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순인 LG전자 책임연구원·<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 TV 인기 프로그램이 끝난 뒤 전국 시청자들이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는 짧은 순간이 있다. 그 찰나를 홈쇼핑에서는 ‘재핑 타임(zapping time)’이라고 한다. 짧게 치고 들어오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이 찰나가 홈쇼핑의 운명을 좌우한다. 미래 모빌리티 삼총사는 자율주행자동차, 전기자동차, 공유차다. 디젤엔진 시대에서 삼총사 시대로 전환하는 미래 모빌리티의 재핑 타임에 시장과 소비자를 꽉 붙들려면 어디에 주목해야 할까.

CEO가 알아야 할 IT 트렌드 ⑧미래 모빌리티, 소비시장 이끌 분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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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2019년 9월 추석, 이런 기사가 난 적이 있다. “빅데이터 격돌. SKT ‘12일 4시 출발하세요’ vs 카카오 ‘6시 이후가 최적’”. 두 회사가 각각 최적의 귀성·귀경 시간대를 제안했다. SK텔레콤(SKT)은 T맵 빅데이터를, 카카오는 카카오내비 빅데이터를 기준으로 삼은 예측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도를 결정하는 필수불가결한 경쟁 요소이자 마케팅 요소로 빅데이터가 전면으로 나왔다. 빅데이터는 정보기술(IT)업체의 역량을 판가름할 강력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자율주행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 필수인 것이 바로 이 빅데이터다. 사용자가 자율주행차를 이용할 경우, 애플리케이션으로 호출하고 내비게이션을 통해 목적지까지 갔다가 인근 주차장을 찾아 자율주행차를 대기시키는 것이 기본 시나리오다.

지금 이 시나리오에 등장한 키워드를 보자. 앱 호출 이력, 내비게이션 검색 키워드, 도로 주행 이력, 주차장 검색이다. 이 키워드들의 과거 이력과 신규 이력을 많이 확보한 사업자일수록 사용자에게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테니 자율주행 사업에 유리할 것이다.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이 빅데이터를 분석·확보하는 사업이 계속해서 각광받으리라 전망하는 이유다.

시장 선두 업체들은 이 점을 이미 알고 있다. 구글의 웨이모는 자율주행으로 2018년 1270만 마일을 달렸다. 제너럴모터스(GM)도 자율주행 스타트업 크루즈를 인수해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해 가고 있다. 자율주행의 선두 업체로 꼽히고 있는 이 업체들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빅데이터 수집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퍼스트 마일과 라스트 마일

퍼스트 마일(first mile)이란 집이나 회사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역, 정류장까지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란 대중교통에서 하차한 뒤 최종 목적지인 집이나 회사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자율주행차 시대, 그리고 공유자동차 시대가 되면 개인의 차 소유가 급감한다. 사람들의 퍼스트마일, 라스트마일을 차 대신 책임져 줄 수단이 나올 것이다. 전기자전거, 전기스쿠터, 전동 킥보드 같은 마이크로 모빌리티가 바로 그것이다.

요즘은 정부도, 시민들도 환경보호의 목소리가 높다.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고 모든 이동수단은 전기에너지로 달릴 것이다. 앞에서 말한 마이크로 모빌리티들의 이름 앞에 모두 ‘전기’가 붙는 이유다. 이 트렌드는 도심만 해당하지 않는다. 요즘 농촌은 바퀴 4개가 달린 노인용 스쿠터가 인기다. 경운기보다 더 흔히 보일 정도다. 고령의 노인들도 조작하기 편하고 안전하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외출할 때 사용할 수 있고, 농사 도구, 농작물, 필요 자재를 운반할 수도 있다.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이런 노인용 마이크로 모빌리티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한국교통안전연구원에 따르면 마이크로 모빌리티 시장은 2022년 20만~30만 대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고, 전 세계적으로는 2030년 26조 원 규모로 성장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물론 안정성 문제, 악천후 조건에서의 운용 가능성 문제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는 안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자율주행 차량용 반도체 칩을 공개하면서, “차량에 부담을 주지 않고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테슬라도 강조했듯 미래 모빌리티의 굵직한 필수 요소가 바로 차량용 반도체다. 지금까지 일반 자동차 1대에 차랑용 반도체가 약 200~300개 정도 들어갔다. 하지만 자율주행이 시작되고 기술 단계가 높아질수록 필요해지는 반도체 수는 훨씬 더 증가한다. 미국의 IT 분야 리서치 기업인 가트너에 따르면 완전한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자율주행차 대당 2000여 개의 반도체가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차량용 반도체가 내비게이션이나 오디오,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인포테인먼트에 치중돼 있었다. 하지만 자율주행 시대에는 V2X(Vehicle to X: 차량과 모든 사물 간 통신)로 인포테인먼트뿐 아니라 이미지센서, 카메라, 메모리 등을 활용하기 위해 고성능의 반도체가 필요해졌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18년 기준으로 전년보다 18%나 성장했으며, 2022년까지 연평균 7.7% 성장할 것이라 한다.

