인턴십 유형의 월 평균 소득은 196만원이었다. 사회서비스형의 월 평균 소득은 59만원, 공익활동형은 27만원에 불과했다.
노인들이 많이 일하는 경비노동자, 청소노동자의 임금도 적은 편이었다. 2019년 발행된 서울시 경비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경비노동자 평균 임금은 191만원이었다. 서울시 은평구에서 2020년 진행한 청소미화노동자 노동실태조사에서도 청소노동자 평균 급여액은 136만원 가량이었다.
반면 생활물가지수는 2021년 10월 104.42에서 2022년 10월엔 111.16으로 올랐다. 생활물가지수란 체감 물가를 설명하기 위해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높아서 가격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쌀, 우유 등 144개 품목으로 작성하는 지수다.
경제적 약자 노인들, 종로 일대 저렴한 가격은 자연스러운 형성 결과
종로의 자영업자들은 노인들의 경제적 여력이 가격 책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유동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의 주머니 사정 때문에 가격을 쉽게 올리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종로 관수동 탑골공원 근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코로나 이전에는 노인 손님들이 더 많았다”며 “가게 근처에 콜라텍이 있기 때문에 노인 고객들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이 식당의 주요 메뉴는 4천원에서 5천원대로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관수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또다른 자영업자는 “노인 고객분들을 모시기 위해 커피를 천원~2천원 가격 정도로 싸게 파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에도 노인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과 한 정치인이 제공하는 무료급식차량에는 노인들이 밥을 받기 위해 긴 줄이 서있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총괄하는 자광명 보살은 “밥을 사먹을 수 있는 노인분들은 그나마 경제적 여력이 되는 사람들이다”라며 “그것조차 안되는 분들이 여기(무료급식소)로 오신다”고 강조했다. 보살은 “하루 평균 200개 남짓의 음식을 준비하는데도 금방 동이 난다”며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365일 무료급식소를 운영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저렴한 식사를 하기 위해 종로를 찾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종로의 한 가맥집에서 만난 김정호(67・가명) 씨는 “일을 하긴 하지만 저소득층에 속하고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며 “종로가 밥,술 가격이 싸서 자주 온다”고 했다. 기자가 방문한 종로의 가맥집의 가격은 주류가 3천원대, 안주도 만원 내외로 저렴한 편이었다.
고령 사회에 노인 소외 현상 심화, 전문가 “노인 기본 소득은 논의해 볼 수 있는 문제”
전문가는 노인의 경제적 문제 및 이로 비롯되는 노인 소외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복지정치를 강의하는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장한일 교수는 “노인들이 소속감을 느낀다기보단 소외감을 덜 느끼기 위해 종로 같은 지역에 찾을 수 있다”고 답했다. 노인들이 청년들이 많은 지역에 외출을 하더라도 비슷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게 이유다. 장한일 교수는 “노인 기본소득이 어느정도 해결방안이라는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답했다. 노인들의 경제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소외감이 자발적인 노인 소외현상을 야기하며, 기본소득이 이런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 기본소득이란 소득에 관계 없이 65세 이상 등 특정 나이가 되면 조건을 따지지 않고 돈을 지급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전체 노인 인구의 70%에게만 소득을 지급하고 신고를 해야 하는 기초연금과는 달리 전체 노인에게 조건 없이 소득을 지급 하는 게 차이점이다. 장 교수는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보편적 복지가 제시될 수 있다"고 노인 기본소득의 취지를 설명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책정되는 예산이 너무 많고 세수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현행 기초연금마저도 2050년에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 장 교수는 “기본소득 정책은 장점에 비해 예산 과다 등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고 전세계적으로도 진행된 사례가 거의 없어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khm@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