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오디오가 먼저였을까, 음악이 먼저였을까. 국내 재즈계의 산증인인 진낙원 올댓재즈 대표는 의외로 오디오를 먼저 꼽았다. 진 대표는 다양한 오디오를 통해 재즈음악을 들었고, 다양한 오디오로 청음하다 보니 클래식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는 것. 클래식바 더비스에서 그를 만나봤다.


“베토벤, 바하, 브람스 등 명작곡가들은 B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더라고요. 그들의 음악을 틀어 준다는 의미로 ‘더비스(The B’s)’라는 이름을 지었죠.”


더비스라는 이름에 대해 묻자 돌아온 진낙원 올댓재즈 대표의 답이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작은 골목, 좁은 지하 계단을 내려오면 가로, 세로 약 2m 크기의 스피커 두 대가 시선을 압도한다. 미국의 한 극장에서 영화 상영 시 사용하던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다. 우리나라에선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거대한 스피커가 들려주는 소리는 편안하고 따뜻했다.


“오디오를 취미로 삼다 보면 저걸(웨스턴 일렉트릭)로 가게 돼 있어요. 오디오를 수집하다 보면 더 밑으로는 못 내려가게 돼 있어요. 크기가 클수록 소리도 더 좋고요. 그런데 이렇게 큰 스피커를 집에서 혼자 듣기에는 무리가 있었어요. 이 바를 열게 된 계기도 제가 가진 오디오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음악을 많은 사람과 함께 듣기 위해서였죠. 이 스피커로 듣기 위해서는 가정집보다는 넓은 공간과 높이가 필요했거든요.”


진 대표는 더비스를 위해 천장과 벽, 바닥부터 공사해야 했다. 스피커가 뿜어내는 음질을 더욱 잘 잡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가끔 클래식 공연도 열려요. 그런데 아무래도 오디오 출력에 맞춰진 공간이다 보니 소리 울림이 덜하죠. 그래서 연주자들이 난감해할 때도 있습니다.”


더비스의 상징과도 같은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는 주로 독일의 지멘스 오디오와 연결해 사용한다. 무대 격인 공간에는 지멘스를 비롯해 수십여 대의 오디오와 스피커가 망라돼 있다. 수십 대의 오디오는 그가 모두 연결해 대부분이 실제로 사용 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내가 하루키가 음악을 들을 때 오디오 시스템을 보면서 뒤에 스파게티가 한 접시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전 스파게티가 50접시쯤 있는 셈이죠.(웃음)”


수십 대의 오디오와 스피커를 연결한 탓에 오디오 뒤편에 있는 수십 개의 전선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는 이 시스템을 손수 연결했다. 그는 고객이 요청하는 음악에 따라서 오디오와 스피커를 달리 선택한다.


“클래식과 재즈는 별 차이가 없는데 가끔 팝 음악을 틀어달라는 고객이 있어요. 제가 가진 오디오는 대부분이 빈티지 오디오이다 보니 초저역 음역대가 강화된 요즘의 팝 음악을 듣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고객 요청이어서 틀어드리긴 하지만 웨스턴 일렉트릭의 출력은 줄이고, 다른 스피커의 출력을 높여 절충하곤 하죠. 그렇지 않으면 음악의 출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피커가 고장 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진 대표가 가진 오디오는 대부분이 빈티지다.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것. 그런 탓에 고장 나면 수리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빈티지 오디오만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까.


“빈티지 오디오가 주는 음색은 분명 젊은 소리는 아니에요. 원숙한 40대 멋쟁이 여성을 닮았다고 할까요. 소리도 무리하게 내지 않고 편안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음악만 7~8시간을 들어요. 요즘 오디오로는 그렇게 오랜 시간 들을 수가 없죠. 그런데 빈티지 오디오는 달라요. 아무리 오랜 시간 들어도 한결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죠.”


빈티지 오디오가 가진 특징이었다. 깊은 울림과 편안한 소리. 빈티지 오디오는 그래서 클래식 음악과 잘 어울렸다. 레트로 열풍과 함께 오디오 수집계에도 빈티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래서 옛날에 나온 기계를 복각해 재출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역시 재료가 가진 특성 때문에 음악의 결에 차이가 크다.


이미 수십 대의 오디오를 갖추었으니 수집욕은 어느 정도 내려놓았을 터. 그럼에도 새로운 소리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다.


