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세금 외에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 말이다. 프랭클린은 확실성의 지표로 죽음과 세금을 언급했지만, 이 둘은 서로 다른 영역에 있다. 즉,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죽음과 완전히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세금 역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죽음과 세금이 한꺼번에 발생하고, 둘 다 피하기 어려운 상황도 존재한다. 죽음으로 인해 상속세가 과세되는 경우다. 특히 한국에서 경영자가 사망할 경우 상속세를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죽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상속세는 왜 피할 수 없는 것일까.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고, 최대주주 할증률을 고려하면 실효세율은 65%에 달한다. 사실상 세계 최고세율로 상속세가 과세되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닥친 죽음과 세금, 둘 다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LG그룹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모양새다. 최근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이 별세하면서 구 회장의 상속인들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 규모와 그 납부 재원을 놓고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상속인들이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는 얼마나 될까.
상속세 총액을 추정하기 위해서는 구 회장의 전체 재산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구 회장의 다른 재산은 알 수 없으므로 여기서는 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LG 주식만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추정해보자. 상속개시일(사망일) 현재 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LG 주식은 1945만8169주(11.28%)다. 상속세 계산을 위해 주식의 가치를 평가하는 경우 상장주식은 사망일 전후 2개월의 종가를 평균해 계산하게 된다.
그리고 최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에 대해서는 20%(50% 초과해 보유하고 있는 경우 30%)를 추가로 할증해야 한다.
구 회장의 사망 이후 2개월이 지나지 않아 4개월 종가 평균가액이 얼마나 될 것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망일 전 2개월간의 종가 평균과 사망일 이후 현재까지의 종가 변동 상황을 고려해 사망일 전후 2개월 종가 평균을 약 8만2000원 정도로 가정해보자.
그리고 구 회장은 ㈜LG의 최대주주에 해당하지만 특수관계자 보유 지분을 포함한 지분 비율이 50%를 초과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주주 할증률은 20%를 적용하게 된다. 따라서 상속세 계산 목적상 ㈜LG의 주가는 9만8400원(8만2000원×120%)이 되고, 여기에 구 회장 보유 주식 수 1945만8169주를 곱하면 구 회장의 보유 주식 가치는 1조9000억 원을 넘는다.
상속재산이 30억 원이 넘을 경우 50%의 상속세율이 적용되므로 구 회장이 보유한 ㈜LG 주식에 대한 상속세만 해도 9573억 원을 넘는다. 구 회장의 지분을 한 명의 상속인이 상속받건 여러 명이 나누어 상속받건 상속세 부담액이 달라지지 않는다.
상속세를 피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재단출연 등을 통해 고려해볼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고려해야 하는 것도 많아 쉽지 않다. 연부연납을 통해 분납하더라도 매년 납부금액이 상당하기 때문에 자금조달 문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음은 이미 피하지 못했고, 앞으로 부담해야 할 세금 역시 피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역대 재벌들의 상속세 납부는
구 회장의 상속인들이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되는 약 1조 원대 상속세는 대한민국 역대 상속세 납부액 중 최대 규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 개청 이래 1000억 원 이상의 상속세를 납부한 경우는 고 신용호 교보그룹 명예회장·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설원량 대한전선 전 회장·이임룡 태광산업 전 회장·이운형 세아그룹 전 회장 등의 경우가 있다.
