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그리고 인문학 ②  자아를 완성하는 연금술 ‘타로’
타로와 인문학은 어느 지점에서 조우할까. 연금술, 타로, 그리고 인생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문현선 인문연구모임 문이원 연구원·공작소 파수(破守) 스토리텔러 & 캐릭터 프로파일러, 레 필로소피(LP) 인문 프로그램 ‘타로와 별자리’ 인문학 강사

마이더스는 지혜롭고 경건한 프리기아의 왕이었다. 어느 날, 그는 술에 취해 쓰러진 노인을 부축해 왕궁으로 모신 뒤 정성껏 대접했다. 술과 광기와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스승을 융숭히 대접한 그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이더스 왕은 고민 끝에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능력’을 달라고 빌었다.

신의 약속은 어김이 없었다. 그는 ‘무엇이든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가지게 됐고, 프리기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일컬어졌다. 그래서 마이더스 왕은 행복했을까? 이 오래된 이야기의 끝에서, 마이더스 왕은 결국 이 저주받을 능력을 없애달라고 신에게 애원한다. 그 손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마실 물과 먹을 빵, 사람까지도.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할 수도 없는 신세가 된 그는 통곡으로 신의 자비를 구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긴 신은 그에게서 황금을 만드는 능력을 빼앗고 평범한 삶을 돌려주었다.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 마이더스 왕의 신화다.

연금술, 황금을 만드는 마법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인 오늘날 ‘마이더스의 손(midas touch)’이라는 말은 끊임없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성공의 재능을 가리킨다. 신화 속의 마이더스는 무엇이든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포기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황금을 만들어내는 그 능력을 소망한다.

연금술(alchemy)은 바로 이 인간적인 욕망에서 피어난 기술과 학문의 체계다. 연금술은 값싼 금속을 값비싼 금속인 황금으로 만드는 기술, 다시 말해, 가치가 낮은 존재를 가치가 높은 존재로 바꿔주는 마법이었다. 연금술사들은 고대의 지식들 속에서 모든 물질의 기초가 되는
4원소(불, 흙, 공기, 물)를 기술적으로 잘 조합함으로써 완벽한 물질인 ‘제5원소’를 제련해내는 방법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 완벽한 물질은 ‘엘릭시르(elixir)’ 또는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나 ‘마법사의 돌(sorcerer’s stone)’로도 불린다.

‘엘릭시르=현자의 돌=마법사의 돌’은 비천한 납을 고귀한 황금으로 바꾸는 영험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연금술사들은 이 완벽하게 정화된 물질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 실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날 연금술은 허무맹랑한 미신으로 치부되지만 근대 화학은 황금을 열망하는 연금술사들의 덧없는 노력과 부질없는 실험들에 빚진 바 크다. 수많은 연금술사들의 실패가 역설적으로 물질세계의 모든 과정은 필연적인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기계론적 자연관의 확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황금은 값이 비쌀 뿐 아니라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며 공기 중에서도 산화되지 않는 가장 ‘완전한 물질’로 간주된다. 따라서 성공적인 연금술에 의해 획득된 ‘엘릭시르=현자의 돌’은 비금속(卑金屬)을 귀금속(貴金屬)으로 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영혼과 정신과 육체를 치유해 완전하게 만드는 물질로 간주됐다. 연금술이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리와 연결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연금술의 신화 상징과 모던 타로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모던 타로의 원형으로 꼽히는 것은 라이더-웨이트 타로(Rider-Waite Tarot)다. 황금여명회(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의 일원이었던 웨이트(A. E. Waite)가 타로와 관련된 신비주의 지식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1909년 런던의 라이더사에서 발매됐기 때문에 라이더-웨이트 타로라고 불린다.

황금여명회라는 이름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웨이트는 황금과 관련한 헤르메스적 지식 체계, 즉 연금술을 신봉하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타로 카드의 이미지에서 연금술 신화의 상징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웨이트와 같은 20세기의 연금술사들은 더 이상 수은과 유황을 섞는 무모한 실험을 거듭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연금술적 원리와 그 초월적인 결과들을 굳게 믿었지만, 그들의 관심은 오히려 심리적 문제들, 인격의 통합에 관한 문제들과 더욱 긴밀히 연관됐다.

