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3인의 젊은 기획자가 있다. ‘왜 일하는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질문을 던지고 행동으로 옮기며 자기주도적인 삶을 사는 이들이다. 불안정한 노동시장 속에서 누군가에게 선택받길 기다리기보다 자기 스스로 플랫폼이 돼 작지만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일에 영혼을 바쳐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세대 의식도 공유한다. 성장 동력이 멈추고 있는 거대한 시대적 파고 앞에서 막연한 내일에 위태롭게 흔들리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하고 싶은 일을 통해 당당한 자기 존중과 삶의 주도권을 찾아 나선다. 이들은 돈, 명예, 권력보다 재미, 의미, 가치에 따라 일을 선택하고 삶을 일군다는 점에서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대변하고 있다.
N잡러 홍진아 씨
“직업은 왜 하나여야 하죠? ‘일의 리듬’ 누려요”
“프리랜서, 투잡족 아니고 엔(N)잡러입니다.”
여러 가지 직업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구축하는 포트폴리오 구성력으로 일의 주도권을 찾아가는 기획자가 있다. ‘프로 N잡러’라 말하는 홍진아 씨다.
“N개의 소속을 가진 팀플레이어라는 의미로 N잡러라고 한 것은 자유로운 프리랜서나 돈을 더 벌기 위한 투잡, 스리잡에 제가 포함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홍 씨의 N잡 실험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다. 첫째는 ‘낮일’과 ‘밤일’을 구분하기. 둘째는 두 개의 직장에 동시에 다니기다.
홍 씨는 회사에서의 업무만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고 한다. 퇴근 후에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에너지를 쏟았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여가’나 ‘취미’라고 평가했지만 홍 씨에겐 판을 열고 사람들을 모아 결과를 끌어내는 일이었다.
“여성들을 위한 굿즈를 만들고 수익을 여성 단체에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해서 동네(상수동)에 사는 예술을 전공한 일반 회사원들과 함께 ‘어쩌다 극단’을 만들고 펀드를 받아서 <합정역 7번 출구>라는 옴니버스 뮤지컬을 올리기도 했죠. 또 소셜 투자 모임을 만들어서 12명의 친구들이 매달 5만 원씩 모아 다른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일을 하고 있기도 해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사람이 하는 일을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노동, 예술 및 창작 활동인 작업, 정치 및 사회 활동인 행위로 나누고 있듯이 홍 씨는 ‘꼭 돈을 받고 하는 것만 일일까’라는 질문에 따라 퇴근 이후의 프로젝트들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또 밤일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회사 업무를 할 때 역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보며, ‘네트워크=자산’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낮에는 더 강도 높게 일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저 스스로에게 마련해줬다”고 홍 씨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또 하나의 일자리 실험을 하게 된다. 두 개의 직장에 동시에 다니는 일이다.
“‘홍진아 씨가 가진 에너지를 딴 데 쓰지 말고 업무에 모두 쓰면 성과가 더 나올 텐데’라는 상사의 얘기를 듣고 나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때가 큰 프로젝트 하나를 성공적으로 끝내서 팀 회식을 하는 자리였거든요. ‘회사와는 계약 관계인데 이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어떻게 쏟지. 난 그럴 생각이 없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N잡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의 퇴사 소식이 알려지면서 몇 개의 회사에서 이직 제안이 왔고 홍 씨는 역으로 두 개 회사에 제안을 하면서 2개의 낮일을 시작했다. 진저티프로젝트와 빠띠라는 소셜 벤처에 각각 일주일 두 번, 세 번씩 출근하면서 기획 및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것. 여기에 N개의 밤일을 더해 그는 프로 N잡러가 됐다.
“N잡의 기술은 일의 리듬을 누리며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쪼개보고 삶을 정리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전문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을 하게 됐어요. 대기업에서 10년 일하면 어떤 전문성이 생길까를 질문해보면 단순히 직군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에게 맡겨진 일을 완성도 높게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고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것도 저의 전문성이라고 생각해요.”