차량용 반도체는 다른 스마트 기기에 탑재되는 제품보다 월등히 더 높은 품질과 기능이 요구된다. 차는 사람의 생명과 몹시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율주행차에 탑재되는 반도체라면,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정교한 인공지능(AI) 기능이 필요하다. 엔비디아, 모빌아이 등 글로벌 기업들은 AI 반도체 개발 경쟁을 이미 시작했다.

반도체 이야기를 할 때 극자외선(Extreme Ultra Violet, EUV) 기술도 빠질 수 없다. EUV 기술을 이용하면 반도체업계에서 미세 공정의 한계로 여겨졌던 7나노미터(㎚)를 뛰어넘어 2~5㎚에 이르는 초미세 공정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의 크기는 줄고, 에너지 효율은 늘고, 성능도 늘고, 생산성도 는다. EUV 시대가 열리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의 반도체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게 돼 AI, 자율주행차, 스마트 시티 같은 미래 기술의 상용화 속도도 훨씬 빨라진다.

CEO가 알아야 할 IT 트렌드 ⑧미래 모빌리티, 소비시장 이끌 분야는


5G

모빌리티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5세대(5G) 이동통신이 나오느냐고 의아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5G는 휴대전화에서 영화를 빨리 다운받을 때만 쓰는 것이 아니다. 5G는 클라우드 게임을 할 때만 쓰는 것이 아니다. 5G는 미래 모빌리티에서도 핵심이다.

자율주행은 차량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주변 교통 정보를 감지한 뒤 주행 환경을 클라우드로 전송하고 분석한다. 여기서 ‘감지’, ‘전송’, ‘분석’이 빠르고 정확하게 되는 것이 자율주행의 핵심이다. 신호등 색상, 옆 차선의 차량 움직임, 전방에 나타난 보행자, 비 오는 날씨, 1분 뒤 전방 공사현장과 같은 수많은 데이터를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보내고, 받고, 저장해야 한다. 이 과정에 5G가 반드시 필요하다.

데이터 송수신 지연 시간이 0.001초 미만일 때 안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해지는데 기존 4세대(LTE) 이동통신은 불가능했었고 5G는 가능하다. 모빌리티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5G 기술과 장비 시장도 같이 커질 것이다. 게다가 2020년부터는 모빌리티 시장뿐 아니라 5G 스마트폰 시장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시장조사업체 테크노시스템리서치는 2022년 세계 5G 스마트폰 출하량이 5억 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도 도쿄올림픽 이전에 5G망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증시에서 5G 이동통신 장비주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를 대변한다.

내비게이션

사람이 차량 안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위치 정보와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입력한 위치 정보는 그 가치와 목적성이 다르다. 사람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어떤 빌딩이나 장소를 입력했다고 해서 꼭 그곳에 가려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순히 정보를 검색해 보는 목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에 특정 건물이나 장소를 입력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것은 실질적인 이동 의사의 표현이다.

내비게이션에는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다른 특정 장소로 어떤 사람이 이동하는지 유의미한 빅데이터가 쌓인다. 공유자동차 시대가 되면 내비게이션 기술과 내비게이션에 쌓인 빅데이터 핸들링 기술이 빛을 볼 것이다. 이로 인해 정확성과 편리성이 높아진 공유자동차 시장은 더욱 많은 고객을 끌어 모을 테니 두 시장은 선순환 될 것이다.

