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MZ와 꼰대, 캔슬할 수 없다면 즐겨라

(사진=황태린 씨)
(사진=황태린 씨)
[한경잡앤조이=황태린 NPR 매니저] 경기도에 살며 을지로의 홍보 대행사로 출근하고 있다. 주2회 재택 근무를 제외하고 출근하는 날은 하루에 세 시간씩 도로 위에서 ‘멀티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출근길에서 내가 하는 건 웹툰 정주행, 독서, 영어 학습, 쪽잠 등등 다양하다.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거나, 환승할 버스를 바로 탈 수 있을지 중간에 잠깐 뭘 사러 들러도 될지 시간을 계산한다. 그 활동에서 항상 함께 하는 건 음악이다. 장르는 뉴에이지부터 팝을 거쳐 락까지, 그야말로 ‘음악은 나의 삶’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귀에 재생되고 있는 게 음악인지, 드라마인지, 유튜브인지, 혹은 캔디인지가 다를 뿐이다. 줄 이어폰의 세계를 살던 우리는 블루투스라는 문명의 이기를 만나 각자 개성을 뽐내는 ‘콩나물’의 시대를 살고 있다. 헤드폰과 에어팟을 쓰던 나도 얼마 전 에어팟 프로2를 구매하면서 노이즈 캔슬링의 세계에 뒤늦게 입문했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가장 큰 특징은 소음을 줄여 세상에 음악과 나 단둘이 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외부 소음을 막아 위험 상황에 노출되어도 모른다는 게 양날의 검이지만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점도 TPO에 맞춰야 장점이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업무 상황에서 상사의 목소리까지 ‘노이즈’로 취급해 ‘캔슬’해버리는 사원들이 생겨나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관련해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목격 썰’들이 올라오고, ‘맑은 눈의 광인’이라고 불리는 예능 캐릭터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대부분의 MZ인지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입사 초기엔 나도 업무 중 음악 감상을 몇 번 시도했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이 다른 사람 음악 좀 듣는다고 크게 개의치 않아 하고, 재택 일정이 개인마다 달라 대부분의 업무 지시가 메신저나 메일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래들이 내 귀의 캔디처럼 달콤해서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 뇌의 회선은 한 군데에만 잘 집중한다는 것을 회사에서 알게 됐다. 지금도 단순 반복 업무를 혼자 하지 않는 이상 이어폰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도 있다.

취업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여러 회사들을 방문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머리카락 넘기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지만, 간혹 사무실에서 크게 노래를 틀고 작업하는 곳도 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 문을 연 회사에서 에픽하이의 ‘Born Hater’가 흘러나온 순간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면접 중에도 노래는 계속 들려왔다. 회의실 칠판에는 ‘이번주 DJ’라고 적힌 제목 아래에 직원들의 이름이 번갈아 써 있었다. 또 업무 중 유튜브 무료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해 종종 엉뚱한 광고 음성이 나오던 곳도 있었다. 한 친구가 그런 사무실에서 근무했는데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마음으로 본인의 프리미엄 계정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런 회사들도 있다.

Z세대가 신입사원으로 등장하면서 시작한 ‘MZ와의 불통’ 이슈는 간단하게 보면 ’젊은이들의 문화 탓’으로 보인다. 이는 어느 시대든, 심지어 고대 이집트에도 있던 ‘요즘 애들’ 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미 해결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갈등이 이해와 대화의 부족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다른 세대와의 소통도 가장 원론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노이즈캔슬링 같은 단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대화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라고 생각한다. 일명 ‘듣말쓰’, 듣기말〮하기쓰〮기 과목을 배웠던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대화하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실천하는 방법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Z세대 소통의 기반은 텍스트다. 2G폰 시절 문자에서 시작해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화면에 쓰인 글자, 이미지를 기반으로 소통한다. ‘콜 포비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우리는 음성을 나누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더구나 최근에는 영상을 올리고 이에 댓글 등으로 반응하는 참여형 소통에 익숙해지고 있다. 나의 박자에 맞춘, 시차 있는 관계를 선호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상사들은 다르다. 약속 장소에 시간 맞춰 오지 않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려봤고, 통화를 위해 삐삐를 전하고 회신이 오기를 고대해봤고, 통화 요금을 걱정하며 대화에 아쉬움을 남기던 경험을 거친 세대다. 텍스트로 걸러낸 조용한 소통을 선호하는 사람과 음성을 통한 즉각적인 소통을 선호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잘 맞기란 쉽지 않다.

요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저이들은 왜 저래?” 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싱크를 맞추기 위한 대화라고 생각한다. 타짜의 곽철용이 순정을 짓밟히면 깡패가 되는 것처럼, 나이에 관계없이 한쪽만 강요하기 시작하면 꼰대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사람의 마음이다. 회사가 일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지만 사람들은 각자 가진 생각과 이야기가 있다. 이를 존중하면 “꼰대”나 “MZ”라고 이름 지으며 심화하는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황태린 매니저
황태린 매니저
황태린 님은 지구종말론의 혼돈 속에서 태어나 자연에게 배우며 자랐다. 역사, 심리, 소설, 인간,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덕질’하던 유년을 지나 지금은 홍보대행사 2년차 막내 직원을 거치는 중이다. 문예창작 전공으로 글로 배운 건 글 뿐.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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