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제공] 취미로 목공을 즐기는 사람, 이른바 ‘취목족’이 늘고 있다. 자르고, 깎고, 조이는 그 원초적인 작업. 목공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다.

[special] 체험 소비, 목공에 빠지다
“오늘 제 생일인데 무언가 기념하고 싶었어요. 제 손으로 직접 만들면 좋겠다 싶어 신청했죠.” 지난 5월 10일 서울 강남의 한 가구공방. 6명의 수강생이 구슬땀을 흘리며 우드스피커의 사포 작업에 열중이다. 정정인(23) 씨도 그중 한 명. 생일을 맞아 가구공방을 찾은 그는 나만의 기념품을 갖기 위해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목재 선택부터 디자인까지 직접 할 수 있고 마지막에는 제 이름까지 박을 수 있어 좋아요. 스물세 살의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구공방을 찾는 사람들


목공에 빠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목공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 DIY(Do It Yourself) 시장이 활성화된 1990년대부터 활기를 띠었으니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목공에 대한 관심은 사뭇 다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젊은 층 사이에서 목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5060대 은퇴 세대들이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공방문을 두드렸던 이전과는 크게 다른 양상이다.


#목공방 #목공 #목공예 #목공수업 #목공원데이클래스. 관심을 입증하듯이 SNS에서 목공 관련 해시태그가 크게 늘었다. 목공 18만 건, 목공방 8만 건, 목공원데이클래스만으로 1000개 이상의 게시물이 생겼다. 2030대가 즐겨 찾는 인스타그램에서만 한 집계다. 목공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국내 최대 목공 커뮤니티인 우드워커의 회원 수도 증가했다. 5월 한 달간 가입자 수가 1000명에 육박할 만큼 매일 가입자가 순증하고 있다. 5월 25일 기준 29만9058명이다.


목공 수요에 힘입어 소규모 목공방도 늘었다. 산림청 산하 비영리법인인 한국DIY가구공방협회 관계자는 “최근 목공방에 대한 관심이 늘며 공방 창업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가구공룡 이케아, 가구 프랜차이즈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목공방의 가능성을 기대하는 신규 창업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들은 획일화된 주류 시장에 반해 1인 가구, 반려동물을 위한 가구 등 분야를 세분화·전문화해 틈새시장을 비집는다. 달라진 생활 트렌드에 주목해 개인의 다양성을 겨냥한다.


여성 참여도가 늘어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이전까지의 가구 DIY가 주로 남성들의 영역이었다면, 최근에는 목공을 취미로 하는 여성 취목(취미 목수의 줄임말)들이 크게 늘었다. 강남에서 목공방을 운영하는 시정근 정근날 대표목수는 “수강생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며 “남성의 경우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찾았다가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더 많다”라고 말했다.

[special] 체험 소비, 목공에 빠지다

(사진)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목반 공예 활동


목공 수요 증가에 덩달아 어깨춤을 추는 곳이 있으니, 산림청이다. 산림청은 목재 문화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서울시 금천구에 ‘목공창작공유센터’를 열었다. 취미 목공인을 위한 이용시설로, 창작자가 확산하면서 목공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취미 목공인이나 예비 창업자 등 일반인을 위한 제반 시설은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도 취목인이 모여들고 있다. 6월 시작되는 소목반 신청은 이미 조기 마감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 대한민국 명장들에게서 전통 목공예를 배울 수 있어 인기가 많다.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학생, 주부, 직장인, 사업가, 교수 등 청년층부터 노년층까지 우리 전통 목공예를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이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물론 단순 취미생활을 넘어 제2의 직업으로 목공을 선택하려는 이들도 있다. 은퇴 후의 직업으로 삼으려는 5060대, 창업을 준비 중인 2030대 청년들에게서 특히 인기다.

[special] 체험 소비, 목공에 빠지다

(사진)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목반 공예 활동


경기 화성에 거주하는 전민준(27) 씨는 공구를 이용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손맛에 매료돼 1년째 주말마다 지역의 한 목공방을 찾고 있다. 전 씨는 “반복적인 작업으로 생각을 단순화하고 몰입의 단계에 빠지는 그 시간이 참 좋다”며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 푹 빠져들어 진로를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목공예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더 확산될 전망이다. 물건의 소유보다 경험을 우선으로 소비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중심 소비 축으로 떠오르면서 나만의 가구를 갖고 싶은 소비자들이 더 늘 것이란 분석이다. 정지은 IBK기업은행 산업연구팀 과장은 “경험 경제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아닌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가치 있는 체험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며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화·고급화된 경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계적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다가올 미래를 ‘경험이 움직이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단순 제작을 넘어 경험이자 체험의 소비로서 목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Reset, Do It Yourself.’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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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진호 수강생의 작품(조화신 지도).
 정준규 수강생의 작품(박명배 지도).
 박지윤 수강생의 작품(조화신 지도).
 최지아 수강생의 작품(박명배 지도).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