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인공지능과 음악의 만남
[이현주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현대 음악의 진영에서 ‘기술과 음악’의 융·복합 실험을 하는 남상봉 작곡가는 지금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곡가 중 한 명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악기를 만드는 그는 “음악가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나만의 소리’를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둑한 무대 위, 두 개의 불빛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시작을 알리듯 언뜻 종소리가 반복돼 울리면 불빛이 포물선 형태로 들썩이기 시작한다. ‘엠포이(mPoi)’를 위한 <쥐불> 공연에서 악기를 들고 선 연주자의 몸짓에 따라 다양한 빛과 소리의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움직임에 따라 불빛은 무지갯빛으로 변하고, ‘휙~, 삐~, 뚜~, 윙~’과 같은 전자음이 궤적을 따른다.이것은 음악일까, 무용일까. 고개가 갸웃해지는 순간 낯설지만 흥미로운 현대 음악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 작곡가 남상봉은 “오늘날의 현대 음악은 다양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무조건 어려운 음악이 아니라, 편안한 선율을 추구하기도 하고 여러 장르와 융·복합된 실험을 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자 음악 연구자로 ‘새롭고, 재밌고, 완성도 높은 소리’를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음악들은 ‘탈(脫) 공연장’으로 향한다. 현재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전속 작곡가로 클래식 무대를 누비지만, 야외에서, 또 클럽에서도 관객들을 만난다. ‘지금, 오늘’의 예술을 하는 동시대 예술가는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창작자들에게 던져졌다면, 그는 “음악이 더욱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는 답을 내놓는다.
남상봉의 음악들은 특정 ‘주제’를 갖는다. 미세먼지,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등과 같은 뜨거운 이슈들이 음악으로 표현되고 있다. 글이나 말과 같이 단번에 이해되는 종류는 아니지만 몇 가지 음악적인 장치로 핵심 메시지에 접근하는 예술가의 의도와 방식을 알아간다면 ‘음악의 언어’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실험성을 중시하면서도, 적어도 하나의 신(scene)에서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지향점을 갖고 있다. 지금 사람들이 관심 갖는 이야기, 즐겨 쓰는 매체를 적극적으로 음악에 반영하며 그렇게 그는 “현대 음악은 어렵고 난해하고 지루하다”는 인식에 도전장을 내미는 중이다.
12월 18일 문래예술공장에서 <미세입자::진동> 공연을 앞두고, 남상봉을 만나 ‘현대 음악의 즐거움’에 대해 들었다. <쥐불> 공연이 30여 회 공연되고 있는데요. 대중적인 청중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쥐불>의 첫 아이디어는 쥐불놀이에서 시작됐습니다. 돌릴 때 나는 ‘휙, 휙, 휙’ 소리도 재밌지만 돌리는 행위 자체도 음악의 영역으로 확장해보자고 생각했고, 그것을 모태로 만든 곡입니다. 엠포이라는 악기는 돌리는 방향과 속도에 따라서 소리가 나는 구조입니다. 센서가 장착돼 있어 컴퓨터와 연결되면 공유기를 거쳐 와이파이(Wi-Fi) 신호를 보내줍니다.”
흔히 생각하는 클래식 음악의 영역은 아닌데, 어떤 장르로 이해하면 됩니까.
“음악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저는 실험적이거나 조금 어려울 수는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우선 오케스트라나 앙상블 곡을 쓰는 일이고, 또 하나는 음악에 기술을 더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일입니다. 전자 음악, 뮤직 테크놀로지 영역에서 연구하거나 작곡을 합니다. 새로운 기술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데, 음악과 연관해서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직접 악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최근에 서울대 예술과학센터에서 진행한 연구 가운데 국악 가상 악기와 음원 소스를 구축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음악과 기술의 조합이라고 할 때 예를 들어 설명해주신다면요.
“엠포이라는 악기는 쉽게 보면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이용한 것인데요.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포함해서 악기라는 것이 사람의 움직임을 음악적인 언어로 바꾸는 것이라면, 이것 또한 마찬가지로 사람의 움직임을 센서로 추적해서 디지털화하고 컴퓨터에서 변하는 값으로 소리와 음악을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센서를 이용해서 연주자의 움직임을 따라잡고 음악적인 소리로 바꾸는 원리입니다. 지금 보는 것이 4세대 모델인데요. 시행착오를 거쳐서 소리뿐만 아니라 16개 발광다이오드(LED) 전구를 통해 불빛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됐습니다.”
