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사람의 마음이다. 유언 역시 상황에 따라 변경하거나 철회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어떤 과정이 적용될까.
유언을 철회하는 세 가지 방법
현대 유언법은 유언의 철회에 관해 크게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문서에 의한 철회와 행위에 의한 철회, 이혼에 의한 철회가 그것이다. 문서에 의한 철회와 행위에 의한 철회는 현재 미국의 모든 주에서 인정하고 있으며, 이혼에 의한 철회도 대부분의 주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구두에 의한 철회는 사기의 위험이 너무 커서 허용되지 않는다.

기존의 유언을 철회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철회 의사를 명시한 새로운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변호사에 의해 초안이 작성된 대부분의 유언장은 ‘이전의 유언을 철회한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존 유언의 특정 조항을 수정하기 위해 유언보충서가 주로 사용됐다. 유언보충서를 사용할 때에는 유언장과 유언보충서 사이에 예상치 못한 모순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유언보충서는 명시적으로 유언장을 언급해야 하고, 수정되는 조항을 특정해야 하며, 대체되거나 추가되는 새로운 조항을 규정하고, 유언장의 남은 조항들을 재확인해야 한다. 기존 유언장에 대한 명시적인 철회의 표현이 없는 경우에 유언보충서는 일반적으로 단지 새로운 조항이 유언장과 모순되는 한도 내에서만 유언을 철회하는 것으로 본다.

유언장 이후에 작성된 어떤 문서가 기존 유언장을 언급하고 있지 않을 경우 법원으로서는 그 문서를 두 번째 유언장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다. 유언자는 복수의 유언장을 통해 각각 다른 재산의 처리에 관해 규정함으로써 복수의 유언장이 동시에 효력을 가지게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연속적으로 작성된 두 번째 유언장은 유언보충서로서 기능한다.

즉, 그 문서가 기존 유언장에 대한 철회조항을 두고 있지 않고 단지 상속재산의 일부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면 그 문서는 유언보충서라고 본다.
복수의 유언장 중에 어떤 한 유언장을 철회하려는 유언자의 의사가 분명한 경우에만 하나의 유언장은 또 다른 유언장을 철회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조차 철회는 필요한 정도까지만 인정된다.

기존 유언장 철회를 위한 조건은
어떤 새로운 유언장이 기존 유언장을 철회하는지 여부에 관해 1990년 미국 ‘통일상속법(UPC)’은 유언자의 재산에 대한 완전한 처분을 하는지에 따라 다른 추정을 하고 있다. 즉, 새로운 유언장이 유언자의 재산을 완전히 처분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경우에는 기존 유언장을 전부 철회하고 그것을 대체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완전히 처분하지 않는 경우에는 새로운 유언장과 모순되는 한도 내에서만 기존 유언장을 철회하고 이를 보충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길버트 대 길버트 사건(Gilvert v. Gilvert)에서 피상속인인 프랭크 길버트(Frank Gilvert)는 1976년에 타자기로 8쪽짜리 유언장을 작성했고, 1978년에 명함의 뒷면과 급여명세서의 뒷면을 이용해 자필로 문서를 작성했다. 그 명함과 급여명세서는 봉인된 봉투 속에 함께 접혀진 채로 발견됐다. 명함의 뒷면에는 ‘12/8/78 짐(Jim)과 마거릿(Margaret)에게, 내 금고 안에 5000달러가 들어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버즈(Buzz)를 만나라’라고 기재돼 있고 프랭크의 서명이 있었다.

한편 급여명세서 뒷면에는 ‘짐과 마거릿에게 2000달러를 주고, 나머지는 다른 생존한 형제자매들에게 동등하게 나누어준다. 12/8/78’이라고 기재돼 있고, 역시 프랭크의 서명이 있었다. 짐은 프랭크의 형이었고, 마거릿은 짐의 아내(프랭크의 형수)였다. 프랭크가 1979년에 사망하자, 프랭크가 작성한 1976년 유언장과 1978년 자필문서에 대한 유언검인이 신청됐고, 그 신청은 허용됐다.

그러자 프랭크의 다른 형제자매들이 이 유언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면서 1978년 자필문서는 1976년 유언장을 대체하는 새로운 유언장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들은 “급여명세서 뒷면의 기재는 유언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유일한 자필문서다. 따라서 그것은 1976년 유언장을 완전히 철회하는 새로운 유언장이다. 그리고 명함 뒷면의 기재는 단순한 정보(자신의 금고에 5000달러가 있다는 정보)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해석에 따를 경우 짐은 2000달러(엄밀히 말하면 마거릿이 받게 될 1000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1000달러)를 제외하고는 프랭크의 다른 재산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이 사건에서 쟁점은 첫째, 명함과 급여명세서가 하나의 통일된 문서인지 아니면 각자 별개의 문서인지, 둘째, 그 문서가 유언보충서인지 아니면 기존 유언장을 철회하는 새로운 유언장인지다. 이에 대해 1983년 켄터키 항소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Court of Appeals of Kentucky(1983년)].

“우선, 명함과 급여명세서가 한 봉투 속에 함께 접혀진 채 발견된 것으로 볼 때, 이 두 장의 종이를 하나의 문서로 간주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유언자는 그 문서의 첫 번째 장에서 분배할 재산을 특정(금고 속 5000달러)하고 그 재산에 접근하는 방법을 설명(버즈를 만나라)한 후, 두 번째 장에서 그 재산의 분배 방식을 정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보면 이 두 장의 종이를 하나의 문서로 보는 것이 유언자의 의사에도 부합하고 유언장의 ‘통합(integration)’을 요구하는 법의 정신에도 부합한다.

또한 유언자가 공들여 작성한 1976년 유언장을 단지 급여명세서 뒷면에 자필로 기재한 한 줄의 문장으로 철회할 것을 의도했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그 자필문서에는 1976년 유언장에 대한 철회조항도 없다. 법원은 각 문서의 모든 조항에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일응 모순되는 듯한 조항들을 조화롭게 해석해야 한다.

두 장의 자필문서는 한 개의 유언장을 구성하고 있고 이것은 두 번째 유언장으로서 단지 프랭크의 금고 속에 있는 돈의 분배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해석해야만 모든 문서의 모든 조항들에 효력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1978년 자필문서는 오로지 프랭크의 금고에 있는 돈에 대해서만 규정한 것으로 1976년 유언장에 대한 유언보충서라고 보아야 한다.”

이 판결에 의해 결국 짐은 1976년 유언장에 따른 자신의 상속분과 1978년 유언보충서에 따른 1000달러(2000달러 중 아내 마거릿의 권리인 1000달러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