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하려면 경력 쌓아야 된대요”···신입채용에 경력 원하는 기업들
대기업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의 상반기 채용시즌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가운데,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은 채용공고를 통해 채용일정 및 절차 체크에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특히 예전에 비해 기업의 채용규모가 줄고, 신입보다 경력이 있는 중고신입을 원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갓 취준생에 합류한 이들에겐 취업문턱이 더 없이 높아만 보인다.

정기 공채는 줄이고 수시 채용은 늘린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달 4일에서 13일까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5년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126개소 중 41.3%가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 미정, 19.8%가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
경력 채용을 선호하는 채용 시장. (사진=고용노동부, 한국고용정보원 자료 제공)
경력 채용을 선호하는 채용 시장. (사진=고용노동부, 한국고용정보원 자료 제공)
이는 각각 작년 상반기보다 3.9%p, 2.7%p가 증가한 수치다.

신규 채용을 하지 않거나 채용 규모를 늘리지 않겠다고 한 이유에 대해서는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및 기업 수익성 악화 대응을 위한 경영 긴축(51.5%)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 고환율 등으로 인한 경기부진(11.8%) ▲고용경직성으로 인해 경영환경 변화 대응을 위한 구조조정 어려움(8.8%) 때문이라 답했다.
기업의 채용 방식엔 ▲정해진 시기에 공개적으로 채용하는 정기 공채 ▲비정기적으로 특정 직무의 인력을 채용하는 수시 채용 ▲필요한 기간에 수시로 인력을 모집하는 상시채용이 있다.

현재 국내 주요 기업들이 정기 공채를 대폭 줄이고 경력을 우선시하는 수시 채용을 확대함에 따라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취업 기회가 감소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2023년 하반기 기업 채용동향조사 결과 발표’(이하 채용동향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기업 315개소 중 79%가 정기 공채와 수시 채용을 병행했으며 기업들 대다수는 향후 수시 특채 방식의 경력직 채용 경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채용동향조사에 따르면 신규 채용 결정 요소에 대해 응답 기업 중 35.6%가 ‘직무 관련 일경험’을, 27.3%는 ‘일반직무역량’을 꼽았다. 주요 기업들은 여러 직무에서 인력을 선발해 교육한 후 직무 배치를 하는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관련 업무에 경력을 보유한 경력자를 채용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기업들은 직무 전문성을 갖춰 실제 업무에 빠르게 투입돼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제 업무에 투입되기까지 장기간 교육과 훈련을 거쳐야 하는 비경력직과 비교했을 때 채용 시장에서 유리한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21년 4월 커리어 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33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경력직 채용 선호도’ 결과에 따르면 경력직 채용을 우선하는 이유에 ‘바로 업무에 투입할 인력이 필요해서’가 73.9%(복수응답)으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전문인력이 필요해서(26.1%) ▲이직/퇴사 등의 이유로 빈 인원을 뽑기 때문에(25%) ▲경력직이 적응력이 더 좋아서(19.3%) ▲신입사원을 교육할 여력이 없어서(15.3%) ▲조직생활 이해도가 높아서(8.5%)가 뒤를 이었다.
합격티켓이 되어 버린 ‘경력’
취업준비생 A씨는 은행원이 되기 위해 2024년 2월 금융학과를 졸업 후 현재 1년간 경력 준비 기간을 가지고 있다. 은행원의 경우 ▲대외 활동 ▲인턴 ▲외국어 능력 ▲전공 자격증 및 전공 지식 ▲직무 역량 등 다양한 조건들이 요구되지만 그중에서도 A씨는 대외 활동이나 인턴과 같은 직무 관련 일경험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취업하려면 경력 쌓아야 된대요”···신입채용에 경력 원하는 기업들
A씨가 취업을 위해 그동안 쌓은 경력사항들(본인 제공)
A씨가 취업을 위해 그동안 쌓은 경력사항들(본인 제공)
현재 A씨는 KB국민은행에서 인턴으로 채용돼 경력을 쌓는 중이다. 대학을 졸업 후 경력을 위해 일정 준비 기간을 가진 이유에 대해 A씨는 “직무 특성상 취업을 위해 인턴 경험이 필요했다”며 “인턴조차 경쟁률이 높고 경력을 요구해 이를 위한 대외 활동이나 외국어 능력을 준비하는 기간도 추가로 가졌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직무를 희망하는 20대에서 30대 취업준비생들로 이뤄진 스터디를 경험한 A씨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현실에 다른 업종을 준비하거나 취업을 포기하는 사회 초년생들을 봤다”며 “제한된 채용 규모에 계속해서 경력직을 선호한다면 사회 초년생들은 과도한 스펙을 위해 무리하고 일자리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많은 경력을 보유한 재직자 위주로 시장이 돌아가 장기적으로는 직장 경험이 없는 청년들의 취업문제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의류학을 전공한 B씨는 올해 2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위해 경력을 준비하고 있다. 체험형 인턴을 준비 중인 B씨는 “진로를 늦게 정했기 때문에 직무 관련 일경험이 부족했다”며 “재학 중 관공서 아르바이트 및 현장실습도 했지만 실무경험이 부족해 따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뿐만 아니라 B씨는 취업을 위해 토익 등 공인어학능력 시험도 준비 중이다.

사회초년생인 취준생에게 경력을 요구하는 기업의 채용 분위기를 두고 B씨는 “경력 채용이 가속화되면 취업 연령도 높아질뿐더러 사회 초년생들은 진로에 대해 방황하고 능력이 부재해지며 기업들은 창의성을 잃을 것”이라며 “3개월 동안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력 채용에 의해 청년들의 생애 총소득은 감소▲(사진5) 면접 현장. 사진=미리 캔버스 제공
경력 채용은 비경력자 교육·훈련에 드는 비용 부담이 커짐에 따라 나타난 기업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런 기업 측의 입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 활동을 시작한 청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는 흐름에 맞춰 청년들은 자신들의 눈을 낮추고 중소기업에 지원하거나 혹은 비정규직에서도 경력을 쌓으려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리라는 것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은행이 2010에서 2019년까지 한국노동패널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정규직 근로자 중 1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중은 10.1%에 불과하며 이는 비교 대상 31개국 중 두 번째로 낮게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지난달 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에서 경력 채용을 선호하는 현상이 사회 초년생의 생애 취업 기간 및 소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력이 없는 청년들의 첫 취업이 늦어지면 생애 총 취업 기간은 21.7년에서 19.7년으로 2.0년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이들의 평생 소득은 3억 9,000만 원에서 3억 4,000만 원으로 13.4% 감소한다.

한국은행은 이런 채용 시장의 흐름 속에서 다각적으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턴 제도의 경우 참여 기회를 늘리며 실질적인 업무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학교 측에선 산학협력을 적극 이용해 직무 경험 기회를 늘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오랜 기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겐 훈련 및 취업 서비스와 구직활동 지속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원해 구직 의욕을 고취해야 함을 전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허준희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