공간 활용

공유자동차 시대는 승객이 내린 뒤 차량이 바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수도 있고 혹은 주변 주차장에서 대기할 수도 있다. 주변에 주차 공간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대규모로 필요하지는 않다. 따라서 지금처럼 무조건 주차장을 확보할 필요는 없어지니, 건물 주변 공간 효용성도 높아지고 건물과 땅의 부동산 가치도 높아질 것이다.

도로는 어떨까. 전체적으로 도로를 차지하는 차량 수도 줄어들 것이다. 개인 소유의 차량 숫자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도로 폭도 클 필요가 없다. 빅데이터를 통한 최적의 이동 경로가 각 차별로 제공돼 교통 체증도 줄어들어 도로가 시원하게 뚫릴 것이다.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는 주차나 도로 문제 해결을 위해 쓰였던 엄청난 인적, 시간, 비용 리소스들이 더 이상 필요 없다. 대신 이들은 다른 비즈니스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바로 이 주차·도로 문제가 사라짐과 함께 늘어나게 된 ‘공간’을 어떻게 적절하고 알뜰하게 활용할지에 대한 비즈니스에 말이다.

플라잉카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2040년까지 도심용 항공 모빌리티의 시장규모가 1조5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 기업의 플라잉카 개발 경쟁은 치열하다. 2019년 10월 3일, 현대차는 플라잉카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아예 ‘UAM(도심항공모빌리티)사업부’를 신설했다. 그리고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0에서 플라잉카를 미래 먹거리로 전면에 내세웠다.

항공기업체들도 나섰다. 에어버스는 2020년 시범 서비스에 이어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플라잉카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보잉은 2020년부터 플라잉카 상용 판매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버는 2020년 플라잉카를 이용한 항공택시 시범 서비스를 호주 멜버른에서 시작해 2023년 상용화에 나선다. 플라잉카 개발과 상용화가 거의 막바지 단계에 있다는 점에서 현재 업계 선두는 우버다. 이외에도 세계 150여 개 기업이 플라잉카를 개발 중이다.

신소재

플라잉카, 전기차, 드론 같은 미래 모빌리티의 공통점은 가볍고 튼튼한 복합 소재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플라잉카는 도로에서는 주행을 하고, 하늘에서는 날 수 있는 차다. 도로를 주행할 때 차 크기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 때 차 크기가 확 다르다. 이런 제품을 만들려면 복합 신소재가 필수다. 무게가 강철의 4분의 1이지만 강도는 10배인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 같은 신소재가 요즘 각광받는 이유다. 차체가 가벼울수록 주행 능력이 좋아지는 친환경차들도 차체 경량화는 언제나 주요 화두다.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차도 이 신소재를 이용해 차체를 경량화했다. BMW는 전기차 모델에 이 신소재를 적용했다.

2018년 4월 프랑스 정부의 국영철도 개혁안에 반발해 프랑스 국영철도 노조가 파업에 나섰었다. 하지만 노조는 파업 기간 내내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결국 서둘러 파업을 접었었다. 그 배경에는 강력한 모빌리티 시장이 있었다. 차량공유업체, 전기차 공유 서비스 스타트업, 자전거 공유 서비스업체, 스쿠터 공유업체, 개인 차량을 렌터카처럼 빌려 주는 회사와 같은 모빌리티업체가 시민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다. 시민들은 파업한 국영철도 대신 이 모빌리티업체들을 적극 이용했다. 한 카풀 서비스업체는 파업 기간 동안 1달 이용 건수가 200만 건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제 철도 파업을 무기력하게 할 만큼 막강한 모빌리티 시장의 파워가 현실로 다가왔다.

어떤 일이나 사건 그 자체는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 않는다. 일이나 사건에 대해 대응하고 변화하는 우리의 태도가 인생을 바꾼다. 미래 모빌리티 시장,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할 것인가. 이번 호에서 답을 찾으셨기 바란다.


정순인 책임연구원은…

LG전자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사업본부에서 오토모티브(Automotive) SPICE 인증과 품질보증(Quality Assurance) 업무를 한다. 소프트웨어공학(SW Engineering), Technical Documentation 사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내에서 2016~2017년 연속 최우수 강사상을 수상했다. 강의와 프레젠테이션 기법을 다룬 책 <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를 썼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