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 고전에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통찰이 담겨 있다. 약 1000년에 걸친 한국 산문의 역사에서 주제를 들여다보는 것은 시대와 사회를 이해하는 통로일 뿐 아니라 당대의 취향과 감성, 또 상상력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한문학자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를 만나 천년 산문의 주제와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천년 문장, 인간 이해하는 보물지도죠”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글을 쓰고 지적 작업을 하는 전통이 강합니다. 우리 인구수 대비 기록물의 양과 문헌의 양, 즉 저술 활동이 활발하죠. 실질적으로 국가의 장래성과 발전 가능을 보는 척도가 문헌 생산 능력입니다. 우리 옛 조상들도 많은 글을 지었고 글로 과거도 치렀으니, 그 DNA는 한국 사람이 가진 지적 자산이고 역량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을 대표하는 고전 연구가인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저술과 기록의 오랜 전통’에 대해 강조했다. 옛 사람들은 무엇을 글로 남겼으며 그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안 교수는 “한 시대의 풍경과 사유, 사회와 문화, 개인의 취향과 기호까지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문학사에서 산문이 쓰이기 시작한 때부터 즉, 삼국시대 원효에서 20세기 정인보까지 약 1000년에 걸친 산문의 역사에는 인간을 이해하는 보물지도가 담겨 있다. 안 교수는 천년 문장을 모아 놓은 <한국 산문선>의 공동 저자로 참여하면서 특히, 옛글의 주제를 분석해 고전의 지혜를 캐내는 작업을 했다.

<벽광나치오>, <담바고 문화사>, <궁극의 시학>, <선비답게 산다는 것> 등 그가 평생에 걸쳐 저술해 온 책들을 보면 흥미로운 키워드가 가득하다. 안 교수는 “담배와 같은 작은 소재를 통해서도 그 시대의 경제사와 문화사의 중요한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담배뿐만 아니라 누군가 정리를 하지 않아 흩뿌려진 자료들이 널려 있다”며 “한문 고전의 문턱을 낮추는 ‘마중물’과 같은 쉬운 고전, 재미와 감동을 담은 고전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교수연구실이 아닌 대동문화연구원장실에서 만난 안 교수는 그가 1년 6개월째 몸담고 있는 대동문화연구원의 주요 활동과 ‘고전 번역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인터뷰의 포문을 열었다.

지난해 1월 원장 취임 이후 굵직한 행사들을 몇 차례 치르셨는데요. 어떤 의미 있는 결과물들이 나왔는지요.
“대동문화연구원은 국학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와 관련한 학술을 연구하는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주제는 인문학으로 올해 1월 17일로 설립 60주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로 가장 먼저 생긴 인문학 연구기관이 연세대 국학연구원이라면 이곳은 두 번째로 오래된 곳이고, 그동안 영인본을 비롯해 학술서, 전집 등 국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진행됐고 그 성과의 대표적인 것들이 뒤쪽에 꽂혀 있는 책들입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전문 학술지가 대동문화연구인데 100호를 넘었습니다. 학술지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숫자입니다. 올해 60주년을 맞아 심기일전해서 새로운 변화를 주려고 하는데, 큰 주제는 고전학입니다. 우리의 고전을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으로 연구하는 양상을 지양하고, 우리의 고전이 한국의 고전뿐만이 아닌 동아시아의 고전, 세계인의 고전, 인류의 고전으로까지 뻗어나가는 방향성을 가지고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게 큰 줄기입니다.”

한자 문화권에서 쓰인 우리 고전은 한국에서도 여전히 재조명이 필요한 상황에서,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근거가 있습니까.
“세계로 통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문자입니다. 우리의 고전이 한글로 된 것도 있지만, 100년 이전에는 95% 정도 이상이 한문으로 돼 있거든요. 특히 국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가치 있는 기록들의 상당수가 한문으로 돼 있다는 점에서 그냥 단절이 아니라 완벽한 단절입니다. 지금 한국 지성인 가운데 고전을 원전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1% 남짓 되지 않아요. 그러니 그런 고전을 인류의 고전으로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중국인이 하면 중국인의 시각으로 보게 되고, 일본인이 하면 일본인의 시각으로 보게 돼요. 한국인의 시각으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인류의 고전으로 만든다는 게 중요한 일이잖아요. 예를 들어 서양 사람이 동아시아의 여성을 주제로 다루고 싶다고 할 때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엔 번역본도 있고 연구 성과도 나와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번역된 게 없으면 한국은 관련 자료가 없구나 하면서 소위 ‘코리아 패싱’이 일어납니다.”

