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변효정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차장]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시장을 이기기 위해서는 면밀한 관찰과 선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과 같은 주식시장 환경에서는 ‘스타일 투자’가 좋은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연초 이후 글로벌 증시에 우호적인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긴 협상 끝에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완화적 정책이 유지되는 동시에 중국의 경기부양책이 발표되면서 주요국 경기선행지수가 반등하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 미국 대선 등 여전히 불확실성 요인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올해에도 주식이 포트폴리오의 기대수익을 높이는 자산이 될 것임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례없이 긴 경기 확장 사이클로 부담스러워진 주식의 밸류에이션, 주식에 대해 낮아진 시장의 기대치, 섹터·지역 간 차별화 등을 감안할 때, 단순히 포트폴리오에 주식을 담는 행위만으론 시장을 이기기 어려운 환경이다.
논란 부른 스타일별 ‘온도 차’
2019년 글로벌 금융시장을 되돌아보자. 2019년 투자자들은 주식과 채권, 금과 원유를 포함한 대안자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자산군에서 양(+)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주식시장의 성과는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전세계지수(ACWI)는 연초 이후 24%의 성과를 달성했고,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 지수는 역사상 최고치를 여러 차례 경신하며 각각 28%, 35% 상승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도 차가 상당하다.
특히 2019년 주식시장의 성과를 성장주 vs 가치주의 ‘스타일’별로 세분화해 보면 그 차이가 눈에 띈다. 지난 한 해 동안 MSCI 선진국 성장주(MSCI World Growth)는 가치주(value) 성과를 무려 11%포인트나 상회했다. 그러나 성장주가 2019년 내내 투자자들에게 가치주보다 좋은 성과를 안겨다준 것은 아니다. 2019년 9월에는 가치주가 빠르게 반등하며 성장주의 성과를 크게 상회했으며, 2010년 이후 약 10년 만에 스타일 로테이션이 발생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뒤늦게 성장주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를 가입했던 투자자들은 9월 한 달 동안 주식시장이 반등하는 구간에서 되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주식 투자에 있어 ‘스타일’이란 무엇이며, 일반투자자들은 어떻게 이 ‘스타일’을 투자에 활용할 수 있을까. 주식의 스타일은 앞서 언급한 가치주와 성장주 외에도 퀄리티, 저변동성(low volatility), 고배당 등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스타일은 ‘가치주’와 ‘성장주’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오랜 기간 특정 스타일의 상대 우위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두 스타일이 시장 국면에 따라 상반된 성과를 보여 주는 경향이 있어 가장 많이 활용되곤 한다.
성장주와 가치주는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시작됐다.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주식시장에 참여하면서 투자 기법이 보다 정교해짐에 따라 본격적으로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기술, 마케팅, 경영 기법의 발전에 힘입어 일부 기업들의 이익이 시장 대비 빠르게 성장하며 성장주라는 개념이 더욱 대중화됐다.
최근에는 펀드매니저들이 직접 ‘나는 가치주 매니저’라는 식으로 본인의 투자 스타일을 천명할 정도로 보편적인 개념이다. MSCI와 러셀(Russell) 등의 기관들이 지역이나 국가별로 성장주지수와 가치주지수를 산출하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해외 주식형 뮤추얼펀드들의 경우, 매니저의 스타일을 알리기 위해 성장주 또는 가치주지수를 벤치마크로 사용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장주란 현재의 이익성장률이 높고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의 주식을 지칭하며, 기업 이익이나 자산 가치 대비 시장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만큼 변동성 또한 높은 것이 특징이다. 정보기술(IT)·헬스케어·커뮤니케이션 서비스업종 내 신경제와 관련된 많은 기업들이 성장주에 포함된다. 반대로 현재의 기업 실적이나 자산 가치에 비해 기업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주식을 가치주로 구분한다. 가치주는 주가 변동성이 낮고 상대적으로 높은 배당수익률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금융·산업재·소재·에너지업종에 포함되는 많은 구경제 기업들이 가치주로 분류된다.
성장주 vs 가치주 로테이션 역사
그렇다면 이들의 과거 성과는 어떠했을까. 장기적인 시계열에서 보면 가치주와 성장주는 엎치락뒤치락 시장을 주도해 왔다. 대표적인 성장주 전성시대는 1998~2000년 IT버블 시기다. 같은 기간 가치주는 약 30%의 누적 성과를 보인 반면, 성장주는 약 80%의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이 시기에는 가치투자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날로 커져 갔으며,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도 세간의 악평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반전됐다. IT버블이 하루아침에 붕괴되며, 투자자들은 미래의 성장성보다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기업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2007년까지 지속된 가치주의 강세는 그 속도가 앞선 성장주 전성시대에 비견할 정도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시장의 분위기는 다시 한 번 뒤바뀐다. 가치주에서 성장주로 또 한 번의 스타일 로테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도의 투자 확대로 각광받던 가치주가 금융위기 이후 공급 과잉 및 수익성 악화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저금리 환경에서 프리미엄을 받는 성장주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트렌드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시장을 주도하는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거시경제학적 변수(경기, 금리, 기업 이익, 변동성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저금리 환경에서는 미래의 성장 가치에 대한 할인율이 낮아지며 성장주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진다. 또한 글로벌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환경에서는 성장에 대한 희소성이 부각되며 성장주의 프리미엄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한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융, 산업재, 소재 등 비즈니스 모델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구경제 기업들, 즉 가치주의 경우에는 실물경기가 반등하고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될 때 좋은 성과를 보인다. 실물경기를 가장 빠르게 자극할 수 있는 재정정책이 기대될 때 가치주의 강세가 나타나는 이유다. 또한 장기적인 트렌드 속에서도 일시적으로 일부 정책이나 경제지표가 부각되는 시장에서 단기적으로 스타일 로테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이후 지속된 성장주 강세 추세 속에서도 △미국 대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기부양책이 기대되던 2016년 말, △미·중 무역분쟁 심화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졌던 2018년 하반기, △시장금리가 저점에서 반등하던 2019년 9~10월 등은 가치주가 일시적으로 성장주의 성과를 상회하는 구간이었다.
2020년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실물경기의 회복세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과 같이 인플레를 동반하는 확실한 경기 반등을 전망하진 않는다. 기업 이익의 개선 폭 또한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며, 중앙은행들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저금리 환경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 아직은 성장주의 우위를 점치는 이유다.
일부 밸류에이션 부담이 높은 시장, 섹터, 종목에 대해 경계를 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 거시경제 환경에서 주식 투자를 고려할 때 성장주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지향하는 뮤추얼펀드 또는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산관리 관점에서 한 스타일의 쏠림은 올바른 투자 방법이 아니다. 금융시장의 역사상 과거의 패턴에 기반한 시장의 예측이 엇나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동시에 시장의 변동성을 야기할 수 있는 변수가 다수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시장 국면이 급격이 반전될 가능성이 높으며, 한 자산에 집중된 투자는 자칫 예상치 못한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결국 투자자는 기본으로 돌아가 성장주의 무게를 둔 주식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가운데 다양한 채권, 대체투자를 활용한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주식시장의 트렌드 변화를 대응하기 위해 가치주를 활용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둔다면 2020년에도 숨겨진 수익을 찾을 수 있는 성공적인 자산관리의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7호(2020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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