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예비 세대주로 살아남기

대출을 받고, 전셋집을 구하면서 난 어른이 되었다 [인생 1회차, 낯설게 하기]
[한경잡앤조이=황태린 NPR 매니저] 빚을 졌다. 금액은 1억 원, 용도는 전세 계약금이다. 원래 살던 동네에서 조금 더 지하철 역에 가까운 주택을 계약하고 세대주가 되었다. 부동산은 운명처럼 찾아온다는 말이 있었던가. 약 두 달 동안 공인중개사무소들을 찾아다닌 결과, 봤던 집 중 가장 가격이 낮고 상태와 위치도 괜찮은 집을 만났다. 성격이 시원시원한 집주인이 같은 건물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이 놓였다.

집을 알아보며 한국의 공인중개사들은 돈 받고 하는 일이 일단 안된다고 거절하고 사람을 까 내리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명 ‘복비’는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동등하게 받지만 임차인에게는 갑질을, 임대인에게는 칭송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청년 전세 대출을 받겠다고 하니 그런 건 집주인들이 싫어한다면서 문전박대를 한 부동산 중개인도 있었다. 다행이도 덜 신경질적이면서 매뉴얼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공인중개사를 만나 계약을 진행했다.

계약 후에는 내가 ‘합법적 저금리 빚쟁이’가 될 수 있을지 은행에서 확인을 받아야 했다. 내가 활용한 대출 상품은 ‘청년 전용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이다. 만 19세 이상에서 만 34세 이하 (예비)세대주들에게 연 1.5%~2.1%의 비교적 저금리로 목돈을 빌려주는 제도다. 주택도시기금의 청년 지원 제도로 보증 기관에 따라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대출 보증 등에 가입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주택 면적 제한, 보증금 제한, 연령 제한 등 다양한 조건이 있으므로 관심이 있다면 직접 주택도시기금 사이트에서 찾아보는 걸 추천한다.

연일 전세 사기 및 보증 불가의 문제로 젊은이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나 또한 전세 세입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건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높은 월세를 내느니 저금리의 상품이 있다면 대출 이자를 내는 게 낫겠다는 계산은 상식적일 것이다. 물론 아무런 문제없이 흘러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말이다. 주거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원하는 곳에 살겠다는 선택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비조각적 조각을 직조하는 정광호 조각가의 작품.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역설이 우리네 주거 공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사진촬영=황태린 씨/대전시립미술관)
△비조각적 조각을 직조하는 정광호 조각가의 작품.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역설이 우리네 주거 공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사진촬영=황태린 씨/대전시립미술관)
금요일 반차를 내고 대출 신청을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 등받이가 없는 불편한 소파에 내 또래 사람들이 열 명 가량 앉아있었다. 다리를 꼬거나 몸을 앞으로 숙이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핸드폰에 열중했다.

우리는 대출 창구에서 ‘띵동’ 하고 알림이 울릴 때마다 제발 이 기다림을 끝내주길 바란다는 간절한 표정으로 화면의 번호들을 바라봤다. 약 45분 정도를 기다려 대출 신청을 하기 위해 창구에 앉을 수 있었다. 대출 신청을 마치고 앞으로의 진행 상황을 묻자 행원은 “요즘에 집단 대출이 늘어나서 처리가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집단 대출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다가왔다.

전세자금 대출이 진행되면 은행에서는 임대인에게 ‘계약 사실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이 내용을 공인중개사에게 전화로 알리자 그게 뭐냐, 본인이 대신 은행 담당자 연락처를 받아서 이야기 해보면 안 되냐, 는 물음이 돌아왔다. 앞서 말했듯 신경질적인 중개사는 마치 임차인인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는 식으로 질책했다. 은행 담당자 연락처는 나도 모른다고 답한 후 다시 은행에 찾아갔다.

“공인중개사가 본인이 상담해보면 안 되냐고 묻는데 그걸 부동산에서 대신할 수 있는 건가요?”

행원은 세상에서 그런 어휘를 처음 들었다는 얼굴로 그걸 공인중개사가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월권을 하면서 당신에게 신경질을 내는데 그냥 직접 임대인에게 말하면 된다, 고 팁을 알려주기까지 했다. 행원의 말을 듣고 연락하니 임대인은 친절했고, 공인중개사의 태도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공 지식이나 기술은 가르쳐주는 곳이 많지만 정작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동산, 금융, 법, 사회생활 등에 관련된 정보들을 알려주는 곳은 많지 않다. 많은 청년들이 세상을 몸소 부딪히며 배우다가 결국 부러지고 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부러진 후에 다시 일어날 기회 또한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저 운이 좋아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황태린 님은 지구종말론의 혼돈 속에서 태어나 자연에게 배우며 자랐다. 역사, 심리, 소설, 인간,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덕질’하던 유년을 지나 지금은 홍보대행사 2년차 막내 직원을 거치는 중이다. 문예창작 전공으로 글로 배운 건 글 뿐.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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