고전 분야에서의 ‘코리아 패싱’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학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예요. 특히 전근대 사회에 관한 논의가 많이 일어나는데, 일례로 ‘열녀’라는 주제를 놓고 볼 때 중국과 일본에도 다 열녀가 있었죠. 일부는 여성의 학대로 볼 수 있고 또 일부는 윤리의식으로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느냐는 연구자의 시각이니까 차지하더라도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얼마나 풍부한데, 번역이 잘 되지 않고 번역본이 없으니 연구가 되지 않아 중국이나 일본의 것으로 대체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야 해요.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주제의 다양성은 무궁무진해요. 인간에 대한 문제, 예컨대 노비 문제만 봐도 하층민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 우리도 이야기할 게 굉장히 많거든요.”

세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우리 콘텐츠라면 어떤 것들을 꼽아볼 수 있을까요.
“시기적으로 근대 쪽은 그래도 돼 있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근대 이전, 우리로 보면 고종 이전이요. 우리나라처럼 언어로 확실히 구분되는 곳이 없어요. 중국은 백화문이나 고문이나 언어 차이가 우리처럼 심각하진 않아요. 우리는 너무 심각해요. 한자 문화가 지나간 후에는 우리 글로 작업했을 것 같죠. 1910년 이후로 한글로 모든 게 돼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어로 돼 있잖아요. 한국인이 학술 활동한 것 가운데 한국어로 기록한 것들이 일제강점기에 얼마나 되겠어요. 해방 이후 한국전쟁 혼란기를 거치면서 연구가 쌓이지 않았어요. 우리 경제 발전 수준과 우리가 가진 원천 자료의 풍부함에 비하면 그렇습니다.”

교수님의 최근 저작물로 <한국 산문선>이 있습니다. 국내를 대표하는 고전학자들이 함께 펴낸 옛 산문집인데, 참여하면서 어떤 새로운 사실이나 의의를 발견하셨습니까.
“무려 1300년이란 역사 속에서 그렇게 많은 문헌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 정도의 규모로 정리된 것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613편의 글이 수록돼 있는데 그 안에서 주제로 분류하면 수십 가지가 나옵니다. 예컨대 우리가 일본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 중국이 침략해 올까 오지 않을까, 통신사를 보내야 할까 말까 등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거든요. 고려시대 때 원 제국 치하에 들어가 있을 당시의 글들이 한 권에 들어가 있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당시 사람들이 흥분하고 좌절했을 것 같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원나라 세계 제국이 된 것에 대해서 국제주의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이 존재했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큰 틀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이죠.”

그 이전에 출간하신 <담바고 문화사>도 담배 하나로 문화사 연구를 한 점에서 주제 면에서 독특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담배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담배에 관한 자료가 한 번도 정리된 적이 없어요. 시기적으로 임진왜란 전후, 광해군 시절에 담배가 들어왔다고 보는데 당시 국제무역을 통해 이득을 남겼거든요. 중국 북방에 담배를 전해준 게 우리나라예요. 조선 후기의 경제에서 핵심이 담배예요.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조선총독부에서 담뱃세가 전체 재정의 20~30%를 차지했어요.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일본인들이 근대 이전에는 담배가 조선에서부터 일본에 수입됐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실제로는 반대예요. 그 생각이 깨진 게 이광수의 <지봉유설>에 ‘조선의 담배는 일본으로부터 들어왔다’고 나옵니다. 한국의 저작물 가운데 일본에 수입돼 읽히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지봉유설>이에요. 저작이 국제화됐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저작물이 필요해요.”

우리 고전에도 알고 보면 재밌는 이야기, 흡입력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거잖아요.
“그 유명한 <원이엄마 편지>예요. 원이 엄마가 죽은 남편의 무덤에 넣은 편지인데 1998년 안동의 무덤에서 발견돼서 강호의 여성들의 눈물을 짜게 만들었죠. 그것은 한글로 된 문장이에요. 혹여 그런 글들을 무시하고 가치 없다고 생각하면 천만에 말씀이에요. 한자는 한자대로, 한글은 한글대로 정리해내야죠.”

