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부부간에 섹스를 하지 않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섹스리스는 지난 1년간 10회 미만, 또는 월 1회 미만의 섹스를 하는 것’을 말하지만 섹스리스가 진행될수록 그 기간은 점점 더 벌어지며 급기야는 몇 년 동안 같이 잠은 자되 섹스를 하지는 않는 무늬만 섹스파트너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7년 섹스리스가 35%가 넘었고, 일본 가족계획협회 조사에 따르면 일본은 47%가 넘는다고 하니 이웃나라의 일이지만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또 미국에서도 약 20년 전에 비해 섹스 횟수가 약 9회가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 1989~2014년 미국 종합사회조사(GSS) 데이터를 사용한 이 연구에 따르면 2010년대 전반 성인의 연간 섹스 횟수는 1990년대보다 평균 약 9회 줄었다는 것이다. 좀 더 생각해보면 보통 결혼 전 커플들이 결혼 후보다 열심히 섹스를 하니까 실제 부부들의 섹스는 더 줄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상담실을 찾아오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결혼 전 연애 시절에는 그렇게 자주 하고, 좋았던 섹스가 결혼하면서 오히려 급격히 횟수가 줄고 그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들 한다. 처음엔 그것이 두 사람 간에 심각한 거리를 가져올지 모르고, 여러 가지 이유로 섹스를 미루다 보니 섹스를 안 하는 부부가 됐고, 또 어쩌다 보니 그렇게 산 세월이 몇 년이란 것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동안 서로의 관계는 전처럼 밀접하지 않고 그저 한 공간을 공유하며 아이를 키우고 생활을 하는 무심한 동거인이 돼 있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는 표정이 쓸쓸해진다.
◆섹스 없는 사랑 표현 가능할까
누군가는 말한다. “섹스가 없으면 어때요? 우리 부부는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섹스가 없으면서도 대화는 많이 한다니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섹스는 그저 몸만의 만남이 아니다. 섹스는 단순히 감각이 자극되는 짜릿한 쾌감과 몇 번의 피스톤 운동, 그리고 간혹 따라오는 오르가슴이 전부가 아니라 서로의 몸을 바라보고, 키스하고, 핥고, 쓰다듬는 그런 섹스를 통해서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확인하고, 일체감을 느낀다.
섹스를 하고 나면 아주 많은 대화를 한 것보다 더 상대를 잘 아는 것 같고, 자신감이 생기며 우리는 한 팀이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그래서 섹스는 몸과 마음을 함께 소통하는 대화라는 것이다. 대화를 많이 한다 해도 몸으로 만난 느낌만큼 정확하고 찐득하게 상대를 알고 있는, 혹은 상대에게 이해받고 있는 느낌을 가질 수는 없다고 필자는 단언한다. 그것이 바로 섹스다.
몸과 마음은 나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때로 말로만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서로를 더 알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가! 섹스는 부부에게 육체적인 친밀감뿐 아니라 정서적인 공감을 위해서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부부를 진정한 한 팀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섹스리스의 원인은 다양하다. 요즘 부부들은 일단 직장과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즉각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TV를 보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다 잠들고 싶어 한다. 예전보다 애들은 더욱 혼자 스스로 자라지 않으며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자녀 양육에 자신이 없거나 반대로 자기 확신이 강해진 부모들은 아이들의 모든 행동을 간섭하고 과잉보호를 한다. 그래서 항상 부부간의 대화에 쏟을 에너지가 부족하다.
◆섹스, 그리고 부부간 행복도
또 30세 이상의 성인들에게서 우울증이 증가하고, 항우울제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즉 행복감의 감소를 겪고 있기 때문에 섹스를 할 여력이 안 생기고, 섹스를 하지 않으니까 행복감이 더욱 감소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섹스가 줄어들면 부부간의 행복도가 낮아지고, 만족도도 떨어진다.
또한 우리에게 이미 공기처럼 익숙해진 스마트폰의 중독성이 부부를 섹스에서 떼어 놓는다. 요즘의 부부들은 같이 식사를 하거나,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거나, 같이 공원을 산책하거나, 심지어 함께 침대에 누워 있더라도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만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와 관계없는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동안 정작 나와 깊은 관계인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그에게 설레던 감정도 사라지고, 종국에 섹스로 이끄는 ‘달아오르는’ 감정도 사라져 버린다.
특히 한쪽은 섹스를 원하는데 다른 한쪽이 거부할 경우 두 사람의 관계는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 결혼생활을 가장 악화시키는 것은 ‘무시’라는 정서인데, 특히 부부간 섹스를 한쪽이 거부하는 경우 상대는 자신의 존재를 송두리째 거부당했다는 좌절을 느끼게 된다. 거부당하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이때 대화나 섹스를 재개함으로써 상대가 위안을 받고 안심하지 못하면, 거부당한 상대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외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별거나 이혼이라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섹스리스 부부들은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이혼으로 갈 확률이 높다. 그렇지 않고 억지로 부부생활을 하더라도 자신들은 사랑보다는 우정 같은 사랑을 한다고 자위하지만 실제로는 ‘비참하게 어떤 벽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좌절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여러 연구에서 섹스의 빈도는 부부생활의 만족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정서적인 면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성욕을 부추기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섹스를 하고 나면 더 많이 분비되고, 테스토스테론이 많아지면 성욕이 생겨 또 섹스를 원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섹스를 멋지게 하고 나면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분비돼 행복해지고, 오르가슴을 느끼게 되면 애착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돼 상대에게 더없는 친밀감이 느껴진다.
부부간에는 정서적인 친밀감만큼 중요한 것이 육체적인 친밀감이며, 이 둘은 서로를 더욱 강하게 결합시키고 ‘행복’이라는 시너지를 일으키는 단짝이다. 섹스리스로 상대를 ‘외로움’이라는 벽에 가두지 말기를.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전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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