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천을 흐릴 수 있다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처음엔 부탁받고 들어왔어요. 하도 급하다고 해서 일손 도울 겸 합류했는데, 이렇게 나오니 난감하네요.”

초기 스타트업이 그렇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일손과 자금은 늘 부족한 상태다. 운 좋게 투자를 받더라도 일손은 늘 부족하다.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A 모빌리티 스타트업에서 일어난 일이다. 창업 초기가 늘 그렇듯 이곳도 마찬가지로 부족한 일손을 메우려 동분서주하던 시기가 있었다. 경쟁사와 차별점을 주기 위한 제품과 기술력에는 자신 있었지만 브랜드 PR을 맡아 줄 담당자가 없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상황이라 대표의 가족까지 품을 팔면서 홍보·마케팅에 나섰지만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허점 투성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비는 곳이 나오면 비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시드투자가 간절했던 이곳에서는 투자 유치를 위해 전직원이 야근도 불살랐다. 다행히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투자를 받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회사를 바라보는 눈들은 더 많아졌고, 일 역시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그 무렵, 이 회사에 투입된 ㄱ은 창업시장에서 나름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1인 창업으로 수년 간 회사를 운영하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ㄱ은 본업 외에도 낮밤을 가리지 않고 알바를 뛰며 사업체를 유지했다. 지인이었던 A사의 핵심 인물이 ㄱ에게 ‘잠깐 우리 일 좀 도와 줄 수 없느냐’라는 제안은 내심 그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일주일 중 절반은 지원 근무를, 절반은 본업을 할 수 있게 배려했다. 승낙했지만 그래도 일이란 게 그렇지가 않다. ㄱ은 주춤했던 본업을 잠시 미뤄두고 새로운 일에 매진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써야할 게 많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계절이 바뀌고 업무에 적응되자 A사 대표는 일주일 풀(FULL)로 일하길 원했다. ㄱ도 거부하지 않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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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뉴페이스 ㄴ이 등장했다. 대표의 지인, 홍보전문가였다. 창업 전 대표와 한 회사에 있었던 ㄴ은 팀을 재편하길 원했다. 새 물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원칙이나 ㄱ은 난감했다. 초기 창업의 어려움을 알기에 알게 모르게 묵묵히 빌드업을 하고 있었던 그에게 ㄴ은 납득하지 못할 일들을 던져줬다.

“이건 왜 이래요?” “일에 체계가 없어” “어떻게 모든 게 다 주먹구구식이야, 정말”

ㄴ의 등장으로 뭔가 크게 잘못한 사람마냥 지난 시간들이 모두 부정되는 듯했다. ㄱ은 생각했다. ‘아, 나가라는 소리구나’ 모든 정황이 그랬다. 물론, 인간적 섭섭함도 있었다. ‘내가 어떻게 일을 했는데...’ 대표의 면담을 요청한 ㄱ은 오히려 확신했다. 원래 사회란 이런 곳인지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하니 체감은 또 달랐다. ㄱ의 입장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뉴페이스의 스타트업 적응기간은 필요해 보였다. 높은 경험치를 스타트업에서 구현하려니 맞지 않는 너트에 볼트를 끼우는 식이었다.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팀원들과의 트러블도 있었다. 대표까지 진화에 나섰지만 쉽게 꺼지지 않았다. 뒷수습은 현재 진행형이다.


선배의 감언이설에 대기업 사표내고 스타트업 이직한 ㅈ의 최후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국내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던 ㅈ은 대학 선배의 제안으로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업계에 존재하지 않던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던 이곳의 비즈니스 모델은 누가 들어도 솔깃한 아이템이었다. 대학 선배의 제안은 3개월 간의 적응기간을 거치면 C레벨의 직위와 스톡옵션 등을 제공하는 파격제안이었다. ㅈ은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스무 명 남짓한 스타트업에 첫 출근한 ㅈ은 아직도 첫 회의를 잊지 못한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 서로의 의견을 가감 없이 공유하는 ㅈ의 기대와는 달리 회의시작부터 팀원들이 온갖 불만을 쏟아내는 회의였던 것이다. 불만을 넘어 투정으로 보이는 투덜거림은 신입사원에서 팀장들까지 이어지며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 비방 배틀로 넘어서기 직전 끝이 났다.

