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무급휴가, 정리, 매각, 부도, 파산….’ 김 부장은 연일 들려오는 여행업계 소식이 무섭기만 하다. 이러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끝난 이후에도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big story] 생사기로 여행업, 심폐소생 통할까

여행업계 사면초가 시장 재편 가속화

2020년 5월 26일, ‘2601명.’ 역대 최저치다. 인천국제공항의 하루 이용객(여객 수) 수가 개항 이래 최저 성적으로 떨어졌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으로 인해 기록한 사상 최저치(2만7000명)를 갈아치웠다.

여행업의 호황이 계속되며 인천국제공항의 하루 이용객은 나날이 급증해 왔다. 문을 연 2001년 5만2000명을 기록한 이래 지난해 8월에는 23만4000명이 방문,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 여행 시장의 팽창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1994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출국자가 급증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해외로 나가려는 수요가 늘어났다. 2016년 처음 2000만 명을 돌파한 뒤 불과 3년 만에 3000만 여행자 시대를 목전에 뒀다. 호황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2010년대 이후 해외여행의 빗장을 푼 중국이 세계 관광 지출의 20%를 차지하는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여행업의 성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2019년 5월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는 세계 여행 산업이 매년 3% 이상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낙관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5월 인천공항을 찾은 일평균 여객 수는 13만7924명으로, 1년 전인 지난해 5월 582만380명보다 97.6% 감소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3월 이후 역성장은 계속됐다. -89.6%(3월), -97.3%(4월), -97.6%(5월)….

[big story] 생사기로 여행업, 심폐소생 통할까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화권 위주로 감소하던 항공여객은 호주, 스페인 등 선진국까지 운항 중단이 확산됨에 따라 가파른 감소세를 이어갔다.

전에 없던 위기 상황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인천공항 하루 이용객이 7000∼1만2000명 미만이면 비상운영 1단계(출국장 운영 축소, 셔틀트레인 감편 등), 3000∼7000명 미만이면 2단계(1·2터미널 부분 운영), 3000명 미만이면 3단계(터미널 기능 최소화) 비상 운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 이후 공항 산업 생태계가 심각한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는 판단에서다.

손님이 사라지자 매출도 급감했다. 공항에 입점한 면세점과 식음료업체들 또한 코로나19로 심각한 경영난을 호소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사의 올해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8823억 원 감소(-102%)한 -163억 원을 기록해 2003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항공사도 마찬가지. 국가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전 세계 주요 공항이 한시적으로 폐쇄되거나 일부 시설을 축소 운영하면서 항공사도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스타항공은 3월 말부터 국내선과 국제선 운항을 모두 중단했다. 직원들의 월급은 무급으로 바뀌었고,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황이다. 국제선 운항이 모두 막히고, 국내선 비행기만 겨우 띄우면서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스타항공,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등 저가 항공사(LCC)들은 지난 1분기 모두 수백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는 정부 지원으로 급한 불을 껐지만. 주요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 추이를 감안하면 국제선 수송량이 회복기에 오르는 시점은 빨라야 연말 이후로 예상된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미국 댈러스와 오스트리아 빈 노선의 운항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미국·유럽 노선의 운항 횟수를 늘릴 예정이다. 당장의 여객 수요 증가를 기대하기보다는 일단 선제적으로 노선을 열어 두는 동시에 화물 공급 확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열린 ‘하반기 산업전망 세미나’에서 “코로나19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이상 항공 산업이 지난해 수준의 수요를 회복하려면 최소 3∼4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이 기간을 버티지 못한다면, 도산할 가능성도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6조 원 이상의 항공사 매출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의 추가 지원이 불발될 경우 파산하는 LCC사가 등장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해외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19가 없었고, 기존의 추세대로 항공여객 수요가 늘었다고 하면 전 세계 항공여객 수요는 2025년까지 연평균 4.7%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항공여객 수요는 지난해보다 약 48% 감소할 것이라고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전망하고 있다. UAE 에티하드항공과 에티하드항공 최고경영자는 지난 4월 29일 미-UAE 경제공동위원회에서 “항공 산업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연내 85%가 파산할 수 있다”고 했다.
[big story] 생사기로 여행업, 심폐소생 통할까

사실상 휴업, ‘9월’ 생사 가려질 것

거대한 손실은 여행사에도 들이닥쳤다. 국내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 1위 업체인 하나투어는 지난 5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무급휴직을 실시했다. 주 3일 근무하는 최소 인력을 제외하고 임직원 대상 6월부터 3개월간 무급휴직을 시행키로 했다. 1분기에만 27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2분기 이후도 대규모 적자가 예견된 탓이다.

하나투어의 모객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의 해외여행 수요는 지난 2월 전년 동기 대비 83.8% 감소한 데 이어 3월에는 99.2%, 4월에는 99.9%까지 급감하며 사실상 ‘제로’ 매출을 기록했다. 실적 부진에 자회사도 정리에 나섰다. 자회사 중 비여행 부문에 속하는 출판인쇄업 하나티앤미디어와 전자상거래업 하나샵 등 일부는 정리 절차를 밟고 있으며, 나머지 자회사에 대해서도 정리 또는 본사 영입 등을 검토 중이다.

6월 들어 국내에서 일부 국제선 항공편 운항이 재개되고 유럽 일부 국가가 외국인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지만 아직 해외여행을 재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남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요 여행국인 일본과 중국에 대한 항공 노선 재개에 따른 수요 회복이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매출 회복은 더딜 것으로 보인다”며 “전체 노선 중 45%를 담당하던 일본과 중국 노선의 하늘길이 다시 재개된 후 해외여행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해소되는 2~3개월 후부터 본업 정체가 해소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초대로라면 여름휴가철 해외여행 패키지 상품 판매로 예약전화가 불이 났어야 할 상황이지만, 여행사 모두 여름 특수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다. 지인해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패키지 상품 예약 증감률은 -99%를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하늘길이 열리지 않았고 해외에 나가봤자 2주간 자가격리가 필수이기 때문에 여행사들은 사실상 휴업에 가까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전대미문의 상황에 여행사들은 버티기에 돌입했다. 일단은 코로나19 위협이 비교적 안전한 국내 상황에 맞춰 내수 활성화에 집중하고 있다. 홈페이지 전면을 국내 여행 상품 홍보로 개편하고, 지방자치단체들과 협력해 국내 여행 상품 개발에 나섰다. 해외여행과 비교해 수익성은 떨어지지만 지금의 상황을 고려한 선택이다. 정부도 발맞춰 5월 30일~6월 14일
2주간 예정된 비성수기 여행주간을 6월 20일~7월 19일 한 달로 확대하고 관광 내수시장 활성화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국내 역시 코로나19의 안전지대가 아니기에 상황은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다. 국내 매출이 아무리 뛰어도, 해외여행이 재개되지 않는 한 여행사의 손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여행사들은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거나 무급휴직 등을 실시하며 비용 줄이기에 나섰지만, 상당수 영세 여행사는 사업주가 10%를 분담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아예 고용유지지원금조차 신청하지 못하거나 이마저도 곧 지급 종료를 앞두고 있어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은 6개월로 한정돼 있다. 6개월이 지난 이후부터는 모든 고정비와 불황을 회사 홀로 견뎌야 한다. 박영운 비단길여행사 대표는 “많은 여행사가 지난 3월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했다”며 “지원금 지급이 종료되는 6개월 후인 오는 9월이 오면 여행사의 생사 여부가 가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행업계에서는 버티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 애널리스트는 “9월을 기점으로 여행업의 상위 사업자를 중심으로 시장 재편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2호(2020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