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경 작가 인터뷰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올 한 해 미술계에는 여느 때보다 여성 작가들의 약진이 빛났다. 그중 다시 곱씹어볼 만한 성과는 작가 강서경(Suki Seokyeong Kang)의 아트바젤 ‘올해의 발루아즈 예술상(Baloise art Preizw)’ 수상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박람회인 스위스 아트바젤에서 한국 갤러리의 ‘스테이트먼트 섹션’ 첫 수상으로, 한국 작가가 수상한 것은 2007년 양혜규 작가 이후 두 번째로 11년 만이다. 활약에 비해 조명이 화려하지 않았다. 강서경이 국제 무대에서 역량 있는 젊은 작가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건 무엇 때문일까. 강서경이라는 현대 미술의 문을 두드려봤다.작가 강서경과의 만남은 제12회 상하이 비엔날레가 개막한 직후 그의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지로 성장한 상하이에서 한국관 작가 2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한 강서경은 1인 궁중무용인 ‘춘앵무’와 전통 악보인 ‘정간보’를 재해석한 ‘검은 자리 꾀꼬리’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오프닝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였다.
강서경은 누구인가. 그는 회화, 설치, 영상 작업 등 다양한 매체로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회화의 요소들을 공간에서 입체화하는 게 주특기다. 그 안에 서사가 있다. 스위스 아트바젤에서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랜드마더 타워(Grandmother Tower)’ 시리즈와 ‘둥근 유랑(Rove and round)’ 시리즈를 선보였다. 유럽 주요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매해 작가 2명에서 수상하는 발루아즈상 수상자로 강서경을 선정했다.
강서경이 특히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건 그가 ‘동양화-동시대 미술’의 맥락을 가지고 있어서다. 그의 작업에는 전통의 재해석이 있다. 옛 시와 고전 철학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시각예술로 풀어내는 작업을 즐겨 한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작가이기에 현대 미술 안에서도 시, 서, 화와 시공간을 얘기한다. 주요 작품이 오브제-설치로 드러나면서도 회화를 놓지 않고 강조하는 것은 고민의 출발점이 동양화여서다. 추상적인 세계를 작가의 언어로 풀어내면서 체득하고 구조화된 방식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부딪히면서 만들어 가는 조화도 강서경의 작업을 이해하는 키(key)가 된다. 이질적인 재료를 사용하고, 모순적인 제목을 붙인다. 작가는 “사물과 감각이라는 두 낱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평범한 일상의 재료가 작가의 감각을 만나 생명력을 얻는다.
그렇게 불안과 불균형이 마찰하고 충돌하며 점차 조화로운 결합의 구조로 완성돼 간다. 곧, 희망이다. ‘그랜드마더 타워’ 시리즈가 그러하듯, 무언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점차 스스로 서 가는 과정이다. 강서경은 ‘불안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불안하지만 여전히 이 땅에 발 딛고 서 있다는 것이 긍정적이다”는 것이다. 확신에 찬 불안은 두렵지 않다. 검은 자리에 서서 희망을 노래하는 그의 작품이, 고투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다.
활발한 행보로 바쁜 한 해를 보내셨는데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회를 밝혀주신다면요.
“저의 작업의 경향과 제작의 방법이 느리고 천천히 진행됩니다. 전시를 자주 열 수 있는 형태가 아닌데요. 올해는 여러 기회들을 만난 것 같아요.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던 ‘그랜드마더 타워’ 시리즈가 수상을 했고, 처음으로 미국(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도 열었어요. 제 작업이 전통의 해석 방법론이 현대 미술의 언어 안에서 어떻게 함께 자리 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끌어오고 있는 것이라면, 그 고민의 결과물을 해외 전시를 통해 조금씩 알려볼 수 있는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가 지난달에 끝났고 상하이 비엔날레는 11월부터 내년 초까지 지속됩니다.”
수상 당시 대학에서 강의 중이어서 짧은 소감만 전한 것으로 압니다. 수상을 예상했나요.
“아트바젤에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섹터가 있는데, 개인전처럼 풀어내는 형식이었습니다. 아직은 제가 실험하고 싶은 작업들이 많았기에 페어를 나가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요. 아트바젤은 개인전의 실험적인 형식이었고, 지속적으로 고민하던 ‘그랜드마더 타워’의 변주를 심사숙고 끝에 선보였습니다. 그게 상을 받을 줄을 몰랐어요. 제 작업들로 ‘그랜드마더 타워’, ‘둥근 유랑’, ‘검은 자리 꾀꼬리’, ‘좁은 초원’ 등의 개별적인 연작이 있는데요. 특히 그랜드마더 타워 시리즈는 제가 2011년부터 계속해 온 작업인데, 그것이 현재 하고 있는 다른 작업과 맞물리면서 새롭게 변형된 연작으로 만들어서 출품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좀 달라요. <그랜드마더 타워-토(Grand- mother Tower-tow)>입니다.”
