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후현 데일리구조CC
[일본=글·사진 한국경제매거진 이승재 기자] 데일리구조CC 마운틴 4번 홀로 가는 길은 카트 길 양쪽으로 도열한 편백나무의 사열을 받으며 마치 공중에 떠서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다리 아래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청아하다. 거기다 지저귀는 새들까지.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싶다. 이른 새벽, 눈이 떠졌다. 집 떠난 잠자리는 매번 그렇다.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증거일 게다. 열린 창 사이로 쉼 없이 들리는 새들 소리가 싱그럽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새벽 산책을 나섰다. 6월, 여름인 데도 쌀쌀하니 한기까지 느껴졌다. 호텔을 나와 산책길로 보이는 곳으로 갔다. 표지판이 없는 두 갈래 길이다. 한쪽은 스키 슬로프로 썼던 풀이 무성한 약간 오르막길이다. 이 길은 산 정상으로 올라가 주변 풍광을 조망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한 길은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울창한 편백나무 숲길이다. 마치 어릴 적 봤던 팔각성냥 통 속 성냥개비들처럼 편백나무들이 온 산에 빽빽하게 서 있다. 가히 기골이 장대하다.어디랄 것도 없이 나는 편백나무 숲길로 들어섰다. 차가운 새벽 공기 때문인지, 정말 피톤치드 때문인지 발걸음은 가볍고 호흡은 너무나 신선하다. 살갗을 타고 도는 이곳의 공기는 여느 곳과는 확연히 다르다. 시들었던 몸속 세포 하나까지 소생되는 느낌이다. 건너편 산 너머로는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편백나무 숲을 조금 걸어가자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엷게 깔린 안개 사이로 빨간색 깃대가 꽂힌 그린이 나타난 것이다. 아침 라운드가 예정돼 있는 골퍼와의 조우, 이런 환상적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맘 한구석에는 이미 웨지나 퍼터를 가지고 올 걸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운틴 9번 홀 그린
아니면 공이라도. 일본 기후현 구조시 데일리구조컨트리클럽(CC)은 이렇게 나와 만났다. 그린 주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편백나무 숲과 곱게 다듬어진 그린과 벙커, 그리고 산 너머 밝아 오는 여명의 하모니는 굳이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2시간쯤 후 바다 가운데 떠 있는 나고야공항에 내려앉았다.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타고 나고야 시내를 관통해 1시간 30분 정도 이동했을까. 버스는 천혜의 원시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 후 나지막한 건물 하나가 나무 사이로 힐긋 보였다. 주변의 숲과 나무들이 참 잘 어울렸다. 대궐 같은 한국의 클럽하우스와 비교하면 너무나 소박한 클럽하우스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데일리구조CC가 있는 기후현은 신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다. 그중 우리가 찾은 구조시는 기후현 중앙, 산악 구릉지대에 있는 곳이다. 천혜의 원시림과 높은 고도로 연평균 기온이 영상 14.6도, 평균 강수량이 1900mm가 넘을 정도로 물과 눈이 많은 곳이다. 도심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한여름 땡볕에도 낮 기온이 27도 이상 올라가지 않고 습도가 낮은 고원지대여서 무더위를 피해 골프를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특히 해발 1100m 히루가노 고원에 자리한 데일리구조CC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골프장으로 초여름까지 잔설을 이고 있는 일본의 3대 명산 중 하나인 하쿠산 연봉의 파노라마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데일리구조CC는 1980년에 개장했다. 44.6km² 대지에 전장 9680야드의 레이크 코스(3417야드), 리버 코스(3401야드), 마운틴 코스(3406야드) 27홀로 이루어진 리조트 회원제 골프클럽이다. 스즈키 겐지로가 설계한 이 골프클럽은 각 코스 거의 모든 홀에서 북 알프스의 절경 하쿠산 연봉을 볼 수 있다는 것과 고원의 땅이 가진 원 형태를 그대로 살렸다는 점이 매력이다.
원시림으로 가득 찬 편백나무 군락지에 등고선을 따라 코스를 새겼다. 심한 절개지를 만들어 자연을 과하게 훼손했거나, 무리하게 거리를 늘리려고 시도했거나, 억지스럽게 코스를 꾸겨 넣는 디자인을 하지 않았다. 마운틴 3번 홀에서 4번 홀 가는 길.
그도 그럴 것이 대지가 워낙 넓으니 27홀을 만드는 데 굳이 무리한 토목공사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각 홀들은 독립성이 강해 골퍼들의 동선이 겹치는 일 없이 프라이빗하게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설령 볼이 잘못 맞아도 뒤 팀이나 앞 팀에 ‘포어’라고 외치는 일 없이 그냥 볼만 숲속으로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전체적으로 긴 코스는 아니지만 각 코스마다 크리크, 워터해저드, 벙커, 페어웨이 중간에 서 있는 소나무, 도그레그 홀 등으로 코스의 난이도를 조절해 놓았다. 특히 코스 형태에 따라 드로 티샷과 페이드 티샷을 구사해야 하는 홀이 있어 평소 샷 메이킹에 자신 있는 골퍼라면 아주 흥미진진한 코스임에 틀림없다. 구조고원호텔 노천 온천.