이들 중 현재까지 가장 많은 상속세를 납부한 사례는 고 신용호 명예회장의 경우다. 신 명예회장의 상속인들은 약 1830억 원 대의 상속세를 납부했는데, 이 중 약 1340억 원 상당액은 자진신고를 통해 납부했고, 나머지 약 500억 원가량은 국세청의 상속세 결정 과정을 통해 추가로 납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으로 많은 상속세를 납부한 것은 함태호 명예회장의 상속인들이다. 함 명예회장의 주식을 상속받은 상속인들은 상속재산 약 3000억 원에 대해 약 1500억 원 상당의 상속세를 납부했다. 상속세 전액을 성실하게 신고 납부했다는 점에서 착한 상속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이들 사례와 비교할 때 구본무 회장의 상속인들은 그보다 최소 5배, 많게는 10배에 가까운 상속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경우도 있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제조업체였던 쓰리세븐은 창업주 김형규 회장의 타계 후 유족들에게 약 150억 원의 상속세가 과세됐고, 유족들은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상속받은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1위 종자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농우바이오 역시 창업주 고희선 회장이 별세하면서 유족들은 상속세 마련을 위해 회사를 매각했고, 국내 최대 콘돔 제조업체인 유니더스 역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경영권을 이전했다. 밀폐용기로 유명한 락앤락의 김준일 회장은 상속세 부담 문제로 인해 보유 지분을 홍콩계 사모투자펀드에 매각했다. 또한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경영권 승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 과세제도 이대로 괜찮을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높다. 최대주주 할증률(30%)을 가산하면 65%에 달한다. 일본은 최대주주 할증률이 없고, 상속인을 기준으로 상속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실효세율 측면에서는 한국이 사실상 세계 최고세율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최고 상속세율 26.3%보다 2배 이상 높다.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많다. 캐나다, 호주, 스웨덴은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대체했다. 아시아 국가 중 홍콩과 싱가포르는 상속세가 없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 역시 상속세가 없다. 상속세 제도가 존재하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의 경우 다양한 상속세 감면제도의 적용으로 인해 실제 부담세율은 우리보다 훨씬 낮다.
주목할 것은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세계 최고이지만, 상속세가 우리나라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상속세 세수는 약
2조 원 정도로 국세청 총 세수 약 233조 원 중 0.85%에 불과하다. 높은 상속세율 및 상속세 제도에 대한 민감도에 비해 상속세가 국가 전체 세수에 기여하는 부분은 굉장히 낮다는 것이다.
과도한 세금 vs 도덕적 해이
현재와 같이 피상속인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과세하는 방식에서, 상속인이 받은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자본이득세를 과세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더라도 국가 세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속세 과세제도의 전환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재벌기업에 대한 인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재벌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고 있으며, 자녀에게 기업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상속세가 제대로 납부되지 않아 편법으로 승계가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현행 상속세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상속세 과세제도 중 불합리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헌소송에서 번번이 패소하고 있는 이유 역시 상속세 탈세 방지라는 공익적 목적이 재산권 보장이라는 사익적 목적과의 비교 형량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상속세 부담은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업가의 경영 의지를 약화시키며, 기업의 승계 과정에서 지분율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편법증여나 상속세 탈세 등이 발생하는 이유 역시 높은 상속세율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다.
부의 대물림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편견 자체도 문제다. 정의는 부의 대물림보다 부의 대물림에 대한 법 적용에서 찾아야 할 필요도 있다. 상속으로 인해 재산을 물려받은 자들 중 약 98%는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 거주자인 피상속인이 사망할 경우 최소 5억 원, 배우자가 생존해 있으면 10억 원까지는 상속공제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즉, 상속재산 10억 원 이하라면 상속세를 내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불합리한 경우도 있다. A씨는 10억 원의 상속재산을 배우자와 자녀 1명에게 각각 5억 원을 상속했다. 이 경우 A씨의 상속인들은 상속공제로 인해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반면,
B씨는 30억 원의 상속재산을 자녀 6명에게(배우자는 없음) 상속했다고 할 때, B씨의 자녀들은 1인당 약 1억4000만 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A씨의 자녀와 B씨의 자녀는 모두 각각 5억 원의 상속재산을 상속받았지만, B씨의 자녀들만 1인당 1억4000만 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동일한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B씨의 자녀들은 역차별을 받는 것이다. 부의 대물림은 재산의 정도에 관계없이 항상 일어나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한 과세제도가 정의로운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향후 30년간 상속 문제는 세계적인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인 자산정보 업체인 웰스엑스(Wealth-X)에 따르면, 향후 30년간 고액자산가의 재산 중 약 16조 달러(약 1경7000조 원)에 달하는 자산이 다음 세대로 이전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자산 중 역사상 가장 큰 규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70여 년간 이렇다 할 세계적인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고, 이제 이들이 다음 세대로 재산을 이전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향후 30년간 자산의 증여와 상속은 세계적인 관심사항이며, 우리나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재산이전의 전환기 속에서 상속세 또한 계속적으로 논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구본무 ㈜LG 회장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그 상속인들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상속세 납부 재원 마련에 따르는 부담이 많겠지만, 상속세를 제대로 납부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도 있다.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겠지만, 과도한 상속세 부담에서는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일러스트 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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