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얼마 전 부모님이 보내주신 강원도 산밤을 무심히 솥에 삶아 먹었다. 모락모락 나는 연기 속에 포슬포슬한 밤 맛이 고소하니, 달다. 밤이 이렇게 맛있는 걸 보니 정말 완연한 가을이다. 맛있는 식재료가 넘치는 이때 바다에서도 한껏 맛이 오른 제철 어패류들이 우리의 미각을 공습하고 있다. 풍요로운 가을 바다의 맛 3대장을 소개한다. 참고 문헌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황선도 지음)

가을을 기다린 바다의 맛

바다표 보양식품, 굴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는 굴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바다의 보양 식재료다.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굴 껍질을 벗겨 레몬만 끼얹어 날로 먹는 것을 으뜸으로 여기고, 일본에서는 굴 구이가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굴 값이 저렴한 나라로 꼽히는 우리나라에서 굴의 변신은 더욱 다채롭다.

김치에 굴을 넣는가 하면 굴젓, 굴전, 굴국, 굴보쌈 등 한국인들의 굴 사랑은 각별하다. 철, 구리, 아연, 망간 등의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굴은 훌륭한 강장식품으로 과음으로 깨어진 영양의 균형을 바로잡는 데 도움을 준다.

굴에 함유된 타우린이 몸속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굴속의 탄수화물은 효과적인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으로 소화 흡수가 잘 돼 어린이와 노약자에게 매우 좋다. 신선한 굴을 고르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보기에 전체적으로 움츠려 있는 듯한 형상의 굴이 좋다. 살점은 반투명하면서 광택이 나는 유백색이어야 하고, 살점 가장자리의 검은 테두리는 짙고 선명해야 신선하다.


통영의 바다를 그대로
서대문 ‘굴대박 & 초계국수’
우리나라에서 굴 하면 역시 통영이 아닐까. 이곳은 17년 전부터 매일 통영에서 직송된 굴만을 사용하는 사장님의 다양한 굴 요리 노하우가 오롯이 담겨 있다. 과거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시즌2에도 소개돼 화제가 됐다.

가을을 기다린 바다의 맛
가을을 기다린 바다의 맛
[위에서부터 굴전, 굴국밥과 굴보쌈. 사진 김수정]
특히 굴이 제철인 11~1월 사이에는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굴과 관련된 모든 메뉴가 고루 맛있는데 사장님의 추천 메뉴는 굴국밥과 굴보쌈. 필자의 선택은 굴국밥이다. 오직 채소와 건어물로 우려낸 맑은 육수에 탱글탱글한 굴이 만나 개운하고, 굴 특유의 진한 맛이 일품이다.
국물과 함께 말아진 밥을 한술 떠 찬으로 내어 주시는 깍두기를 올려 먹으면 몸속 구석구석 뭉근하게 녹아드는 느낌이다. 굴전과 굴보쌈도 군더더기 없이 맛있다. 과음한 다음 날 해장하고 싶을 때, 으슬으슬 추위에 뜨거운 국물이 생각난다면 11월 꼭 이곳을 방문해 볼 것.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로 66-1

바다의 보리, 고등어
가을을 기다린 바다의 맛
고등어는 전갱이와 함께 ‘바다의 보리’라고 불린다. 보리처럼 영양가가 높고 값이 싸서 서민에게 친근한 생선이었기 때문이다. 어획량도 많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여러 바다에 이르기까지 그 분포가 넓고 많이 잡힌다. 고등어엔 오메가3(DHA, EPA 등) 지방산이 많이 함유돼 있어 뇌경색이나 심근경색 등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 또한 비타민B2와 철이 많아 피부 미용과 빈혈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다. 고등어 한 토막을 먹으면 오메가3 지방산 1g을 섭취할 수 있고, 주 2회 이상 섭취하면 혈액을 맑게 하고 혈액순환에 좋으며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5~7월에 산란을 하고 가을이 되면 월동에 들어가기 전까지 먹이를 많이 먹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고등어 맛은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가 일품이다. 옛날에 고부 갈등이 심할 때 ‘가을 배와 가을 고등어는 며느리에게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11월엔 원 없이 고등어를 맛보는 건 어떨까.