왜 직접 악기를 만들 생각을 했나요.
“음악 사조로 볼 때 1900년도 초반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후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존재해 왔습니다. 다양한 시도들이 많이 일어났고, 과격한 시도들도 있었어요. 그 시대에는 사람들이 그것을 원했고 공감대를 형성했다면 이제는 21세기에 맞는 음악을 필요로 하는데요. 지금은 어려운 음악만 있는 건 아니고요. 듣기 편안한 화성을 쓰는 작곡가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일상에서 피로를 호소하고 음악에서 쉼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새로운 음악보다는 다양성이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어떻게 하면 지금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소리를 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게 되는데 궁극적으로 악기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 버리면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는 셈이잖아요. 비정형 악기라고 얘기하는데, 이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리죠.”
‘마음의 흐름’이라는 곡에선 오케스트라와 전자 음악이 동시에 연주되기도 했습니다. 섞이기 힘든 소리인데 어떻게 조화를 이뤄 나갔나요.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두 개의 곡을 만들었습니다. 먼저 만든 곡은 ‘오케스트라와 노트북을 위한 기계적 몰입’, 두 번째가 ‘오케스트라와 노트북을 위한 마음의 흐름’입니다. 약 10분 내외의 곡으로 기본 콘셉트는 오케스트라에 전자 음악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는 야외가 아닌 이상 마이크를 대지 않는데요. 어쿠스틱 소리에 전자 음악을 더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전자 음악의 역사가 100여 년인데 아직까지도 오케스트라 곡이 많지 않거든요. 저는 이제는 전자 음악이 들어갈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케스트라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지휘자를 보면서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기계적 몰입은 기계음 위주로 플레이를 하고, 마음의 흐름은 사람의 성악 소리 대신 인공지능 목소리가 플레이 되는 게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왜 인공지능 목소리입니까.
“일반적으로 성악을 생각하면 이탈리아의 오페라 아리아를 많이 떠올리잖아요. 100년 전 사람들은 성악 소리를 쓸 수 있겠지만 전 아직까지 그렇게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의 소리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최근 몰두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가 인공지능인데요. 어떻게 음악적으로 구현해볼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중 영화 <허(Her)>를 보고 인공지능과 사람과의 사랑, 혹은 음악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사람의 소리 대신 인공지능의 보이스를 가지고 노래를 만든 것입니다.”
작곡가님은 주로 어떤 주제에 흥미를 느끼나요.
“최근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현상들에 주목합니다. 그중 하나가 소음입니다. 소음으로도 얼마든지 예술적인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어요. 일찍이 소음의 미학, 소음의 예술성에 대해 논의가 진행돼 왔습니다. 사람들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한 시도 기계적 소음에서 자유로운 날이 없는데요. 문화나 예술이라는 것이 결국 현재의 삶을,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때 소음도 당연히 소재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설명한 <쥐불>에도 소음을 표현했고 <미세입자::진동>에도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미세한 음들이라서 음으로는 표현이 안 되지만 그래픽 악보로는 가능하고, 연주를 할 때는 연주자를 위해 텍스트로 쓴다든지 다른 표현으로 기보를 합니다.”
보통 아이디어는 어디서 시작됩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직업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떠올라야 하거든요. 그래서 늘 이슈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지인들과도 얘기하고 책도 읽어보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해봅니다. 항상 생각하고 좋은 공연을 보다 보면 이것과 저것이 조합이 돼서 작품을 끌고 갈 수 있는 메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만들 때 중시하는 가치가 있습니까.
