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원의 하루

'대행'은 남을 대신해 무언가를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대신 행동한다’의 줄임말로 볼 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대행이 있다. 연인 대행, 가족 대행, 하객 대행 등등. 이 뒤에는 항상 ‘아르바이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렇다면 ‘대행사’는 어떤 업무를 하길래 ‘대신 행해’주는 회사가 된 것일까.

나는 홍보 대행사 사원으로 약 1년 반째 일하고 있다. 모르는 것, 처음 해보는 것 투성이인 주니어지만 다행히 막내라는 이유로 잡일만 하진 않는다. 보도자료, 월말 보고서, SNS 콘텐츠 기획, 마케팅 플랜, 레퍼런스 서칭 등등 다양한 업무를 매일매일 해 나가고 있다. 물론 모두 초안 단계이며 꼭 한두 번 손을 더 거쳐야 하지만 말이다.
대행사는 어떤 곳일까? (feat. 막내의 시선) [인생 1회차, 낯설게 하기]
짧은 식견으로 파악한 바로는 우리가 하는 일은 고객사의 ‘메시지’를 대행해주는 것이다. 그 메시지는 ‘제품을 많이 팔고 싶어요’가 될 수도 있고, ‘우리 브랜드가 1020세대에게 더 어필이 되면 좋겠어요’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알맞은 메시지를 찾아 주기도 하고, 원하는 메시지를 적절한 도구를 찾아 ‘대신 행’해주는 것이다.

대행사는 늘 바쁘다. 다양한 회사들의 수많은 이슈들은 타임라인대로 정리되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종종 제안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긴다면 야근은 당연해진다. 내가 담당했던 업무만 정리해도 대행사가 얼마나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지 유추할 수 있다. 언론 홍보 대행, 식음료 브랜드 SNS 채널 관리, 각종 제안서들, 인플루언서 서치, 유튜브 콘텐츠 기획, 고객사에 맞는 광고 유형 서치, 매일 빠질 수 없는 뉴스와 SNS 모니터링 등등. 하나의 단어로 짚을 수 없는 작은 업무들까지 하면 가끔 내가 일을 하는 것인지 일이 나를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지경까지 가곤 한다.

모두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일이 꼬이지 않으려면 빠르고 정확한 일 처리와 마음 상하지 않는 소통이 중요하다. 정확한 일 처리는 업무적으로, 마음 상하지 않는 소통은 지속 가능한 팀 빌딩을 위해 필수적이다.

소규모의 인력을 데리고 방대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각각의 인원들이 1인분을 확실히 해야 하고, 리더는 자신의 팀원들이 역량에 맞는 1인분을 할 수 있도록 가르마를 타줘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는 버거운 일을 하다가 부러져 버릴 지도 모른다. 실무자와 관리자는 보는 눈이 달라야 한다는 말이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 삶의 환경, 경험과 이해도가 다른 상황에서 하나의 목표를 이뤄내야 하는 장소인 회사라면 마음 상하지 않는 소통이 더더욱 어렵다. 어떤 사람은 “회사는 일하러 만난 곳인데 그런 걸 마음에 두냐”라거나 “각자 스타일이 다른 건데 그걸 어느 한쪽에 맞춰야 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친구들 중에서 ‘회사 사람한테 무슨 기대를 가져, 그것도 네 잘못이야’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 9to6 직장인들은 7일 중 5일을, 그 하루에서도 해가 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 사람들과 보낸다. 어쩌면 가족 간의 소통보다 중요한 게 동료들과의 소통일지도 모른다. 그게 잘 안 되고 괴롭다면 일상의 85%가 불행하다는 게 내 의견이다.

스타트업 중 신규 입사자의 온보딩 교육에 공을 들이는 회사들이 있다. 기업문화나 이념이 기존의 회사와 다른 스타트업일수록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대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그게 과연 필요할까 의심했지만, 직장에 1년가량 다닌 후 새로운 입사자를 위해 차근차근 절차를 알려주는 게 얼마나 사려 깊은 프로그램인지 알게 되었다. 이 회사가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하는 시간, 함께 일하는 사람끼리 알아가는 시간을 회사가 뚝 떼어내 마련해주는 것이다.

솔로몬 애쉬의 유명한 심리 실험이 있다. 1명의 실험 참가자와 5명의 배우를 섭외해 답이 뻔한 질문을 던진다. 참가자의 앞에서 대답하는 5명의 배우는 틀린 답을 자신 있게 답변한다. 예를 들면 가로 선이 그어진 카드를 내밀며 “이 선은 가로인가요?” 같은 질문에 아니요, 라고 답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답변할 차례가 온 실험 참가자는 높은 확률로 배우들의 답을 따라했다. 이 ‘양떼효과’는 개인의 생각을 숨기고 군중의 결정을 따르는 심리를 의미한다. 군중은 또 하나의 개인, 이라는 명제에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군중(사진출처=황태린 씨)
군중(사진출처=황태린 씨)
사람이 모이면 조직이 되고, 조직은 필연적으로 성격을 가진다. 조직의 성격에 따라 구성원들은 바뀐다. 약 10여년 전만 해도 ‘까라면 까’는 소통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현재는 -님 문화, 영어 이름 등등 수평적 조직 문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온보딩교육이나 조직 구성원끼리의 소통을 통해 ‘우리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어갈 시간과 여유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보다 여유로운 조직을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 여유로운 조직은 보다 원활한 소통과 더 나은 업무를 만들어 갈 것이라 생각한다.


황태린 씨는 지구종말론의 혼돈 속에서 태어나 자연에게 배우며 자랐다. 역사, 심리, 소설, 인간,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덕질’하던 유년을 지나 지금은 홍보대행사 2년차 막내 직원을 거치는 중이다. 문예창작 전공으로 글로 배운 건 글 뿐.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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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