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중국의 도자기, 비단만이 아니다. 일본의 공예품 또한 유럽으로 들어갔다. 동양 문화의 매력에 흠뻑 젖은 시누아즈리 시대.
(왼쪽부터 시계 방향) 에나멜로 트리밍 부분을 장식한 크리스털 디너 접시와 크리스털 수프볼(아르데코), 스털링 홀더의 화병(아르누보), 스카이블루와 코발트블루 와인 잔과 화병(빈티지).
유례없는 전염병으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문을 꽁꽁 걸어 잠가서 글로벌 교류라는 말조차 무색해진 요즈음이다. K팝이 일찍부터 한류를 주도하면서 그 뒤를 이어 한국 음식, 한국 드라마, 한국 화장품, 한국 가전제품 등이 동남아를 비롯한 남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얻으며 한류가 전 세계에 정착되는 느낌이다.
대체로 서양 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며 생활해 왔던 우리들이기에 이러한 현상은 반갑고 기쁘게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은 늘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에 예로부터 여행은 인류의 로망이었고 이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늘 있어 왔다. 저 멀리 고대 로마 시대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실크로드 또한 로마인들의 이국적인 낯설음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에나멜 장식이 아름다운 베네치안 글라스(아르누보).
핸드페인팅이 정교한 세브르 디너 접시와 티파니 센터피스(아르데코).
동양풍으로 점철된 그 시대의 유행
비단과 도자기를 향한 끝없는 열망이 유럽 귀족들의 실내장식과 문화로 꽃피워져 마침내 로코코 예술을 탄생시켰다. 중국풍 시누아즈리(chinoiserie) 시대에 수많은 중국의 도자기, 비단이 유럽으로 이동할 즈음, 일찍이 네덜란드와 교역을 시작한 일본의 공예품 또한 유럽에 함께 들어갔다.
당시 동방이라는 개념은 중국이라는 큰 하나의 나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 직후 정부에 의해 압수된 왕실과 귀족들의 소장품 목록에서도 일본의 공예품들은 많이 수록돼 있었고, 1793년 루브르박물관 개관 시기에 출간된 유물 카탈로그에서도 일본 도자기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유물들은 출처와 상관없이 모두 시누아즈리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중국과 일본은 동일한 미학적 가치를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인식됐고 중국은 동북아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국가로 보았기에 일본의 유물들은 시누아즈리의 일부로 간주됐다. 혁명 직후 정부에 의해 압수돼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됐던 마리 앙투아네트 소유의 일본 공예품들도 문양의 독창성과 옻칠 공예의 기술적 우수성을 높게 평가 받았으나, 이 유물들에 관한 당시 정부 보고서에서 일본 미술에 관한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18세기 미술 시장에서 주로 거래됐던 인기 품목들은 귀족 저택의 시누아즈리 실내장식을 위해 사용되던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 병풍, 그리고 옻칠 공예품 등이었다. 특히 일본의 옻칠 공예는 중국의 도자기와 더불어 오랜 기간 유럽인들을 매혹시켰다.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엄청난 비율로 늘어난 19세기의 상황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예품과 장신구로 집 안과 여인들을 꾸미는 데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 일본에서 들여온 부채와 우산, 그리고 정교한 칠보 공예품으로 장식된 저택의 벽은 당시의 흔한 모습이었다. ‘옻칠’이 영어로 ‘Japan’이라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칠기는 일본을 통해서 유럽에 들어갔고, 유럽인들은 옻칠의 화려한 광택과 매끄러운 질감에 열광했다. 이러한 옻칠 공예의 인기는 특히 가구와 장신구에서 두드러졌다.
17세기부터 중국 도자기와 함께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개됐던 일본의 옻칠 공예를 오랜 기간 좋아했던 유럽인들은 자체적으로 옻칠을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영국의 ‘재패닝(Japaning)’이나 마르탱 형제가 개발한 프랑스의 ‘베르니 마르탱(Vernis Martin)’도 모두 동양의 옻칠을 모방한 서양의 칠 기법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곤돌라를 칠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중국 칠기 가구를 모방한 기법인 ‘라카(lacca)’를 개발했으며, 이것은 경쾌한 선만큼이나 빛깔 또한 밝았다. 동양의 색을 그대로 딴 검정과 빨강도 인기가 있었지만, 그에 더해 파스텔 계열의 밝은색 또한 선호됐다. 파랑, 노랑, 흰색, 연보라와 같은 색을 칠한 가구들은 화이트 앤드 골드로 마감한 실내 벽장식에 화사함을 더했다. 우리가 유럽을 여행할 때 흔히 보는 저택의 실내 인테리어는 파스텔 톤의 벽과 대비되는 화려한 문양의 가구들인데, 이들 가구는 모두 18세기와 19세기에 일본에서 들어간 칠기 가구의 영향이다.
코발트블루의 센터피스와 화병(아르누보).
스털링 오버레이 접시와 스털링과 크리스털이 조화로운 학 모양의 소금통(아르누보).
일본산 나전칠기와 유럽 가구의 만남
뭐든지 잘 모방하고, 또 그에 덧붙여 창의력 있는 더 나은 완성품을 만들어 내곤 했던 유럽인들은 독특한 유럽식 옻칠 가구를 만들어 낸다. 전체 틀은 유럽의 가구인 콘솔이나 옷장, 사이드 테이블 같은 형태에 상판이나 전면은 일본의 옻칠을 그대로 쓰는 방식이다. 이러한 가구들은 동서양 문화의 독특한 컬래버레이션으로, 이는 도자기에 있어 청화백자가 이슬람의 안료인 산화코발트블루를 중국의 도자기 기술과 조화시켜 만들어 낸 동서양의 합작품인 것과 마찬가지다.
나전을 덧붙여 더욱 화려했던 일본산 병풍은 분해돼 곡선이 아름다운 콘솔이나 사이드 테이블의 상판으로 붙여져 저택을 화려하게 꾸몄고, 일본산 나전칠기 제품을 유럽 가구에 붙여 탄생시킨 이 시대의 유럽 가구들은 지금도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읽었음직한 교활하기 짝이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다른 나라로 가는 하늘길이 막힌 요즈음, 1년에 한두 번쯤의 해외여행에 길들여졌던 사람들은 이국적 분위기가 그리울 따름이다.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여행이 중산층에도 가능해졌던 19세기에 이국적인 많은 것들이 열병처럼 유럽을 휩쓸었던 것은 새롭고 신비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양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현대의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유럽인들이 동양의 문물에 그토록 열광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낯선 느낌이다. 그러나 유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보듯이 문화는 돌고 도는 것이기에 언젠가 우리의 한류가 세계로 더욱 퍼져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스털링이 조각된 크리스털 저그(아르누보).
옻칠을 연상케 하는 스털링이 조각된 센터피스와 티포트(아르누보).
스털링 오버레이 코발트블루 티 세트(아르누보).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2호(2020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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