11월 제주도로 떠나는 이유
제주도 만선식당
언제 가도 매력적인 제주도. 사람들이 제주도를 가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필자의 목적은 반은 올레길, 반은 식도락이다. 1일 5식은 기본. 차곡차곡 쌓이는 체내 셀룰라이트는 야속하지만 그만큼 제주엔 즐거운 먹거리가 넘친다. 제주 방문 때마다 미식가 지인들의 ‘맛집 데이터’를 얻기도 하는데 그중 공통적으로 꼽힌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가을을 기다린 바다의 맛
가을을 기다린 바다의 맛
[위에서부터 고등어회(소), 고등어 구이. 사진 김수정]
특히 고등어 맛이 오를 대로 오른 11월에 제주도를 방문한다면 여기가 ‘제주여행의 첫 번째’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딱 1년 전 방문한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고등어회다. 고등어초밥을 먹어 본 적은 더러 있었지만 회로는 여기서 처음 먹어 봤는데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신세계’를 연 맛이랄까.

싱싱한 고등어의 고소함이 쫀쫀하면서도 사르르 혀에 감긴다. 비린내는 제로. 무엇보다 회를 시키면 함께 나오는 김에 찰기 있는 흑미밥과 고등어회 한 점, 특제 소스를 한데 싸 먹으면 내 안에서 제주도 바다가 물결치는 느낌이다. 올 11월, 제주로 떠난다면 이곳을 놓치지 말길.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항구로 44

자연의 건강식품, 과메기
본래의 자연 재료 상태보다 발효됐을 때 감칠맛이 나고, 영양소 등이 훨씬 풍부해지는 음식들이 있다. 과메기도 그중 하나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를 원재료로 만들었고, 과메기의 주산지가 포항 인근 지역인 것도 과거 이곳에서 청어가 많이 어획됐기 때문이다.
가을을 기다린 바다의 맛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청어가 잡히지 않으면서 대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구덕구덕 말린 꽁치를 대개 과메기라고 한다. 과메기는 숙성 과정을 거치는 동안 생성된 핵산과 오메가3 등 지방산의 양이 증가해 피부 노화, 체력 저하를 억제하고, 아스파라긴산이 다량 함유돼 숙취 해소에도 최적이다. 일체의 가공 없이 자연 그대로의 값싼 꽁치로 만들어도 지질 함유량이 생선류 가운데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자연 건강식품이다. 그래서 값싸고 영양가 많은 과메기는 가을과 겨울철 김이나 미역 등 해조류와 마늘, 고추, 배추 등을 곁들여 싸 먹으면 그 감칠맛을 더욱 즐길 수 있다. 여기에 반주까지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


택배로도 시켜 먹는 과메기 맛집
엘토르원조구룡포과메기
TV를 틀면 여기도 먹방(음식을 먹는 방송), 저기도 먹방, 먹방, 먹방투성이다. 아무리 먹방의 종주국이라고 하지만 가끔 이건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먹방이 쏟아진다. 그런데 코미디TV의 인기 예능 <맛있는 녀석들>은 몇 년째 본방, 혹은 재방으로 봐도 재밌다. 핵심은 진정성. 음식을 향한 그들의 거칠면서도 섬세한 욕망이 식욕을 자극한다.

가을을 기다린 바다의 맛
[사진 출처 : 엘토르원조구룡포과메기 페이스북]
이 가게는 <맛있는 녀석들>이 필자에게 소개한 찐 ‘과메기 맛집’이다. 당시 방송을 보고 포항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택배로도 배달이 된다기에 주저 없이 청어과메기 세트와 꽁치과메기 세트를 주문했다. 도착한 택배에는 깔끔하게 포장된 과메기와 각종 채소, 특제 초장, 김이 함께 담겨 있었다. 딱 보기에도 빛이 나는 청어와 꽁치과메기는 기름이 한껏 올랐고, 구덕하면서도 쫄깃하고, 눅진한 그 맛이 잊히지가 않는다. 기름 맛이 더 강렬한 쪽은 꽁치였지만, ‘으른 입맛’ 필자의 아버지는 청어에 한 표를 주셨다. 참고로 이곳에서 과메기는 매년 9월부터 4월 말까지만 맛볼 수 있으니 11월엔 과메기를 즐겨 보자.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로40번길 7-1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