교수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지적 작업물의 전통이 강한 민족이라고 표현해주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과거엔 출판을 국가가 관할했어요. 활자를 소유하는 곳도 국가였고 문집을 내는 것도 국왕의 허락이 있어야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헌을 만드는 전통이 약화됐느냐,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필사본 문화를 통해 마음껏 쓰고 싶은 글, 내고 싶은 책을 냈어요. 스스로 필사해서 읽겠다는 데 누가 막겠어요. 재밌는 점은 그 필사본들이 조선 중기 이후 문화의 활력소예요. 사실은 필사본을 통해 지적 작업물이 더 활발했어요. 그중 대표적인 게 이중환의 <택리지>예요. 근대 이전에는 간행되지 않았다가 처음 일본에서 번역서가 나오고 그걸 보고 중국인이 간행했고 다시 그걸 보고 1910년 이후, 20세기 들어와서 비로소 간행됐다고 볼 수 있어요. 이본이 200종이 넘는데 똑같은 이본이 하나도 없어요. <춘향전>도 그래요. 필사본이 더 많아요. 좋은 저작들 가운데 <북학의>가 간행된 적이 있나요. 그 유명하다는 <열하일기>가 간행된 적이 있나요. 조선 후기 여행기의 핵심이자 우리 고전 가운데 손가락 밖에 내세우기 힘든 <열하일기>도 필사본이었어요.”

그 당시 필사본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은 열망이 있었다는 것이잖아요. 왜 지식인들이 새로운 취향을 가지고 또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을까요.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고, 특히 독특한 취향을 누리는 사람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죠.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가 저술이거든요. <한국 산문선>에 바둑 기사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요. 지금도 바둑의 인기가 대단하지만 조선 후기 17~19세기에는 엄청났다고 봐요.
‘요즘 누가 혜성같이 등장해서 누구와 시합을 하고 30년 동안 바둑계를 좌지우지했다’는 식의 기록이 나옵니다. 18세기에는 그런 사람이 여럿 등장하면서 일종의 바둑 국기의 계보가 쫙 나와요. ‘누가 영조 시대를 장악했고 영조 말기에 누가 장악해서 함께 몇 십 년을 평정했다’ 이런 계보예요. 그러한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진 문인들이 글로 쓰면서 변화가 시작됐거든요. 예전 같으면 글감으로 무가치하게 여겨 안 쓰던 주제들을 조선 후기에는 씁니다. 또 화훼나 수석(돌) 취미에 대해 기록한 글도 많습니다. 김홍도의 <단원도>를 보면 괴석이 반드시 있어요. 정원을 멋있게 그린 그림에도 괴석이 등장해요. 그 시대 글들을 쭉 읽다 보면 당시 사람들의 문화를 설명하는데 이와 같은 취미나 취향이 빠질 수가 없는 겁니다.”

취향이나 감성을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옛글을 통해 ‘상상력’이라는 키워드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길주는 <신선들의 도서관>이라는 글을 짓습니다. 결국 주제는 뭐냐하면 아무도 짓지 않은 위대한 저작을 내가 한번 해보겠다는 거예요. 글이 상당히 입체적이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표현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재밌습니다. 그냥 재밌게 보다가 의미를 곱씹어보면 정말 대단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길주의 <용수원기>라는 글은 당시로 보면 거대한 병원 설립안이에요. 병원을 설립해서 자기 가족도 고치고 못사는 사람도 고치겠다는 얘기예요. 종합병원 설립 기본 계획안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게 다 문장으로 돼 있어요. 상상 속 정원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마음속 원림을 짓고 농촌 속에서 소박하게 살겠다는 희망을 담고 있어요.”

옛 문장도 지적 생산물이지만 교수님의 지적 열망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끊임없는 연구와 왕성한 저술 활동의 동력이 무엇입니까.
“한 편의 글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그 시대 트렌드를 설명하기도 하고 또 인간의 군상들을 냉정하게도 야비하게도 때로 눈물 나게도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잘 발굴해 소개해주면 누군가는 또 그 작업에 매료돼 연구를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한 개인으로서 이 일이 보람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열중하는 연구나 주제는 무엇입니까.
“이중환의 <택리지>입니다. 대학원생들과 3년 전부터 세미나를 열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주석을 달고, 출간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공부가 끝이 없는 게 이미 해 놓은 작업에서도 지금도 오류가 나와요. <택리지>는 당시로 보면 혁신적인 지리서였습니다.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와 같은 지도가 있지만 자세한 설명이 없어요. 그런데 <택리지>에는 담담하게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있어요. 그래서 <택리지>는 구비문학사에서 최고의 저작이라고 봅니다.”

가장 좋아하는 문장 혹은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혁신적인 글쓰기, 틀을 깨는 글을 좋아합니다. 글을 쓰는 의도가 새로운 시각을 담았다거나 실험적인 글들인데 박지원이나 이덕무, 이옥의 글들이 대표적이죠. 이옥은 문장을 쓸 때 일반적인 문법을 무시하고 마치 공문서를 기록하듯이 써요. 개인적으로 좋은 글은 서정성이 있는 문장이에요. 제가 그렇게 느끼듯이 옛글을 번역해서 읽는 것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자극이거나 삶의 방향타이거나 흥미나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음만 열면 가능하지 않겠느냐 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8호(2018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