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봉작, 불경기로 팬덤 기반의 N차 관람 문화가 안정적 수입에 도움 돼
코로나19로 위축된 영화 시장, 큰 타격으로 회복까지 시간 걸려

최근 탄생 30주년을 맞아 1월 재개봉한 일본의 로맨스 영화 ‘러브레터(1995)’는 국내 9번째 재개봉을 맞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해당 작품은 개봉 한 달간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영화 팬덤의 ‘N차 관람 문화’를 다시 입증했다.

극장가에 재개봉 영화가 늘어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재개봉 선택한 이유, 과거 감성에 대한 향수·경제적 이유
극장가에서 재개봉 영화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복합적인 요인들이 뒤섞여 영화산업에 자리 잡은 하나의 트렌드인 셈이다.
재개봉작 가운데, 특정 시대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남아 있는 작품들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로맨스 영화처럼 특정 시대만의 감성을 간직한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관객에게 환영받는다.
홍수정 영화 평론가는 “재개봉 영화가 처음 상영되던 시대의 감성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는 것 같다”며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전의 아날로그 감성이 담긴 작품들은 세대를 초월해 관객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교수는 “극장 티켓값 상승과 경기 침체로 젊은 층의 소비 패턴이 변화하며 영화관 방문이 줄었는데, 이런 환경에서 극장은 신작 개봉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됐고, 이미 검증된 콘텐츠를 활용한 재개봉 영화가 비교적 낮은 위험 부담으로 관객을 확보할 방안이 됐다”고 분석했다.
배급사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 신작 유치보다 재개봉을 선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재개봉 영화는 기존 팬덤을 보유하고 있어 추가적인 마케팅 비용이 적게 들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문 교수는 “배급사들이 불경기와 영화산업 불황 등으로 신작 영화를 사 오는 데 드는 비용이 부담스러워진 상황에서, 이미 확보된 IP(지식재산권)를 재활용하면 영화 자체에 대한 비용뿐 아니라 막대한 양의 마케팅 비용까지 감축할 수 있다”며, “경제적 요인들이 맞물려 재개봉 전략이 극장가에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반면, 모든 재개봉 영화가 특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다. 올해 1월 재개봉한 영화 '도어즈(1993)'는 관객 수가 약 2,500명에 그치는 등 아쉬운 성적을 보였다. 다른 작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첫 개봉 때와는 달리 성적은 좋지 못한 결과를 낳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재개봉작을 선택하는 이유는 마케팅 비용 감축, 저렴한 영화 구매비용 등 명확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수익, 파급력 부분에서 당연히 히트작이 더 나은 게 사실”이라며 “다만 배급사들은 영화가 히트할지 보장할 수 없기에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팬덤을 이용한 극장의 마케팅 전략
극장가에서도 단순히 흥행한 작품들을 다시금 스크린에 거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재개봉 작품들은 신작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관객층을 대상으로 새로운 관람 경험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는 특히 특정 영화의 팬덤이 강한 경우 더 효과적이다.
‘라라랜드(2016)’나 ‘해리포터 시리즈’ 같이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확실한 팬덤이 보장된 작품들은 극장 재개봉 시에도 꾸준한 관객 수를 기록하며 관객을 극장으로 유입하는 데에 긍정적인 성과를 보였다.
극장들은 이러한 팬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CGV는 ‘위플래쉬’, ‘인터스텔라’ 등의 영화를 재개봉할 당시 아이맥스(IMAX) 특별관 상영을 진행해 고화질 영상과 음향을 원하는 관객층을 공략했다. 또한, 음악 영화의 경우 싱어롱 상영을 진행하며 관객 참여형 이벤트를 늘려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관객들은 재개봉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학에서 영화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는 조보경 씨는 “재개봉된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를 극장에서 봤다”며 “시리즈의 팬으로서 큰 스크린과 좋은 음향 환경에서 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검증된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새 영화를 선택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소비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재개봉된 영화 ‘이터널 선샤인(2005)’을 봤다고 응답한 임재경(동국대 사회학·3) 씨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좋아해 OTT로 봤지만 극장에서 다시 봤다”며 “극장에서 큰 스크린과 좋은 음향으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극장을 방문했었다”고 응답했다.
영화 산업의 악재, 재개봉 트렌드 부상시키다
최근 몇 년간 영화 산업은 여러 가지 악재에 직면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극장 폐쇄와 사회적 거리 두기는 극장 수익에 큰 타격을 줬으며, 이는 신작 제작과 개봉 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어 영화 제작비 상승과 투자 감소로 신작 공급이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극장은 빈 상영작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재개봉 작품을 더 많이 유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영화 시장 규모는 약 5,791억 원이었지만, 2020년에는 2,157억 원으로 급감하며 절반 이상 축소됐다. 이후 2023년까지 점진적으로 회복해 3, 628억 원을 기록했으나 팬데믹 이전 수준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극장 수익률도 급격히 악화했다. 2019년 극장 매출 중 수익률은 10.93%를 기록했으나, 2020년에는 -30.39%로 추락했다. 이후 2023년에도 -30.98%를 기록하며 여전히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신작 개봉으로 적자를 볼 가능성이 더 커지자 영화 제작 산업이 더욱 침체됐고, 신작 영화가 유치되지 못해 극장은 빈 극장을 채우려 재개봉 작품을 더욱 들여오게 된다.

극장의 미래, 신작과 재개봉의 균형 잡기
현재의 재개봉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극장가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관객은 티켓값 인상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간단한 소비에서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소비가 됐고, 배급사는 불경기·적자를 기록하는 영화산업 속 안정적인 수익을 위한 재개봉 영화에 더 몰두하게 됐으며, 팬데믹 이후 신작 수급이 어려워진 극장은 빈 관을 채우기 위해 재개봉 작품을 들여왔다. ‘과거를 선망하는’ 향수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영향도 있다.
황 전략지원담당은 “현재는 신작이 부족한 상황에서 재개봉 영화가 틈새시장을 차지하고 있지만, 영화 시장이 정상화되면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특정 작품들의 경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재개봉될 가능성이 높아 일종의 틈새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구봉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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