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윤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명예교수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소확행을 권하는 사회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는 삶’을 향해 성공보다 행복의 가치를 앞에 두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사진 서범세 기자
“행복은 신기루, 오롯이 나를 느껴야”
행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행복론도 범람하고 있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오랜 기간 행복에 대해 탐구해 왔다.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닿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인문학 전통을 통해 행복론을 탐구해 온 김동윤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명예교수는 “행복은 자칫 신기루와 같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근대의 산물로서 ‘발명된 행복’은 상품처럼 잘 포장돼 있지만, 순간의 만족을 얻을 뿐 결국 허무함을 가져올 뿐이다”라며 “상품화된 행복, 잡을 듯 잡을 수 없는 자기 행복에 취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순간 여기 오롯이 있는 나를 느끼고 자각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몸과 정신의 회복’에 대해 말했다. 그것은 곧 섭생의 문제이며 먹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이미지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김 교수는 “몸과 정신이 분리돼 있지 않고, 하나로 연결돼 있으며 긴밀히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몸의 감각을 푸릇푸릇하게 깨우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다”라고 했다. 나아가 구도자의 삶과 같이 ‘영성’을 추구할 때 더 깊은 단계의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최근 행복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에서는 행복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몸과 마음과 자연이 일체돼 살아갔기 때문에 굳이 행복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행복은 서양에서 온 단어입니다. 특히 산업화 이후 임금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것들이 발명됐는데 여가, 풍경, 학교, 행복 등이 다 근대의 산물입니다. 상품화한 거죠. 지금도 행복론은 범람합니다. 하지만 자기중심의 폐쇄적이고 물질적 안락과 이기적인 웰빙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삶의 진정성이나 세상에서의 존재 이유와 같이 귀중한 것들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핵심은 간단합니다. 아침에 화장실에 잘 갔느냐, 잘 먹느냐, 밤에 잘 자느냐. 이 3가지가 잘 지켜지는 게 행복입니다. 임어당(林語堂, 중국 대문호)이 <생활의 발견>에서 얘기한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움직여야 해요. 혈액 순환이 원활하려면 운동을 해야 하죠. 글을 쓰기 위한 행복론은 넘쳐나지만, 관념적인 내용입니다. 결국엔 몸, 몸이 건강한 게 행복의 조건입니다.”

몸이 건강해도 마음이 아플 수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다는 건 기분 좋은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몸의 기분이 좋은 상태가 유지되는 게 행복입니다. 몸이란 감각의 세계입니다. 감각이 있어야 감각을 통해서 개념이 생기는 겁니다. 세상은 감각의 현장이죠. 숨 쉬고 느끼고 먹는 것 그 모든 게 감각입니다. 인간은 감각의 세상을 떠나는 순간이 죽는 순간입니다. 끊임없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의 ‘몸의 현상학’ 얘기가 나옵니다. 실제로는 많은 저서와 논문이 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몸을 어떻게 다스릴 것이냐’입니다. 몸을 다스려야 정신을 다스립니다. 그 둘은 같이 가는 겁니다.”

몸과 정신이 연결돼 있다는 말씀인가요.
“둘째 포인트는 ‘몸과 정신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상호작용한다’는 것이죠. 또 몸은 외부 환경에 노출돼 있습니다. 공기와 물과 자연과 맞닿아 있고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합니다. 심지어 지능도 환경에 의해 바뀐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좋은 동네에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환경을 만들기도 하고 환경의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피에르 브르디외는 이것을 ‘아비투스(habitus)’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사는 장소와 환경으로부터 당신은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문화이고, 문화를 구성하는 건 아비투스입니다.”

어떻게 기분 좋은 상태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감각이 푸릇푸릇하게 살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계속 기분이 좋다면 그게 행복입니다. 소위 ‘썸을 탄다’는 것도 그 사람과 있을 때 기분이 좋은 상태가 유지된다는 겁니다. ‘시장이 반찬이다’는 말이 있듯이 내 감각이 살아 있으면 맛없는 것도 맛있게 느껴집니다. 의학적으로 몸이 건강하면 감각이 살아나게 돼 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뿌옇게 보이는 것도 오감각이 오염돼서 그렇습니다. 감각을 계속 오염시키면 후에는 병까지 얻게 됩니다.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나쁜 이미지에 계속 노출되면 그게 쌓입니다. 도쿄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무의식층에 이미지가 퇴적됩니다. 폭력, 살인, 섹스 등을 대중매체 등에서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데 아주 해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영향을 끼치는데, 예를 들면 어떤 순간에 손이 먼저 나가는 겁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 동시에 비이성적인 존재입니다. 프로이트가 얘기했잖아요. 그래서 나쁜 이미지가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 주변에는 불행의 조건이 널려 있습니다. 그 재미가 사람을 죽입니다.”

