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美 옻칠과 자개 - 김영준 나전·옻칠 작가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사진 이승재 기자 ] ‘숫자의 세계’에서 ‘고독의 세계’로 인생의 궤로를 수정했다. 그 고독의 끝에서 ‘빛의 세계’를 만났다. 김영준 나전·옻칠 작가는 “증권사를 그만두고 작품을 시작한 뒤로 수많은 어려운 고비가 찾아왔지만 인고의 시간을 거쳐 영롱한 빛을 내는 옻의 에너지를 받으며 새로운 희망을 얻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나전칠기는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계승돼 천년을 이어온 독특한 공예예술이에요. 전통의 기본을 살리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현대적 디자인으로 진화시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시대의 요구라 하겠습니다.”경기 양평군 옥천면에 위치한 김영준 갤러리에서 만난 김영준 나전·옻칠 작가는 우리 나전의 우수성과 전통의 현대화에 대해 거듭 말했다. 고려시대 가장 부흥했던 한국의 나전은 현재 인간문화재 및 장인에 의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최근 항균, 항습, 방수, 방습을 비롯한 옻칠 특유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대중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김 작가는 “중국은 옻칠로 그림을 그리는 칠예가 발달했고, 일본은 옻칠을 식기나 그릇, 만년필, 자동차 등에 다양하게 적용하면서 산업화에 성공한 반면 한국은 통일신라시대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주로 왕들이 사용하는 고급 공예로 고귀함을 이어왔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생활 문화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쇠퇴일로를 걸었다”며 “우리의 자랑이었던 나전칠기를 다시 살리는 길은 오늘의 문화 코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도 알아본 나전의 매력
나전과 옻칠 작가로서 김 작가의 행보는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외 전시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나전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전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했던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증권과 나전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이기에 어떤 계기로 업을 바꿨을지, 작가로서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게 됐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1984년부터 당시 동서증권의 마지막 공채로 입사해 10년 4개월을 일했어요. 주가지수가 100일 때 들어가서 1000까지 뛰었으니 큰돈도 벌었지만 그만큼 회의감도 컸어요. 시장이 어려워지면 대기발령이 나는 사람들도 보고 남의 돈으로 손해를 보는 일도 괴로웠죠. 내 노력과 관계없이 주식이 출렁거리는 것을 보면서 고민하던 중에 <인생 이모작>이라는 책을 보고 결심을 하게 됐죠.”
그는 나전칠기에 대해 두 가지 이유에서 긍정적인 미래를 전망했다고 한다. 첫째는 ‘어머니의 자개장’으로부터 느낀 나전의 영롱한 빛에 매료돼서이고, 둘째는 ‘남들이 가는 반대편에 꽃길이 있다’는 주식시장의 격언에 따라서다.
198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광풍을 일으켰던 자개장은 아파트 문화가 정착하면서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김 작가는 “자개장을 만들던 장인들 상당수가 가구 공장으로 들어가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전통이라는 것은 쉽게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게 아닌데 주식시장에서처럼 남들이 찾지 않고 가치를 몰라볼 때 먼저 알아보고 선점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40대의 뒤늦은 나이에 뛰어든 나전칠기의 세계. 미대를 졸업하지 않았기에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는 고민도 짙었을 법하다. 이때 회화나 도자기가 아닌 나전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 자체가 차별화 포인트가 됐다고 한다. 나전은 알음알음 도제교육을 통해 소수에 의해 전수돼 올 뿐 대학 교육과정에서 제대로 다루는 곳은 많지 않아서다.
오히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오히려 열린 생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통의 현대화, 디자인 혁신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한 김 작가는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일본에서 옻칠을 배운 뒤 1998년부터 본격적인 나전과 옻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돌이켜보면 계속되는 도전, 실패 또 도전의 연속이었다. 빛바랜 껍데기에서 어둠을 깨는 ‘빛의 예술’
야심 찬 디자인으로 잇따른 전시회를 열었지만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국내 미술계 및 컬렉터가 김영준이라는 이름 석 자를 주시하게 된 데는 빌 게이츠를 비롯해 해외 명사들이 한국 나전의 매력을 먼저 알아보면서다. 그는 “국내에서 홀대받고 해외에서 환대받는 게 바로 나전이다”라고 전한다.