“진솔함과 오리지널리티입니다. 나 자신의 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소리가 좋든 좋지 않든 상관없이. 평가는 후에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고, 우선은 제 정체성을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것입니다. 이때 처음부터 그럴싸하게 나오기는 힘들거든요. 이상한 게 나올 수도 있는데, 이게 좋냐 안 좋냐를 단정하기보다는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맞는지를 확인하는 편입니다. 시행착오를 겪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탈고할 때, 초연될 때, 연주가 될 때마다 똑같은 음악이 아니라 계속 업그레이드를 하고, 마치 아이를 낳아 기르듯이 함께 커 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음악가가 ‘나만의 소리’를 내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저는 가면 갈수록 다양성이 중요한 키워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남의 소리를 좇아가지 않고 ‘나만의 소리’를 갖는 게 작곡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내 소리를 멋있는 소리로 만들어야 하겠죠. 최근 ‘메이커 운동’이 있듯이, 이제는 브랜드 제품을 소비하지 않고 직접 필요한 것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요. 작곡가가 아니지만 작곡을 해보고 방송인이 아니지만 유투버가 돼보는 그러한 흐름이 현대 음악과도 충분히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은 항상 있습니다. 잘되는 경우는 열 번을 시도하면 한두 번. 그 외에는 다 실패하는 것들이니까요. 그런 점들은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다 보면 안 되고, ‘에이, 내일은 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음악 생태계가 자본이나 특정 장르에 함몰돼 있다는 점이 아쉽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문화를 즐길 여유를 갖지 못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현대 음악으로도 충분히 힐링할 수 있는데, 관심 자체를 갖지 않으니까요.”
현대 음악이 전통 음악이나 국악기와는 어떤 방식으로 어울릴 수 있습니까.
“한번은 ‘네트워크 퍼포먼스’를 펼친 적이 있습니다. 공연을 올리는 데 공연장 두 개를 사용했어요. 하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공연장, 또 하나는 미국 스탠퍼드대에 있는 공연장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두 개의 공연장을 한데 모아서 동시에 연주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스탠퍼드대 쪽에서는 컴퓨터로 만든 음악을 연주하고 한국에선 전통 음악, 국악기로 연주를 했습니다. 다른 곳에 있지만 서로의 소리를 듣고 보면서 연주를 했는데 재밌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현대 음악은 난해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청중들이 현대 음악을 들을 때 어떤 부분을 주목해서 들으면 좋을까요.
“현대 음악 안에서도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현대 음악을 한 번 찾아보는 게 필요할 것 같고 작품으로 접근할 때는 작가의 의도나 프로그램 노트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개인적인 의도가 많이 반영되는 것이 현대 음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소리만으로도 즐길 수 있지만 어렵게 느껴진다면 작가의 생각을 알고 소통한다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곡가님의 음악은 어떤 정서를 대표합니까.
“저는 항상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합니다. 새로운가, 재밌는가, 완성도가 얼마나 되는가. 이 세 가지가 밸런스가 가장 잘 맞을 때 가장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 해요. 새로운 예술의 꼭지점에 있는 포인트라고 봅니다. 새로운가는 참신한가로 대체 가능합니다. 완성도라는 건 끝이 없는 과정입니다. 글도 그렇겠지만 음악은 수학공식을 푸는 게 아니라서 100점을 만드는 지점을 누구도 정해주지 않거든요. 보통은 곡이 발표되기 전, 제 손을 떠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치는 거죠. 한 번이라도 더 보는가, 길게 보면 나만의 작곡 기술이 있는가가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요소라고 봅니다.”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12월 18일 서울문래예술공장에서 <미세입자::진동>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관심을 갖고 와주시면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후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가지고 음악을 만드는 일을 지속할 계획입니다. 내년부터의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인공지능 기술로 몇 번 실험을 해놨는데, 실제 딥러닝과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서 음악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 기술적으로 기본 콘셉트만 이해하면 결국은 ‘어떻게 학습을 시켜서 어떤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할 것이냐’ 하는 아이디어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상봉 작곡가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곡가이자 전자 음악 연구자다. 작곡가로서 그는 2014년 AYAF 공연예술자 창작자 음악부문에 선정돼 <밤: 인시> 공연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후,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전속 작곡가, 2017~2019 문래예술공장 유망예술지원사업 MAP 음악부문 선정 예술가로서 어쿠스틱 음악과 전자 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전자 음악 연구자로서 그는 서울대 예술과학센터 연구원으로서 센서 기반의 멀티미디어 전자악기를 개발하고 있다. 서울대 음악대학 및 같은 대학원에서 정태봉과 이돈응을 사사한 그는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디지털악가무랩의 PD로 근무했으며 미국 신시내티 음대에서 마라 헬무트(Mara Helmuth), 조엘 호프먼(Joel Hoffman), 마이클 페데이(Michael Fiday)를 사사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체류 기간 동안 2011
ASCAP/SEAMUS 전미 작곡경연대회 2위, 더 스콧 휴스턴(The Scott Huston) 작곡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 <어웨이큰(Awaken)>은 어블레이즈 레코즈(Ablaze Records)에서 출판됐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2호(2018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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