개인적으로 강서경 작가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접한 게 그랜드마더 타워입니다. ‘할머니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공감대를 형성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이름이 바뀌면서 기존의 작업에서 뭐가 달라진 건가요.
“가장 처음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개인적인 경험에서입니다. 할머니 키만한 타워에서 비롯된 작업이었습니다. 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중력을 거스르면서 몸을 지탱하려고 하는 그의 모습을 시각화하면서예요. 앙상한 모습으로 벽에 기대져 있어야 하거나 벽에 기대야만 구조가 완성되는 작업이었는데요. 그랜드마더 타워 작업을 지금 현재의 제 상태에서 다시 소환하면서, '그랜드마더 타워-토(Grand- mother Tower-tow)'라는 변주된 제목을 붙였습니다. ‘검은 자리 꾀꼬리(Black Mat Oriole)’ 프로젝트를 오랜 기간 지속하면서 한 개인이 어떻게 현재의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영역을 바르게 가지고 갈 수 있을까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랜드마더타워로 연결됐습니다. 제 할머니의 기억이라는 개인적적인 서사에서 시작됐지만, 모두의 늙어 가는 신체와 시간에 대해 함께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Grand- mother Tower-tow' 작품은 사람이 붙잡으면 쓰러지고 붙잡지 않으면 쓰러지지 않아요. 지속 가능한 개인의 자세와 태도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작업이었어요. 그땐 제가 늙어 갈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요. 할머니만 붙잡으면서 가지 말라는 마음이었는데 우리 모두가 결국에는 그렇게 되잖아요.”
‘그랜드마더 타워’는 할머니의 척추 뼈를 연상한다면, ‘둥근 유랑’은 귀, 자리 등의 부제를 달고 있는데요. 어떻게 신체를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는 건가요.
“예를 들어 최근 해외에서 ‘검은 자리 꾀꼬리’ 시리즈가 순환되고 있는데요. 4월에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이 작업으로부터 비롯된 다음 시리즈, 'Land Sand Stand'연작이 리버풀 비엔날레에서 보였어요. 저의 작업은 작업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공간적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데요. 그랜드마더 타워, 둥근 유랑, 검은 자리 등 여러 요소들이 다시 전시의 형태를 통해 'Black Mat Oriole', 'Land Sand Stand' 등 하나의 연작의 제목으로 서사를 완성해 나갑니다." 악보를 기보하는 것과 비교해볼 수 있겠는데요. 악보에 음표를 그려 넣듯 공간이라는 악보에 작가님만의 음표 또는 표정을 그려 넣는 개념인가요.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 서사가 어떤 공감대를 이끌었다면, 기보로 표현하는 작업 방식은 현대 미술 해석의 또 다른 재미를 던져줄 것 같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제 작업을 보고 궁금해서 작업실에 오게 되면 그 얘기를 합니다. 자기들의 시각에서 풀리지 않는 해석이 있는 것 같다고 해요. 그것이 알고 싶어서 찾아왔다고요. 저와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저는 계속 ‘정간보’라든지 ‘춘앵무’라든지 혹은 왜 내가 회화를 진경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true view’를 이야기하는가. 그러한 저에게 체화된 방법론, 다른 출발점이 어떻게 현대 미술 안에서 동시대적 언어를 가지고 움직이는지가 특히 외국인들에게 흥미로운 지점을 주는 것 같아요. 제가 2016년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했는데, 그때 미완성 상태의 ‘검은 자리 꾀꼬리(Black Mat Oriole)’를 올렸어요. 춘앵무의 '앵'을 꾀꼬리로 해석했습니다. '검은 자리'라는 제 작품이 있는데요. 그 위에 선 개인의 영역과 경계에 대한 의미를 지닌 타이틀로 '검은 자리 꾀꼬리'가 탄생했습니다. 화문석 위에서 추는 조선시대 1인 궁중 무용인 춘앵무를 공간적 서사에 기반해 풀어낸 작품입니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연구한 프로젝트인데요. 강화도의 화문석 장인들과 협업한 새로운 개념적 회화 작업인 '자리' 시리즈, 그리고 설치 및 영상 작업을 올해 4월 미국에서 처음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 작업은 많이 느리고 천천히 가고 완성된 형태를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의 생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기보하는 방식인데요. 당시 60% 정도 완성된 상태로 설치를 했는데 그 작업을 보고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in Philadelphia)에서 개인전으로 초청을 하면서 그곳에서 처음으로 모든 시리즈를 보여줄 수 있었어요.”
특히 ‘정간보’라는 조선시대의 악보를 탐구하고, 작품의 기본 틀이자 단위로 사용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융·복합의 일환인가요. 어떻게 정간보를 발견하게 됐는지.