“10년 전에 빌 게이츠가 ‘자개 X-박스’와 제 작품인 <조충도>를 주문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이듬해 스티브 잡스도 아이폰 케이스를 제작 주문했어요. 한번은 아랍에미리트의 공주가 전시 도중 현장에서 작품을 다 사간 적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한을 했을 때 성좌를 만든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이에게 향유되는 세계는 아니지만 한번 나전의 매력을 알게 되면 그 깊은 맛에 확 빠지는 게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홍콩 전시에서 만난 한 컬렉터는 비행기를 타고 직접 한국으로 와서 원하는 작품을 가져가기도 했어요. 귀한 작품이라 한 번 반려했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 선생님보다 더 귀하게 모시겠다’고 하니 안 드릴 수가 없었죠. 국내에서도 몇 분 마니아가 있는데 집 전체에 옻칠을 하고 나전 작품으로 인테리어를 하는 식으로 일상에서 향유합니다.”
그렇다면 김 작가가 가까이서 보고 느끼는 나전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버려진 껍데기에서 핀 새 생명’, 그리고 ‘긴 고독을 뚫고 나오는 빛’이라고 요약했다.
“나전에 쓰이는 재료는 전복, 조개, 소라, 진주 등이 있어요. 모두 버려지는 껍데기죠. 특히 저는 전복을 주로 쓰는데 딱딱하고 빛바랜 껍데기를 벗기고 가공해서 써요. 그럼 볼 때마다 색이 달라져요. 볼 때마다 아름다워요. 지난한 옻칠의 과정을 더하면 그 색과 빛이 볼 때마다 다른데, 한 마디로 어둠을 깨고 올라오는 빛 같아요. 버려진 것에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작업을 하는 셈이죠.”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여러 번의 사포질과 옻칠을 반복해야 하는 과정은 인내의 과정 그 자체라고 한다. 20년의 경험이 축적됐지만 여전히 옻칠은 까다로운 작업이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옻칠이 생각처럼 마르지 않고 색이 나오지 않을 때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일이 허다하다.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택시 운전을 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옻과 가까이 하는 삶은 절망보다는 희망, 어둠보다는 밝음에 가깝다. ‘옻의 에너지’를 받기 때문이라고 김 작가는 부연 설명을 한다. 어둠 속에 있을 때 빛이 어둠을 밝혀주듯이 그 빛을 매일 보는 기쁨, 또 남에게 빛을 전해주는 사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옻칠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옻은 천연 재료로 자연 그대로를 담고 있기 때문에 몸에 정말 좋아요. 작업실 한쪽에 옻칠로 전체를 도배한 작은 옻방이 있는데 피곤할 때 그곳에서 한잠 자고 일어나면 가뿐해집니다. 인간에게 꼭 필요하고 같이 있으면 유용한 게 바로 옻이죠. 옻과 자개가 만난 나전은 그 자체로 ‘자연의 디자인’이에요. 회화 작품이 화려한 데 반해 이것은 별다른 문양이 없어도 안쪽에서 빛이 올라오기 때문에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보는 각도에 따라, 조명에 따라, 또 마음의 상태에 따라 매번 새로운 영감을 주는 게 바로 우리의 나전입니다.”
다양한 색감과 기법으로 늘 새로운 도전을 지향했던 김 작가의 나전 실험은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가구에서 회화 작품으로, 또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평면에서 입체로 향하는 길에서 다양한 협업을 즐겨 한다. 최근에는 드레스에 자개를 붙이는 파격 실험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주로 우주, 물방울, 꽃과 나비 등 자연에서 주제를 가져오는데 일상의 다양한 풍경과 사물을 응시하면서 새로운 영감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기업과의 다양한 협업도 늘었다. ‘창조적 아트워크’라고 표현하는 이 작업은 가전, 휴대전화, 화장품, 게임기 등 다양한 소재에 나전을 접목하는 일이다. 삶의 궤도를 전면 수정한 뒤 나전 작가로서 20년의 광폭 행보를 해 온 그의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문화 상품으로서 나전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전의 세계화에 남은 열정을 쏟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감각이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요. 이들을 키우는 일이 곧 나전의 세계화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한국의 나전 문화를 다시 깨워 세계 속에 우리의 문화를 전할 수 있다면 남은 사명으로 알고 모든 것을 쏟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8호(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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