최근 생태 복원에 관한 책도 쓰셨는데요.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연관된 이야기일 수 있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트를 가보면 사람들이 성분이 무엇인지는 잘 보지 않습니다. 맛있고 고소하면 선택하죠. 10년, 20년 먹는다고 했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 건강한 음식이 어디서 오는가를 보면 땅에서 오잖아요. 토양이 건강한 게 행복의 조건입니다. 자연이 건강할수록 우리도 건강한데 우리는 그걸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죠. 우리 문명은 이미 방향을 틀었습니다. 극단적인 산업 문명으로 가는 길에서 폭염도 감수해야 합니다. 여름이 끝났으니 괜찮겠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폭염은 또 옵니다. 르 몽드에서 특집을 냈는데 2050년 프랑스의 도시 온도가 55도까지 올라간다는 예언을 담았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폭염 속에서 인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었으니 나는 괜찮다, 너는 약 오르지’라고 하는 건 냉소주의입니다. 행복의 적은 냉소주의입니다. 실제로 저는 집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습니다. 자동차도 없고 불도 샴푸나 합성세제도 쓰지 않아요.”

편리함을 추구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시원한 에어컨을 틀고 자동차를 타는 것은 환경에 좋지 않습니다. 이런 편리함을 통해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건 지극히 이기적인 물질주의 행복론입니다. 행복은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재벌이 과연 행복할까요. 모든 편리함의 극치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진짜 행복한지 한 번 물어보세요. 저는 지구가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류의 존망과 지구의 생명과는 관계가 없어요. 수준 있는 인간 문명의 지속 가능성이 핵심이고, 사회를 바꾸고 환경을 개선시켜야 후대가 행복해집니다. 극진히 사랑하는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사람들은 잘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 개인주의가 새로운 행복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행복의 문제는 에고이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불리는 마티유 리카르(Matthieu Ricard)가 있습니다. 프랑스 최고 연구기관인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세포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티베트 불교에 매료돼서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 들어가서 30여 년간 수행을 합니다. 그리고 <행복(삶의 가장 중요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안내서)>라는 책을 썼습니다. 행복론의 원조입니다. 최근에는 <애타주의(Altruism)>이라는 책을 썼는데, 당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그것은 낮은 수준의 행복이라고 봅니다.”

마티유 리카르의 행복론의 요체는 뭡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겁니다. 많이 가지면 만족감이 와야 하는데 반대로 공허함을 경험한다는 거죠. 프랑스와 같은 유럽의 중심 국가가 약 소비로 볼 때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왜 그럴까요. 극단적인 물질 지향적 삶이라는 건 궁극적으로 삶의 무의미와 공허함을 낳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못 견디는 게 경제적인 곤핍이라고 하죠. 어느 정도 충족이 되면 반드시 오는 게 삶의 무의미, 공허함입니다. 연인을 만나고 사랑해도 결국에는 다 떠나요. 100세 시대라고 할 때 60대 정도 되면 인생이 정리가 됩니다. 남은 4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이죠. 처음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젊은 시절에도 고민해야죠. 그러니까 행복의 조건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think’보다는 ‘reflect’, 단순히 생각하는 게 아니라 깊이 사색하고 숙려해야 합니다.”

무엇을 사색하고 숙려하면 좋을지 의견 부탁합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결국 내가 어디서 왔는가, 삶의 존재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탐구합니다. 뿌리의 근원을 찾아보는 게 행복의 조건입니다. 그것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불교에서는 붓다의 세계라고 합니다. 인간의 언어가 도달하지 않는 존재의 세계가 있는데, 영성적인 세계죠. 우리가 완전히 잊어버린 세계입니다. 가치 지향적인 합리성에 입각한 정신의 추구, 꼭 종교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알지 못한 신비한 것에 대한 경외의 마음이 필요하죠. 이건 남녀의 만남을 훨씬 뛰어넘는 거룩한 마음입니다. 그게 시적인 마음이죠. 나의 근원을 찾다 보면 그런 것과 만날 수밖에 없어요. 제도적인 종교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종교가 지극히 제도화되면 세속화, 물질화됩니다. 우리는 영성, 종교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행복은 신기루, 오롯이 나를 느껴야”
김동윤 명예교수는…
1991년 프랑스 프로방스대 문학 박사. 프랑스 정부(교육부) 공인 ‘통합 국가 박사(le nouveau doctorat)’ 학위. ‘도시 인문학’, ‘폴 리쾨르 철학과 해석학 연구’, 미셀 드 세르토, 앙리 르페브르의 ‘일상성 문화 연구’ 논문, ‘문학 비평론’ ‘ 지오노 문학 연구’ 등 영상문화 콘텐츠와 문학 철학에 관한 논문을 다수 저술했다. <행복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의 역자로 참여하고 행복론에 대한 강의를 펼치는 등 인문학적 전통에 바탕을 둔 행복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1호(2018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