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5월 태양이 눈부시던 한낮, 서울 중구의 반얀트리 클럽앤스파 서울(이하 반얀트리 서울)에는 ‘드렁 드렁 덩 덩 덩’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묵직한 모터 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 호텔의 오토바이 동호회인 ‘반얀 라이더스’의 정예 멤버들이다. 바이크(bike)와 함께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중장년의 ‘사나이’들을 만났다.
반얀트리 서울 호텔 앞, 검은 세단 대신 모터사이클에서 내리는 한 남자. 옷차림도 여느 호텔 손님들과는 대비를 이룬다. 번쩍 번쩍이는 액세서리가 눈부신 가죽재킷, 찢어진 청바지에 선글라스…. 평소 말쑥한 의사가운을 걸치던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평소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면서 ‘관(棺) 하나 지나가네’ 할 정도로 냉소적이었어요. 그러다 옷을 사려고 해외 브랜드를 알아보니 바이커 패션이 많더라고요.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폭주족’, ‘배달’ 이런 시선으로만 오토바이를 바라봤는데, 서양은 이미 바이크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더군요.”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주준범 씨가 3년 전쯤 바이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다. 이내 자유와 개성으로 상징되는 바이크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바이크를 타면 시원해요. 사무실(진료실) 공간에 얽매여 있던 중년들에게는 진정한 해방 공간이라고 볼 수 있죠.”
‘반얀 라이더스’의 회장인 박래광(전기 조명업) 씨는 열정적인 바이크 예찬론자다. 바이크의 세계에 입문한 것은 2~3년 전에 불과하지만, 프로 바이크 선수로부터 바이크 타는 법에서 관리 요령까지 직접 배웠다. 50세가 넘어 ‘늦깎이’로 입문했지만, 제트스키 등 스포츠 마니아였던 덕에 바이크 활동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작은 아버지께서 체인 없는 바이크를 타고 지방에 다니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그때 바이크 로망이 생겼죠. 시간적·경제적 투자가 요구되지만, 그만큼 커다란 성취감과 삶의 활력을 주는 취미입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투어로 지난 3월 지리산 1박 2일을 꼽는다. 바이크를 타며 금수강산의 절경에 매료됐다고 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안개가 자욱하고, 그 경치가 너무 좋은 거예요. 놀랐어요. 자동차를 타고 가면 바깥 풍경과 차 안이 분리되는데, 바이크를 타면 길과 내가 동화가 돼 버려요. 그냥 내가 길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 느낌은 절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지요.”
◆ 바이크를 통해 교감 배운다
바이크 문화의 건전한 정착을 위해 박 회장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안전’이다. 그는 “바이크가 차보다 안전할 수 있다”며 “흔히 바이크를 탄다고 하면 ‘이혼도장 찍고 타라’는 경우가 많은데,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 안전하게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반얀 라이더스’는 2016년 봄에 결성한 이래 매월 회원들과 정기 투어를 떠나고, 번개 투어도 수시로 갖지만, 사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박 회장은 “범칙금 딱지를 끊은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안전한 오토바이 투어를 위해서는 동호회 활동이 힘이 된다. 장거리 투어일 경우 특히 그러하다. 혼자서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돌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고, 사고를 당할 경우 수습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주 씨는 “그동안 카메라, 오디오, 자동차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해 왔지만, 동호회 활동은 바이크가 유일하다”며 “바이크 동호회는 ‘군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엄청난 질서가 강조되지만 그만큼 안전하고 재미있게 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인상적인 투어로 지난해 가을 3·8선 휴게소 인근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당혹스런 날이었다. 소낙비에 오토바이가 젖는 것을 보던 한 일행이 “샤넬 백, 비 맞는 기분이다”라며 인근 가게로 가서 종이박스를 구해 왔다.
“바이크는 반짝반짝 광이 중요하거든요. 바이크를 하나하나 덮었어요. 그러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라면을 주문해서 끓여 먹고 남자들끼리 2~3시간을 보내는데 마치 대학 때 엠티(MT)를 온 기분이었어요. 50, 60대에도 그런 맛이 나더라고요.”
주 씨는 “안전하고, 밝은 분위기가 반얀 라이더스의 자랑이다”라고 말했다. 반얀 라이더스의 현재 회원은 12명. 인원이 많지 않지만, 그만큼 돈독한 정을 자랑한다. 부부 커플도 있다. 반얀트리 클럽의 회원이면 별다른 조건은 없다. 심지어 바이크 동호회이지만, 오토바이가 없어도 된다고. 탠덤이라고 불리는 뒷좌석에서의 라이딩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 연령층은 40~60대로, 세대와 직업에 상관없이 폭넓게 교류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바이크 경력 10년이 넘는 박연호(의류사업) 씨는 반얀 라이더스 활동을 통해 새삼 바이크의 매력에 빠졌다. 청년시절부터 일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다 보니, 바이크에 대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고. 그러다 바이크를 통해 세상과 교감하는 법에 새롭게 눈을 떴다.
“한번은 남미 대통령이 방한해서 함께 투어를 나간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 명소도 알려주고 같이 식사도 하고요. 바이크 동호회 활동을 통해 각기 다른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고, 연장자들과도 같이 투어를 다니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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