“정간보는 저에게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기호와 규칙과 같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또 가르치면서 굉장히 오래된 글들에 익숙해져야 했었고, 시갈을 거슬러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 속에서 전통이 지닌 의미와 시간을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예전 작업인 ‘치효치효’나 ‘매매종이 그런 옛 시를 반영한 전시이죠. <시경(詩經)>에 등장하는 ‘치효’라는 제목의 시는 주나라의 주공이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사이를 이간질해 반란을 일으킨 형제들을 책망하는 상징적인 시라고 해요. 부엉이로부터 해를 입어 자신의 둥지와 새끼를 잃은 작은 어미 새의 불안을 통해 주공의 심정을 표현했어요. 유학 시절 우연히 발견된 부엉이 오브제와 함께 ‘치효’라는 시를 병치하기도 했어요. 2015년 작업인 '검은아래 색달(Black Under Colored Moon)'은 영상 작업의 보이지 않는 서사로 ‘쌍화점’이 사용됐죠. 만두 가게에서 벌어지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인데 이게 정간보 안에 쓰여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한글로 해석된 내용의 쌍화점을 접했다가, 예전에는 어떻게 쓰였을까를 찾다 보니 정간보의 칸 안에 있는 거였어요. 정간보 안에 가사와 박자와 음을 기록해 ‘쌍~화점에, 쌍~화사가’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죠.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유량악보라고 해요. 보통 오선지의 경우 가사가 선 밖에 있잖아요. 그런데 정간보는 선 안에 ‘쌍~’, ‘화~’ 이런 식으로 적혀 있고, 비어 있는 칸을 한 박으로 상징한다는 식의 규정들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마치 제가 동양화를 공부하면서 여백과 공간에 대해 고민했듯이, ‘왜 비어 있는 것이 차 있는 것일까?'와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었죠. 비어 있는 한 칸이 한 박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이 저의 경험과 연결되면서 정간보가 마치 저에게는 동양화를 해석해 나가는 방법론의 하나처럼, 맞물리는 톱니바퀴가 됐어요. 그래서 파고들다 보니 단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쉬운 구조를 만들어주기 위한 세종의 ‘방법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정간보라는 스트럭쳐로 쌍화점 같은 시가 노래로 퍼질 수 있었죠. 이와 같이 모두가 얘기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공동의 것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회화, 오브제, 조각, 영상 등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 미술에서 전통적인 분류법으로 형식을 설명하는 게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은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전통으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하고자 합니다. 학부 시절에도 지금과 비슷한 작업들을 했었어요. 그때도 설치도 하고 영상도 만들었어요. ‘자동차’나 ‘변기’라는 제목으로 내 신체를 회화의 공간 안에 구겨 넣기도 하고, 다시 펼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기도 했죠. 동양화를 공부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바와 쓰는 말과 또 글을 종이 안에 어떻게 담을 것인지에 대해 늘 고민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현재의 시선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 겸재의 진경을 영어로는 ‘true view’로 해석을 합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동양화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나의 생각(서사)과 움직임과 바라보는 것들을 응축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봐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회화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저는 동양화 안에서 회회가 비단 종이에 먹으로만 그려낼 수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신체적인 조건을 통해 발언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전통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을 다시 소환해서 지금의 위치에서 함께 이야기해볼 수 있는 방법론을 찾는 거죠. 제가 정간보와 사랑에 빠지고 제 작업의 좋은 스트럭처로 사용하는 것도,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을 공간으로 풀어 나가는 하나의 방법론이죠. 사각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정간보가 사각 안에 가사도 써 내려가고 장구 치는 법, 가야금의 현이 울리는 시간 등을 다 응축해서 담고 있듯이. 저에게는 동양화라는 회화가 같은 선상에서 이해가 되는 것이고요. 현대 미술 작가로 살기에 오늘의 시선 안에서 어떻게 함께 수평적인 전통과 수직적인 현재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곧 제 정체성입니다.”