혹여 거리가 좀 짧다고 만만하게 봤다가는 홀컵 점령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특히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페어웨이 티샷 낙하지점으로 흐르게 만들어 드라이버를 잡을지, 아이언을 잡을지 선택해야 하는 전략적인 플레이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나마 그린이 크고 언듈레이션이 심하지 않아 경사만 잘 본다면 퍼팅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다만 높은 산 중턱에 있는 코스여서 산이 주는 큰 경사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린 상태는 베스트다.
또한 홀 간 이동하는 카트 길이 인상적인 곳이 많다. 특히 마운틴 4번 홀로 가는 길은 계곡 위에 놓인 구름다리를 건넌다. 양쪽으로 도열한 편백나무의 사열을 받으며 마치 공중에 떠서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길이다. 다리 아래로는 계곡에서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가 청아하고 거기다 지저귀는 새들까지.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싶다.
이 다리를 지날 때 카트 운전자는 동승자들을 위해 아주 천천히 가는 배려가 필요하다. 이때 동승자들은 세상의 모든 공기를 흡입하듯 숨소리가 크고 우렁차야 한다. 폐에 남은 회색 찌꺼기들을 깊은 숨으로 단번에 몰아내야 한다. 피톤치드 공장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그곳이다. 30여 m의 다리를 막 지나면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옹달샘이 나온다. 천하 옥류가 이곳일까. 한 모금 들이키니 그 물맛도 일품이다. 구조하치만 전통 거리.
각 코스를 좀 더 살피면 레이크 코스는 다소 플랫해서 여성 골퍼들에게 인기가 있다. 특히 3번 홀은 하쿠산 연봉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티잉 그라운드로 산을 향해 호쾌하게 티샷을 날릴 수 있는 곳이다. 리버 코스는 데일리구조CC를 대표하는 코스로 업다운이 있어 리드미컬하다. 계절마다 색깔이 다른 나무와 아름다운 풀과 꽃들로 둘러싸여 있다. 마운틴 코스는 챔피언 코스로 매우 남성적이다. 다채로운 레이아웃이 골퍼들의 도전 의욕을 급상승시키는 매력 있는 코스다.
일본 골프 전문 여행사 필드재팬의 오동성 대표는 “한국의 7월, 8월 혹서기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휴가 겸 골프투어를 계획하고 있는 고객이라면 가성비가 뛰어난 데일리구조CC가 최고다”라고 추천했다. “물론 시끌벅적하고 소위 럭셔리한 최신 시설을 찾는다면 여긴 아닙니다. 여긴 그야말로 가성비가 좋은 숨은 진주 같은 곳이죠. 가격 대비 이만한 천혜의 자연과 이만한 골프장은 찾기 힘들어요.”
또 현장에서 만난 아스펜투어의 김동원 대표 역시 이 의견에 동감했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 골프를 즐기는 한국인들은 여름 하면 홋카이도를 주로 찾는데 익히 알려진 대로 고비용이어서 선뜻 추천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골프장 시설이 데일리구조CC보다 떨어지는 데도 그렇다”며 “그에 비해 데일리구조CC는 한여름 기온이 홋카이도보다 낮아서 한번 다녀간 고객들의 재방문율이 높은 곳이다”라고 전했다.
특히 김 대표는 “구조고원호텔이 바로 골프장에 인접해 있고 일본 여행의 백미인 노천 온천, 일본 정통 요리인 가이세키 요리가 있는 레스토랑을 비롯해 편의시설이 있어 불편함 없이 머무를 수 있다는 것도 좋다”며 “아직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더구나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와 육질이 뛰어난 최고급 와규까지 음식에 대한 고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귀띔했다.
현재 데일리구조CC로 가는 나고야행 비행기는 매일 뜨고 있다. 2박 3일 일정으로 골프장을 찾는다면 아침과 저녁을 포함, 54홀 기본 플레이에 둘째 날 오후 송영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구조하치만 여행을 포기한다면 서비스로 9홀 추가도 가능하다. 구조고원호텔 저녁 요리.
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은 구조하치만은 일본 전통 거리를 볼 수 있고 사케를 직접 만드는 상점, 천연사이다를 시식할 수 있는 상점, 음식 모형을 가장 정교하게 만드는 상점, 그리고 요시다강 근처 코코치라는 상점에 들러 고로케와 수제 아이스크림까지 즐길 수 있다. 이게 좀 아쉽다면 시원한 일본 맥주까지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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