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절에 ‘백록담’이라니 조금은 의아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광풍의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혹은 그런 시간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산에 올랐다면 어떨까. 백록담을 꾸역꾸역 힘들게 오르다가 정상에 올라 딱 한 마디의 말을 내뱉는데 그 말이 ‘쓸쓸하다’다. <백록담>에는 시간을 견뎌내는 자의 고단함과 쓸쓸함이 담겨 있다.
시인은 바쁘고 불안하게 살아내는 현실의 시간을 잊고 꺼이꺼이 산을 오르면서 산 밑의 육신을 조금씩 지워낸다. 그래서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고 느껴질 만큼 기진한 상태가 된다. 그렇게 제 몸의 무게를 벗는 순간 산 속의 꽃과 나무를 오롯이 보게 된다. 산수국을 보며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고 하고 ‘백화 옆에서 백화가 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휠 것이 숭없지 않다’고도 쓴다.
그렇게 육신의 무게가 가벼워져 백록담의 나무와 꽃, 말과 소가 되는 순간, 느닷없이 백록담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시인은 그 경험을 백록담에 얼굴이 포개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얼굴을 포개질 때 딱 한마디의 말을 뱉는다. ‘쓸쓸하다’는 말. 그때서야 내뱉는 탄식이다. 백록담에 올라 마음을 그때서야 포개 놓는 것은 현실의 무게를 감당한 자의 행동이리라.
지금은 너도 나도 <향수>라는 노래를 흥얼대지만, 시인 정지용의 시를 제대로 만나보게 된 지가 대략 40여 년 정도밖에 안 됐다. “우리 시 속에 현대의 호흡과 맥박을 불어넣은 최초의 시인”이라고 평가되는 시인이지만, 지금도 일제강점기 잡지를 읽노라면 ‘정○용’으로 복자 처리된 것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정지용 시집을 손에 쥐던 일이 눈에 선하다. 1988년 여름 시인의 시집이 출판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달음에 달려가 노란 표지의 시집을 손에 쥐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시인의 시는 복자 처리의 이유가 궁금해질 정도로 세련된 근대시로 읽혔다. 당시 시집의 제목이었던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는 <향수>의 한 구절이지만 ‘해금’의 상황과 맞물려 오랜 시간을 견뎌 온 자의 회한의 정서로 읽히기도 했다.
여하튼 시인과의 첫 번째 만남은 근 40여 년의 시간의 무게 속에서 읽혔다. 물론 그 이듬해에 김희갑 작곡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 무게를 가끔씩 잊어버리곤 하지만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로 반복되는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노래의 부드러움과 별개로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자의 그리움과 회한이 무겁게 느껴진다.
몇 년 전 일본에서 보았던 정지용 시비도 마찬가지다. 정지용 시인은 충북에서 태어나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한 후 일본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同志社大)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23년 입학해서 1929년까지 수학했으니 근 6년 정도를 이 대학에서 보낸 것이다. 그곳에 2005년 시비가 세워졌다. 곧바로 찾아보지는 못하고 몇 년 후에 찾아보았는데 찾아간 그날 하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정지용 시비와 윤동주 시비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시비 앞에 놓인 노트가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었다.
그 빗속에서 시비에 적힌 <압천>을 읽었다. ‘압천’은 도지샤대 앞에 흐르는 강으로 일본식 발음으로는 ‘카모카와’다. 압천 주위에는 예전부터 세련된 카페가 많았는데 그곳에서 정지용은 한결같이 고향이 그리워한다. ‘오랑주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으로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는 말을 보면 그러하다. 일본 대학에서 ‘오렌지 껍질을 씹으며’ 근대 문명을 경험하고 있지만, 해 저물녘 시인이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의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이다.
<향수>에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이곳에서 저곳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은 간결하지만 분명하다. 그리워하는 것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찬 모래알 쥐어짜는 찬 사람의 마음’으로 그저 견디는 것뿐이라는 말 역시 그러하다.
그렇게 본다면 <향수>만큼이나 마음을 단단히 붙잡으며 슬픔이 견뎌내는 <유리창>이라는 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읊고 있는 시인데, 감정을 절제하고 있어 더 애틋하고 슬프다. 아마도 자식을 잃은 아비는 유리창 앞에 서 있었나 보다. 유리창에 입김이 서리다가 이내 마르고, 또 입김이 서리다가 마르는 과정을 보면서 시인은 양 날개를 파닥이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렇게 파닥이는 날개가 헐떡이는 아이의 병든 상태로 포개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꾸 입김이 서리는 것을 찾다가 또다시 아이의 모습인 양 창문에 기대어 아이를 찾게 된다. 시인은 이 과정을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중략)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로 적는다. 마음을 붙잡고 유리창 앞에 얼굴을 갖다 대는 시인의 모습에서 백록담에 얼굴을 포개고 서 있는 시인이 겹쳐지기도 한다. 그건 간절한 마음을 붙잡는 자의 모습이다.
정지용은 한국 시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드러내고 있는 시인이다. 일제강점기 현실을 노골적인 감정으로 재현하지도 않았고, 또 그렇다고 이국의 문명을 모던한 방식으로만 그려내지도 않은 채로 전통적 정서와 모던한 리듬을 이미지를 통해 잘 그려내고 있다. 한국의 청록파로 알려진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을 추천한 시인이자 윤동주의 도지샤대행을 선택하게 한 시인인 동시에 1940년대 <문장>지를 이끌었던 한국의 시인이다.
실은 그 어떤 수사도 필요하지 않은 시인이다. 정지용은 구구절절한 말이 아니라 오로지 시간을 견뎌내는 마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단단하게 다듬고 새긴 시의 언어가 어떤 힘을 가지게 되는지 보여주는 시인이다. 그의 시 속에서 읽는 것은 ‘쓸쓸하다’는 한 마디가 아니라 그 한 마디 안에 담긴 묵묵한 시간의 힘이다. 산에 오르고 싶어지는 것은 그렇게 견뎌내는 힘을 배우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일러스트 전희성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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