유학 시절을 지나 2011년 이후로 본격적으로 회화의 공간화, 공감각화가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특히 설치나 영상으로 본격적인 방향을 전환한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저 자신이나 가족, 제가 사용하는 기물들, 공간을 이동하거나 여행하는 것들에 대해 그림도 그리고 영상도 만들고 인형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을 했었는데요.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 반응이 좋았는데도 저는 너무 고민이 되는 거예요. 동양화가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에 대해 혼자만의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서 전시도 쉬고 작업에만 몰두하다가, 그래도 풀리지 않아 유학을 떠났어요. 사실은 풀리지 않는 방법이 풀리고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죠. 그리고 작가가 이야기하는 언어로서 저만의 구조화된 작업을 시작한 게 2011년부터 지금까지 쌓여 온 작업이에요. 그래서 설치를 하면서도 회화를 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제가 체득한 회화의 방법론을 공간으로 투영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개인의 영역에서 시작된 관심, 처음엔 할머니에서 시작됐지만 모두의 신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시각적인 언어들을 구현했을 때 관객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면서 영상도 만들었죠. 실제 제 작업에는 많은 시간이 담겨 있지만 전시장 안에서는 그 시간이 멈춰 있잖아요. 그 멈춘 시간 위에 타인의 신체들이 새로 개입하면 또 다른 방향성이 생긴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퍼포먼스라고 하지 않고 움직임이라고 표현해요. 리버풀 비엔날레나 상하이 비엔날레에서도 시도했는데, 움직임을 위한 무보가 있어요. 조선시대 ‘춘앵무’를 공간적 기반으로 한 ‘검은 자리 꾀꼬리(Black Mat Oriole)’ 작업에서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는 작품들인데요. 이 작업들 위의 개인들의 움직임을 공유하기 위해 저만의 무보를 만들고, 그 무보를 바탕으로 '액티베이션(Activation)'을 진행했습니다. 이 무보를 가지고 누구나 다 움직여볼 수 있어요. ‘검은 자리 꾀꼬리’ 이 작업은 2011년부터 천천히 만들어진 작업들이 모두 모여 회화, 설치, 영상, 움직임을 함께 연동시킵니다. 한 개인이 설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설정하고, 그 위에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과 무게들에 대해 이야기한 작업이에요. 제한된 크기의 ‘화문석’이라는 자리 위에서 정제된 움직임을 선보이는 것이죠. 이를 위해 강화도의 할머니와 화문석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페인팅으로 만들어 검은 자리라는 최소한의 영역과 공간을 설정했어요. 리버풀 비엔날레에서의 '검은자리 꾀꼬리' 움직임에서는 은퇴한 무용수들, 중국 무용수들과 함께 협업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작업에 함께 협업했던 무용가들과 현지 일반인들도 함께 했습니다. 하나의 작업을 완성해 보여주기보다 작가가 시간을 들여서 고민했던 시각적 방법론을 제시하는 셈인데요. 작가가 완성된 형태의 무엇을 제시한다기보다는 각자의 해석을 열어놨어요. 제 작업 안에 실제로 들어와서 보는 관객들은 자신이 가진 개인의 역사로 해석을 할 거예요.”
자주 쓰시는 작품에 대한 표현 중에 ‘불안’, ‘불균형’, ‘조화’, ‘균형’ 등이 있습니다. 이질적인 재료를 즐겨 쓰시고, 개별적인 회화, 설치, 움직임 등의 요소를 조화롭게 공존시키는 방식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데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요.
“저는 제 작업을 불안정하지만 아름다운 상태를 지향하는 과정으로 봅니다. 그런데 작품 제목을 읽거나 작업을 디테일하게 바라보면 작게 충돌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서로 다른 재료나 사이즈, 무게 등이 맞물리면서 조화를 추구해 가는 건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끊임없이 불안한 요소들이 있지만, 저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요. 저의 사적인 불안도 작품 안에 담겨 있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죠. 우리의 현실은 힘들지만 또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 나가면서 살아 나가고 있잖아요. 그렇게 정제의 과정을 거쳐서 또 다음 단계로 한 발짝 내딛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상태죠. 저는 현재는 불안하지만 미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둥근 유랑’이나 ‘좁은 초원’, ‘검은 자리’라는 제목들을 보면 다 모순이죠. 유랑이 방랑처럼 들리는데 헤매는 유랑이 아니라 둥근 것이고, 좁지만 초원에 있는 것이고, 검은 자리에서는 검은색에 긍정적인 의미를 담았죠. ‘둥근 계단’은 계단을 못 올라가시는 할머니를 위한 보조 기구로 만든 것인데, 둥글고 아름답게 표현했어요. 불안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불안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접기 건조대를 보고 앙상한 뼈의 형태를 떠올려 그랜드마더 타워를 만들었듯이 ‘사물’과 ‘감각’은 제가 주목하는 단어 중 하나죠. 계산하고 쌓는 게 아니라 계속 끊임없이 올렸다 내렸다 해체하고 다시 쌓으면서 사물을 통해 발견하는 또 다른 균형의 감각을 찾아가요. 계속해서 파생하고 있고요. 정이라는 시공간을 담는 조형적 단위 구조에 무엇을 담아야 한다면, 그 첫 페이지는 각자의 역사가 아닐까 해요. 저는 저만의 ‘true view’를 가지고 제가 서 있는 현재와 이 땅에서 바라보는 것들을 해석하는 것이고요. 그것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면 정간보의 한 칸 한 칸이 만나 가사와 박자와 장단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관객 각자가 너와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그러한 조각을 통해 조화와 균형을 이뤄 나가는 수수께끼의 길을 찾는다면 재밌는 현대 미술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3호(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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