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구상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l 사진 각 사 제공] 매년 쏟아지는 신차. 소비자의 관심사는 매우 다양하지만, 첫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외관 디자인일 터다. 자동차 디자인은 어떻게 탄생할까.

자동차 디자인의 탄생, 그 속내

새로운 차량이 등장하면 소비자의 관심사는 출력에서부터 승차감, 소음, 코너링 성능 등 다양하겠지만, 내·외장 디자인은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크게 관심을 가지는 부분일 것이다. 넓은 맥락에서 자동차 디자인은 단지 내·외장 부품의 형태, 질감 혹은 색상만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소프트웨어적 특성으로서 디자인의 중요도는 전동화 혹은 자율주행 기술의 개발, 나아가 다양한 형태의 모빌리티 시대가 올수록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요즘은 제조업체들 간 기술 제휴나 플랫폼 공용화, 멀티 브랜드 마케팅 등으로 같거나 유사한 플랫폼을 쓰면서 내·외장 디자인을 달리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즉,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성격의 디자인 차별화가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대다.

자동차 디자인의 탄생, 그 속내

초미의 관심사 ‘디자인’의 시대

대체로 우리들이 자동차 디자인을 통해 기대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차량의 겉과 속에서 눈에 들어오는 형태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 메이커의 실무 디자이너들은 차별화되면서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미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멋진 디자인의 차량은 단지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만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그들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비로소 성능 좋고 안전하며 효율적인 자동차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훌륭한 설계자와 다양한 분야에서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의 노력이 함께 결합돼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디자인의 변화는 중요하다. 그런 디자인의 변화와 관련한 사례로 회자되는 차량이 하나 있다. 바로 2002년형 BMW 7시리즈(E65)다.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Christopher Bangle, 1956년~)에 의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개발돼 등장한 2002년형 7시리즈는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며 성공했지만, 기존의 BMW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에는 너무 급진적으로 보여 논란이 됐다. 그러나 이 경우는 사실상 디자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급격한 변화에 놀란 소비자 인식의 문제였다. BMW의 개발진은 전체적으로 훌륭한 완성도의 차를 개발했을 뿐이었다.

자동차 디자인의 탄생, 그 속내
한편으로 그전에 뱅글이 피아트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그의 디자인으로 1997년에 등장한 피아트 쿠페의 원래 디자인 모형을 보면 디자인의 생경함에 논란이 있었을 법도 하지만, 피아트는 이를 잘 다듬어서 훨씬 높은 완성도를 가진 창의적 디자인의 차로 내놨다.

반면에 디자인의 급진성으로 승부를 낸 차들도 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타임머신으로 유명한 드로리언은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 1938년~)의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의 대표작이고, 그보다 앞서 1971년에 등장한 쿤타치는 또 다른 거장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 1938년~)의 직관적 감성에 기반한 급진적 디자인의 대표작이다. 이들 두 차량은 창의적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들의 독재(?)로 혁신적 디자인이 완성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디자인이 햇빛을 보는 경우도 있다. 정말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수천억을 투자해 개발한 사례들을 보면, 분명 누군가는 그에 대한 의사결정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자동차 메이커마다 디자인 완성도가 높고 낮은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실무 디자이너들의 그림 실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리 창의적 디자인을 했더라도 그것이 경영진에게 선택을 받지 못하면 그 디자인은 세상에 나올 수 없다. 반대로 여하튼 간에 창의적 디자인을 했고 그것을 밀어붙일 수 있다면 햇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06년에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외국인 수석 디자이너 시대가 열렸다. 유럽인 수석 디자이너가 부임하면서 그 브랜드의 차들이 하루아침에 창의적 디자인으로 탈바꿈하는 일이 일어났다. 수석 디자이너 한 사람 바뀐 것뿐인데, 디자인이 그야말로 괄목상대, ‘확’ 달라진 것이다. 유럽인 수석 디자이너의 휘하에서 실무 디자이너들의 ‘그림 실력’이 하루아침에 일취월장했던 것이었을까.

그런데 사실 이것은 그림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결정 방법이 변화한 결과다. 실무 디자이너의 재능과 수석 디자이너의 안목이 결합돼 세련된 디자인을 완성하고, 그것을 아무런 잡음(?) 없이 최고경영진으로부터 승인을 얻는 프로세스가 정착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루아침’에 디자인이 달라진 이유일 것이다.
자동차 디자인의 탄생, 그 속내


‘노’맨이 만드는 자동차 디자인


그런 이유에서 고독한 위치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수석 디자이너 주변에는 ‘예스맨’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그런 권한을 가진 수석 디자이너의 판단에 ‘노(No)’라고 말하기는 사실상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걸작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심지어 드로리언의 디자이너이며, 거장이라고 불리는 주지아로조차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채 단명한 모델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소량 생산하는 슈퍼카는 디자이너의 ‘독재’가 개성을 강조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백만 대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양산 메이커의 수석 디자이너 주변에 예스맨만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동차 디자인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며, 양산 메이커에서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사실이다.

다수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예술가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작품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자인 의사결정 과정에는 반드시 객관적 관점에서의 ‘노’가 있어야 한다. 예스맨들에 의한 인(人)의 장막(帳幕)에 둘러싸인 채 디자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면 객관적 관점을 가지기 어렵다.

창의적이지만 객관적으로 균형 잡힌 디자인. 이 말은 일견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반대로 창의적이지만 균형이 부족한 디자인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창의적이면서 객관적으로 균형 잡힌 디자인이야말로 자동차 디자인이 지향해야 하는 지상 목표이며, 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무 디자이너들의 직관적 재능과 수석 디자이너의 깊이 있는 안목이 결합되는 동시에 객관적 비평이 반영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구상 교수는…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이른바 자동차디자인 교수로 유명하다. 기아자동차
미국 디자인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지난 2007년 자동차 디자인아이덴티티에 대한 논문으로 서울대 공업디자인에서 1호 박사학위 수여자가 됐다. <스케치&렌더링 스튜디오>. <자동차 디자인 아이덴티티의 비밀> 등을 썼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2호(2020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