홍 씨는 현재 ‘선샤인 콜렉티브’라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여성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다. 회사에 소속되기보다 더 많은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고 싶어 선택한 또 하나의 실험이다. 그의 N잡 실험 중 반응이 좋았던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를 시작으로 여성들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들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공간 안에 담아낼 계획이라고.
“더 많은 N잡러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맡았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밀레니얼 교사 연구였는데, 젊은 선생님들이 퇴직을 하는 현상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었어요. 철밥통 교사도 교장과 맞지 않으면 그만두고 요리사를 하겠다는 세대가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앞으로 ‘개인이 일을 선택하고 자신의 주도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제도적·사회적 논의의 장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일상예술탐구 오잉(OIING)
“예술은 어렵다? 일상에서 즐겨야 진정한 예술” “오잉은 네모입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네모 속에서 꿈을 꾸기도, 음악을 담고, 네모를 전시하기도 합니다.”
일상예술탐구 오잉은 2015년 종이 한 장으로 시작해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예술을 추구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김선유·최현아 씨는 대학에서 만나 의기투합해 오잉을 만들고 음악을 중심으로 몇 가지 재미난 일들을 기획했다.
그들의 첫째 실험 ‘공간을 담은 음악, 달다래 프로젝트(달마다 듣는 다방 노래)’는 일상 속 카페, 카페를 담은 음악을 추구한다. 매번 다른 카페를 찾아가는 두 사람은 카페마다 똑같은 음악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왜 똑같은 음악을 틀까. 이곳에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은 없을까’에 대해 고민하면서 카페 음악을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5곳의 공간, 6팀의 뮤지션, 12곡의 노래. 달다래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카페 음악은 소기의 목적을 거뒀지만 성적은 시행착오로 마무리됐다. 재즈, 레게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 카페에 전달했지만 현실적으로 곡당 제작비 70만 원, 음원 수익 7원으로 10만 건 이상 재생돼야 수익이 나는 구조였다.
‘왜 사람들이 음악을 듣지 않지’ 실패한 프로젝트를 돌아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오잉은 두 번째 실험 ‘음악전시상자, 네모디오’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음악에만 집중하도록 음악을 주인공으로 세우자는 생각에서 음악상자를 떠올린 것이다. 이 상자 안에 들어가 앉으면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재생되면서 ‘일상 속 케렌시아’를 누릴 수 있다.
‘네모디오 in 공상온도’, ‘2017 종로보행거리 시민축제’, ‘바닥, 오빠딸, 네모디오’ 등 지난해부터 다양한 형태로 길거리, 갤러리, 카페 등에 네모디오가 전시되고 있다. 달다래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음악들이 주로 재생된다.
그렇다면 오잉은 자비를 들여 왜 이러한 일들을 벌이고 있는 걸까. 김선유 씨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이들의 본업은 오잉, 부업은 강사다.
“한 가지 장르를 짚어서 이야기하기 어려울 만큼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문화예술기획을 하는 것인데 아직 수익 모델이 뚜렷하지 않아서 처음엔 학원 강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오잉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지금은 영어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_김선유 씨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잠시라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모든 것입니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일상이라는 공간에 그림이나 음악을 심어보자는 생각에서 오잉의 활동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오잉의 대표로 일하면서 영어교습소에서 단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공연 시장 실태조사와 같은 단기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하기도 합니다.”_최현아 씨
오잉이 아이디어를 얻는 모든 과정에는 질문이 있다.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A4용지를 꺼내고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종이에 ‘왜’를 던지기 시작한다. ‘나는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부터 ‘세상은 왜 그런 걸까’라는 질문까지 A4용지에 담아 프로젝트의 중심과 방향을 잡아 나간다. 그들은 “오잉의 기획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A4용지’와 ‘왜’라는 질문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답한다.
