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윤서윤 독서활동가] 2020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코로나 블루로 점철된 한 해였다. 우울함과 화는 극에 치달았고 폭언과 폭력은 그야말로 일상이 돼 버린 듯하다. 그 어느 때보다 안녕하냐는 질문이 민망했을지도 모른다. 문지혁 작가의 <초급 한국어>는 ‘안녕하세요’를 ‘평안’과 연결시켜 해석한다. 2021년은 부디 우리 모두 안녕하길 바란다.


새해를 맞아 오랜만에 공연을 보려고 예매를 해 두었다. 2020년 12월 6일 월요일. 계획해 둔 일정이 무산됐음을 알리는 문자를 받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격상에 따른 공연 취소 문자였다.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현 시국에 공연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사치라며 빨리 마음을 접으라고 한다. 마스크를 내림과 동시에 퇴장당해야 하는 한국 공연장만큼 코로나19에 안전한 공간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집합금지명령 처분에 다른 취미를 만들어야 하나 생각 중이다.


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생활이 편했다. 혼자가 편하기 때문이었다. 불필요한 만남으로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며,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친구들과 만남은 카카오톡이나 줌(ZOOM), 디스코드(Discord)로 대체됐다. 하루에 힘듦을 각자 맥주를 사서 줌 앞에 앉아 랜선 ‘짠’을 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얼굴 보는 게 부담스럽다면 디스코드를 활용한다. 디스코드는 게임을 하던 유저가 주로 사용했던 음성채팅 프로그램인데, 이제는 얼굴을 보지 않고 각자 할 일을 하면서 토론을 한다. 일상에 큰 행복인 공연을 보지 못하는 것만 빼면 2020년도 나쁘지 않았다.


일에서는 정말 잔인했다. 독서토론은 사람이 모여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모임 자체가 금지되니 혼란 속이었던 상반기에는 일이 전무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비수기에도 일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필자는 아니었나 보다. 잡혀 있던 일정들은 전부 미뤄지거나 취소됐다. 취소된 일정들은 ‘다음’을 기약만 했을 뿐 다시 진행되지 않았다. 집합금지명령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장기화를 예상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발표 때마다 남아있던 온기가 차갑게 식어갔다. 일정 연기와 취소가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불안으로 잠식됐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운이 좋게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어떻게든 현상 유지는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일이 없으니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줌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지속됐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내 생활이 원상복구 됐다는 것인데, 일반 자영업자나 공연·예술계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가끔은 나만 밖에 나가지 않는 바보가 된 건 아닐까 자책한 날도 있었다. 2020년 한 해 진지하게 나에게 묻는다.


초급 한국어, 민음사, 2020년 11월, 문지혁
초급 한국어, 민음사, 2020년 11월, 문지혁
안녕하세요? Annyeonghaseyo? → Are you in peace?

뜻을 다 쓰기도 전에 학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과 함께 동요가 일어났다. 몇몇은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는 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어는 더 꼬여 혀끝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얼굴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질문했던 학생이 말했다. "그런 말을 일상에서 한다고요? <스타워즈>에서 요다가 할 것 같은 말인데, '평안하냐?'"(31쪽)


'안녕하세요'를 '평안'과 연결시켜 해석한 <초급 한국어>의 한 부분이다. 주인공 지혁은 미국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이자 이민 작가를 꿈꾼다. 작가 문지혁은 한국에서 강사이자, 번역가, 소설가로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에 허구를 더했다. 소설은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듣는 연재소설로 선공개됐다.


작가의 목소리로 듣는 자전적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주인공 지혁은 미국에서 미국인들에게 '안녕'을 가르치지만 삶은 안녕과 거리가 멀다. 어머니의 뇌졸중 소식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제 막 시작한 초급 한국어 교사직으로 정규직이 될 수 있을지 여부가 더 궁금하다. 그렇게 지혁은 초급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며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가족들의 이야기를 오가며 이방인으로서의 한국어를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잘 지내냐는 말은 무력하다. 정말로 잘 지내는 사람에게도, 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도,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잘 지낸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오히려 나의 진짜 '잘 지냄'에 관해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73쪽)


한국인은 "How are you?"라는 질문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한다는 농담은 여전히 유효할까. 첫차를 타고 영어학원에 다니던 때가 있었다. 첫날 강사가 "I’m fine"을 알려 주면서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이 많다며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줬다. 나는 매일 다르게 대답하려고 지하철을 타면서 "Not bad" 혹은 "I’m good!"을 반복해서 외웠다.


문제는 그다음 질문이었다. 이어진 질문에 항상 얼굴이 빨개지면서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어나 잘하자며 영어학원을 그만두었다. 그저 영어로 말을 하게 하려는 의도였음에도 다음에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찾은 게 "지하철에 앉아서 올 수 있었어요" 정도. 이럴 때마다 선생님도 서둘러 질문을 마무리했다. 그때 그 선생님은 나를 어떤 수강생이라고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이나 할까.


언제부터인가 일상을 나누는 게 어려워졌다. 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불편해할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들의 일상에 관심이 없었다. 굳이 한다면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컸다. 그럼에도 지인에게 늘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그건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39쪽)


2020년 코로나 블루를 매일 체감했다. 마스크 미착용자에 대한 얼굴 공개, 서비스직에 대한 폭언들. 서비스직종에 머무는 사람이라면 다른 직종보다 더 많이 체감할 것이다. 덮어 놓고 ‘화’부터 내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폭언과 폭력은 그야말로 일상이 돼 버린 듯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안녕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게 아닐까.


In life as a human being, nothing is secure. Just follow your heart.

인간의 삶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따르라.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말도 아니고 한편으로는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하는 말인데도, 그때 그 말이 나에게는 무척 멋지게 들렸다. (103쪽)


이민 작가로 성공한 사람에게 찾아가 한국인이 할 법한 ‘한국인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에 화답해 준 작가의 문장이다. 지혁은 이 말에 따라 소설가를 선택하지만 성공 여부는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마음 가는 대로’는 어떤 것일까. 나에게 아주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아주 조금 안녕해지는 걸 바라는 건 큰 욕심일까. 2020년보다 더 나빠질 것도 없는 2021년 한 해는 안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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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8호(2021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