‘이게 말로만 들었던 스타트업인가’라고 생각했던 그는 또 하나 이해되지 않은 상황과 마주했다. 세상에 없던 서비스 기획이 메인 비즈니스였던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직원이 정부지원과제에 매달려 있었다. ㅈ의 상식선에선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대표인 선배에게 넌지시 묻자 우선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짧은 답만 왔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렇다는 말과 함께.

ㅈ은 적응할 새도 없이 바로 일에 투입됐다. 당연히 일의 순서나 체계는 없었다.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스타트업에 잘 맞을 것 같다던 선배의 칭찬이 원망스러웠다. 기존 직원들과의 서먹한 분위기는 며칠이 지나도 가실 줄 몰랐다. ㅈ이 그동안 경험한 업무환경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호기롭게 던진 사표를 수습하느라 애를 썼다는 후문과 함께 전직장으로 리턴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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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인지 변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알까?
스타트업에서의 인재 영입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인공지능(AI)이 대신하는 업무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지만 어찌됐든 일은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스타트업의 경우 한 두 번의 채용을 겪게 된다.

특히 일반 기업에 다니다 창업한 CEO 중에서 이전에 호흡을 맞춰 본 동료를 스타트업으로 영입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대표 입장에서야 능력이 검증된 ‘선수 영입’을 위해선 감언이설을 쏟아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명심해야할 것은 스타트업, 특히 초기 스타트업은 호미질조차 안 된 황무지를 개척하는 일이다. 대기업처럼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는 현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얼마 전 ‘알 나스르(사우디아라비아)’로 이적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예를 들어보자.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호날두가 왜 축구의 불모지인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적했는지는 아실테다. 세계적 스타인 호날두가 명예가 아닌 돈을 보고 이적한 사실을 지적할 생각은 없다. 알 나스르가 스타트업이라고 가정했을 때, 팀을 이끄는 감독 입장에서 호날두의 영입이 과연 옳았을까 라는 의문이다.

감독(CEO) 입장에선 팀 실적, 흥행 면을 고려했을 때 호날두의 영입을 바랐을 수 있지만 만약 스타트업이라면 호날두가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물론, 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에서의 경험을 녹여 낼 순 있겠지만 스타트업, 특히 초·중기 스타트업은 호날두와 같이 개인플레이를 위주로 하는 스타플레이어보다 일당백이 가능한 멀티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섣부른 스타트업 이직, 당사자&스타트업 모두 타격
문제는 이런 스타트업의 환경을 파악하지 못한 채 스타트업에 입문한 경력자들의 경우다. 경력자들의 적응실패 후 리턴하는 경우, 개인의 커리어도 문제이지만 개인의 커리어만큼 작은 조직인 스타트업은 든자리 만큼 난자리가 도드라져 보인다. 떠난 이가 남겨 놓은 경험치의 뒷수습은 남아있는 이들의 몫이 기 때문이다.

조직사회, 특히 스타트업과 같은 작은 조직에서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업무 범위의 차원을 넘어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과 존재 가치는 작은 조직일수록 더욱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팀워크가 중요한 스타트업에 미꾸라지 같은 팀원의 물 흐리기는 단시간 내 해결이 안 될 수도, 그 계기로 개천의 수질이 낮출 수도 있다. 그만큼 스타트업의 인재 영입(채용)은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강홍민 기자는 패션, 헬스케어, 대중문화, 기업HR, 스타트업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한 15년차 기자다. 스포츠, 영화, 음악, 방송, 창업 등 다양한 경험을 두루 거친 그는 세상의 수많은 직업들과 트렌디하게 변화하는 기업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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