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중년에게도 특별한 ‘something’이 있다.
남들보다 조금 다른 삶으로 조금 더 행복한 사람들, 중년 덕후들을 만났다.

서체 덕후 구본진 씨 “독립운동가 친필, 후세에 전하고 싶었죠”


올해 나이 55세. 구본진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는 20년 넘게 검사로 일하면서 살인범, 조직폭력배들의 글씨에서 특이점을 발견하고, 글씨와 사람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친필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수만 무려 850점에 달한다.

언제부터 친필을 수집했나요.

“대구의 어느 고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독립운동가 곽종석의 편지를 보게 된 게 계기가 돼 2000년부터 독립운동가 친필을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자신이나 가족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글씨를 수집해서 후세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수집했나요.

“현재까지 독립운동가 친필 615명 844점, 친일파 친필 238명 429점입니다. 처음에는 독립운동가의 친필만 모으다가 독립운동가와 대척점에 있던 친일파의 글씨도 함께 모으게 됐어요.”

서체 덕후 구본진 씨 “독립운동가 친필, 후세에 전하고 싶었죠”
(사진) 손병희 시고(1904년, 34x134cm).

가장 애정하는 친필품이 있나요.

“유명한 분들의 글씨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남겨진 필적이 거의 없는 분들의 글씨에 더 애정이 갑니다. 유명한 분들의 글씨는 내가 아니어도 글씨가 남겨질 테지만 유명하지 않은 분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종혁(일명 마덕창) 선생의 글씨는 평양형무소에서 보낸 엽서인데 수감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어서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집니다.”

수집에 따른 애로사항은 없나요.

“독립운동가들의 친필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김구 등 유명한 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글씨체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김좌진, 안창호 같은 분들도 남겨진 필체가 거의 없고요. 그래서 친필인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이를 위해서 필적학, 종이, 인장 등을 두루 공부해야 했습니다.”

서체 덕후 구본진 씨 “독립운동가 친필, 후세에 전하고 싶었죠”
(사진) 이종혁 엽서(1929년 1월 11일, 9X14cm).

친필 수집에 상당한 돈을 쏟으셨을 것 같아요.

“가격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고 관심도 별로 없습니다. 처음부터 기증을 목적으로 수집한 것이기에 되팔거나 경제적인 이익을 취득하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가로 따지면 10억 원 정도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제가 수집을 시작한 2000년에 비해서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덕후의 생활, 다른 분들에게 추천하나요.

“삶에서 무엇인가 빠질 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일이 힘들거나 세상에 지칠 때 수집품을 꺼내놓고 보고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수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 지혜, 인간관계 등은 무궁무진합니다. 이를 통해 인맥이 생기기도 하고 인생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