주로 음악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던 오잉은 최근 한글티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영어 학원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입고 오는 옷을 보면 다 영어로 돼 있는데 이들에게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기획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종이 한 장에서 시작해 4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해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가장 가까운 일상이라는 곳에 네모를 심고 물을 주는 문화기획을 하고 싶습니다.”_김선유 씨
프로 십중생활 박초롱 씨
“딴짓을 해야 세상이 풍요로워집니다” 안정적이라 소문난 공공기관을 그만두고 딴짓매거진을 만드는 박초롱 씨.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도 “퇴사하고 딴짓을 하라”고 자신 있게 권하는 딴짓 예찬론자다.
“6년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 사람들이 이유나 계기를 많이 물었어요. 특별히 바쁘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냥 누구를 롤모델로 삼아야 할지 닮고 싶은 어른이 없었고, 밥벌이에만 매몰되지 말고 스스로를 위해 무언가 하며 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박 씨는 스스로를 ‘프로 딴짓러’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인생 십모작이라는 의미를 더해 ‘프로 십중생활’이라는 정체성을 추가했다. 그는 자신과 같이 딴짓을 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3개월에 한 번씩 매거진을 내고, 기고를 하며, 글을 쓴다. 단기 프로젝트로 축제기획을 하고, 딴짓 박람회도 연다. 최근에는 책 읽는 술집, ‘낮섬’이라는 바를 오픈했다. 창덕궁 앞 한옥을 얻어 ‘틈’이라는 이름을 짓고 파티나 토론 모임, 아카데미 등 다양한 딴짓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박 씨가 딴짓을 인생의 중심에 놓는 이유는, 어떤 일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지를 알아야 일뿐만 아니라 삶을 잘 관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딴짓’은 취미를 뛰어넘는 삶의 방식, 라이프스타일의 한 모델”이라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고 저 또한 조직을 떠나 다양한 일을 조금씩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더 바쁘게, 그러나 소진되지 않는 나날을 살고 있으며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치가 현재 중심이에요. 지금 좋고 의미가 있어서 하는 것일 뿐, 미래에 그 가치가 소멸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아요. 일반인이 극적인 성공을 이루는 게 어렵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최고는 못 된다.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럼 내 인생 즐기면서 살자는 생각을 하는 게 딴짓러들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더 중요한 특징은 개인들이 모듈처럼 움직인다는 거예요. 모듈이나 레고처럼 모였다가 흩어지고 친구를 사귀는 방식도, 일을 하는 방식도 그래요.”
박 씨는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여러 활동을 통과하는 맥이 글쓰기라 글쓰기로 밥벌이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하나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올드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 십모작’과 ‘프로 십중생활’에 더해 ‘직업 종말론자’로 불리고 싶다고 한다.
그는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일을 선택한다. 첫째는 사회에 해가 되는 일이 아니며, 둘째는 좋아하는 일이어야 하고, 셋째는 최소의 생계가 유지돼야 한다.
또 수입과 지출에 대한 생각도 명확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00세 보장 보험은 못 들어도 벌어들이는 돈의 일정 비율은 저축으로 사용한다.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선 최소한 10개월짜리 프로젝트를 두 개 정도는 유지해야 하고 노동 강도를 조절하면서 단기적인 일을 한다.
“큰돈을 벌어 큰 소비를 하는 패턴보다 여러 번에 입금과 여러 번의 출금이 있는 재무포트폴리오가 더 안정적으로 느껴진다”는 것. 또한 “금융상품에 대해서도 과도한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수입의 약 10%를 저축한다는 원칙을 세워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직업이라는 단어보다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말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N잡의 장점은 일뿐만 아니라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 관리를 종합적으로 하면서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이 모두에게 주어질 때 저는 그 시간을 모두 살아 있는 시간으로 쓰고 싶어요. 모든 일이 제 이름을 걸고 나가기 때문에 열심히 하게 되고 시간을 버린다는 생각이 없어요. 지금 젊은이들도 미래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보는데 기성세대의 기준에 못 미치니까 향락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재능이나 경험에 투자하는 쪽으로 방법이 달라진 것이죠. 모두가 생애 첫 번째 인생을 사는 것인데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9호(2018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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