“지금은 거의 수집을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오디오를 수집하다 보니 주변에 비슷한 오디오 수집가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기계를 접할 때가 있죠. 그럴 때 오는 유혹은 엄청나요. 새로운 소리가 들리면 또 갖고 싶어집니다.”

1,2 진낙원 대표가 음악을 선곡하고 기기를 조작하는 공간. 3 진공관 앰프. 소리를 진공관에서 증폭시켜 출력한다.

1 더비스에는 진낙원 대표가 소장한 수십여 대의 오디오가 진열돼 있는데 실제로 모두 선을 연결해 사용하고 있다. 2 더비스의 내부 모습. 2진 대표가 사용하는 LP. 3 지멘스 검청용 앰프. 이 앰프를 소장한 사람은 국내에서 진 대표가 유일하다. 전 세계에 두 대가 있다고 알려지는데 나머지 한 대는 독일에 있다. 4 1960년대 데카 빈티지 장전축.


오디오를 수집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언제부터 오디오를 수집하셨나요.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셔서 집에 독일 장전축이 있었어요. 거기서 들려오는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중학교 때는 친구가 전축 조립을 공부하면서 조립식 전축을 하나 줬는데 그걸 계기로 하나 둘 수집하기 시작했죠. 제가 음악 듣는 걸 하도 좋아하니까 저희 어머니께서는 제게 음악방을 따로 만들어 주실 정도였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는 뒷전이었고 음악 듣는 일에만 몰두했죠. 중앙시장에 다니면서 오디오를 바꿀 때마다 제게 신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에요.(웃음) 그 이후 잘 아시다시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올댓재즈라는 재즈바를 1986년 인수해 30여 년째 운영 중이에요(진낙원 대표는 열아홉 살에 올댓재즈의 개업 손님이 된 이래 10년 동안 디제이와 지배인을 거치면서 아예 올댓재즈를 인수하게 된다). 다양한 스피커로 음악을 듣다 보니 또 음악에 대한 폭도 넓어졌어요. 클래식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더비스를 열게 된 거죠.”


가장 애착이 가는 컬렉션이 있나요.


“네. 눈앞에 가장 큰 저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예요. 거기에 앰프는 지멘스 검청용 앰프를 사용하죠. 이 앰프는 국내에서 저만 가진 거예요. 독일에 한 대 더 있고요. 음악은 타이달(Tidal)이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턴테이블이나 CD의 음질과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에요. 빈티지 오디오는 유럽 국가에서 많이 생산했는데, 저는 주로 미국, 독일, 영국의 빈티지 오디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디오도 국가별로 차이가 있을까요.


“소리가 주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이건 오디오를 듣는 사람이라면 모두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민족마다 특성이 다른 탓에 소리의 특성도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계 스피커는 호방한 음색이 특징입니다. 독일은 섬세하고, 영국은 조금 더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입니다. 저는 이 세 국가의 오디오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하는 편입니다. 같은 음악도 스피커에 따라 전혀 다른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합이 맞는 시스템과 음악이 있는 거죠.”


빈티지 오디오는 관리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빈티지 오디오도 관리는 별 다른 게 없어요. 그저 주기적으로 전기를 흘려보내면서 틀어 줘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오디오를 다 사용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죠. 그런데 역시 수리는 까다로워요. 간단한 건 제가 고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항상 가까이 모시는 기술자가 있습니다. 고장 나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할 수 있게요.”


빈티지 오디오에 입문하는 분들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소리가 좋은 빈티지 진공관을 구입하고 리시버에는 블루투스를 연결해 듣는 것을 추천합니다. 턴테이블은 빈티지가 물론 소리가 좋지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에 너무 저렴하지 않은 다이렉트 턴테이블을 사실 것을 추천해요. 오디오를 수집하는 것은 다른 수집에 비해 돈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용을 처음부터 많이 들이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맞춰 음악을 즐기는 것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요.


“어떤 종류의 오디오를 고르느냐의 문제만큼 공간의 크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공간의 높이가 중요하죠. 공간이 되지 않는다면 무리하게 큰 스피커는 적절하지 않은 조합입니다. 천장이 높아야 하고 벽과 천장은 천연펄프로 공진이 없게끔 음향공사를 해 줘야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7호(2020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