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호붕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국립국악원이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과 한글날을 기념해 오는 10월 11일부터 14일까지 창작소리극 <까막눈의 왕>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정호붕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를 만나 작품의 의미와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 김기남 기자 “백성들에게 진짜 사랑을 전해주세요. (중략) 슬프지 않게 하세요. 얼쑤~ 얼씨고.”
연출가 정호붕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의 열정적인 연기 지시가 쉴 새 없이 뿜어 나온다. 그의 디렉션에 따라 20여 명의 배우들의 몸짓과 소리에 감정이 더 깊게 배어났다. 이들이 이토록 몰입하는 작품은 바로 소리극 <까막눈의 왕>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 때 어디서 영감을 얻었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이 작품은 1446년 한글이 반포되기 전까지 말은 할 수 있어도 글은 읽을 수 없었던 까막눈의 백성들을 가엾게 여긴 세종이 명창의 민요를 들으며, 소리의 이치를 깨달아 한글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2011년, 2012년에 이어 올해도 연출을 맡은 정호붕 교수가 말하는 <까막눈의 왕>의 시작은 이러했다.
“한글을 만든다는 일이 정말 무모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을까’ 그 시작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사성구 작가가 꺼낸 아이디어가 우리네 ‘소리’였죠. 한글이 우리의 소리에서 만들어진 문자이듯, ‘어쩌면 세종대왕이 사투리나 민요 등 다양한 소리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란 상상력을 토대로 극을 구성했어요.”
이 공연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을 직감한 세종이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시절이었던, 훈민정음을 만들던 때를 한바탕 연극으로 펼칠 것을 제안하며 깊은 회상에 젖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종의 액자구조 형식이다. 그 속에서 세종이 낮은 백성들의 삶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을 생각하는 깊이와 어쩌면 가치 없는 소리(말) 속에서 높은 가치를 발견하고 문화적 자주국가를 실현하고자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는 의지와 확신, 추진력을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한글 창제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과민한 유생들이 반대 상소를 올리고, 세상이 무너질 듯 확대 해석하는 그들의 모습, 중국이 개입하고 실험 과정에서의 웃지 못할 아이러니한 일 등이 경기소리 중 ‘언문뒤풀이’(국문으로 여러 가지 말을 재미있게 엮어 가는 곡조를 굿거리장단에 얹어 부르는 사설)를 모티브로 위트 있게 희극적으로 전개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통한 고민과 깨달음, 그리고 숭고한 애민정신을 오롯이 담아냈다. 정 교수가 느낀 세종대왕이 그랬다. [창작소리극 <까막눈의 왕> 연출가 정호봉 교수가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모습.]
“작품을 연구할수록 세종대왕의 내려놓음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세종대왕도 처음 훈민정음을 완성하고 고민했을 것 같아요. 유림들의 반대도 컸고요. 아마 한자와 비교해 유치한 문자로 치부됐겠죠. 하지만 세종대왕이 위대한 점은 여기에서 나와요. 그분은 이미 아셨던 것 같아요. 우리의 소리에 곧 철학이 담겼다는 진리를요. 거창하고 어려운 형태가 아니라 우리의 소리를 쉽고, 간단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내려놓음을 하신 거죠. 그게 곧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죠. 이 작품을 통해 이 점을 부각하고 싶었어요.”
맛깔스런 음악도 이번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다. 작곡은 김성국 중앙대 교수가 기존 민요를 현대적으로 편곡해 소리극의 묘미를 더한다. ‘한강수 타령’(경기), ‘산염불’(서도), ‘궁초댕기’(동부), ‘농부가’(남도) 등 귀에 익숙한 팔도의 민요가 극을 흥미롭게 이끌어 간다.
국립국악원은 “이번 작품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해 우리 민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한글날이 있는 10월, 세종의 한글 창제의 원리를 우리 음악으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자한 작품”이라며, “국립국악원은 새로운 무대 양식에 맞는 전통극을 창작해 대중이 공감하고, 우리 소리를 더욱 가깝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소리극을 개발해 나갈 것이다”라고 전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1호(2018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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