타로 카드는 22장의 메이저 아르카나와 56장의 마이너 아르카나로 구성된다. 메이저 아르카나는 다시 심리적인 여정의 주인공이 되는 0번 카드와 1번부터 22번에 이르는 나머지 21장의 카드로 나뉘는데, 21장의 카드는 각각 7장씩 현실적인 차원(practical plane), 정신적인 차원(mental plane), 영적인 차원(spiritual plane)의 여정과 깊숙이 연관된다. 마이너 아르카나는 완즈(wands), 펜타클(pentacle), 소드(sword), 컵(cup)이라는 4개의 수츠(suits)로 분류되는데, 이는 각각 불, 흙, 공기, 물이라는 4개 원소에 해당되는 것이다.

각각의 수츠는 1부터 10에 이르는 숫자 카드와 시종, 기사, 여왕, 왕 등 인물이 그려진 4장의 궁정 카드로 구성돼 있다. 연금술의 화학적 실험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특정한 조합을 통해 엘릭시르를 추구했던 것처럼, 타로 카드의 상징과 독해에서도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균형은 마찬가지로 중시된다. 한 개인이 타로의 조합을 통해 세계의 기초가 되는 남성적인 원소와 여성적인 원소들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은 일종의 심리적 연금술 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융의 심리학과 연금술 신화
분석심리학의 기초자인 칼 융(C. G. Jung)은 인간의 정신을 서로 다른 수많은 요소들의 결합체로 간주했다. 이 요소들은 의식과 무의식, 페르소나와 그림자, 아니무스·아니마와 원형과 같은 대립항들로 구성되며, 이 대립적인 요소들은 끊임없이 분리와 통합의 상호작용을 되풀이한다.

융에 의하면 인격의 완성은 이 균열적인 정신 요소들을 통일된 전체로서 형성해 가는 과정이다. 융은 이것을 ‘개성화’라고 불렀다. 인간은 개성화 과정을 통해 정신의 파편들을 추스르고 본연의 자아를 회복하며, 통합에 실패하는 경우 지나친 균열로 인해 정신질환을 앓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개성화라는 말은 심리학적으로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즉 하나의 선별된 별개로 나눌 수 없는 단일한 것, 다시 말해 전체성을 이룬 존재를 형성시켜 가는 과정”인 것이다.

개성화가 세계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원소들,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의 대립항들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궁극적인 통합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 과정은 거의 전적으로 연금술의 작업 과정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융은 “나는 분석심리학이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연금술과 일치한다는 것을 곧바로 알게 됐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바로 나의 경험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세계는 나의 세계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에드워드 에딘저(E. F. Edinger)는 융의 이러한 관점을 계승해 심리 치료의 과정을 연소(calcinatio)-용해(solutio)-응고(coagulatio)-상승(sublimatio)-죽음(mortificatio)-분리(separatio)-합일(coniunctio)에 이르는 7단계의 연금술 작업으로 구성해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이 각각의 단계는 메이저 아르카나의 각 차원에 적용 가능하다. 개성화 과정의 주체로서 개인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길을 떠나는 여행자와도 같다. 이러한 자아는 ‘바보’라 불리는 메이저 아르카나의 0번 카드를 닮아 있다.

타로는 어떻게 인문학과
연관되는가?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사람들은 왜 타로(tarot)에 매혹될까? 이유는 단순하다. 잘 살고 싶어서, ‘지금, 여기’의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나아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타로를 보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타로에게 물어보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직장을 옮겨도 될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사를 해도 좋을까, 금전적인 여유가 생길까,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을까, 가족들은 모두 무사할까 등. 질문들은 크게 재물운, 건강운, 애정운이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로 압축된다. 이 카테고리들은 결국 ‘지금, 여기’의 ‘나’가 ‘보다 더 잘’ 지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삶의 조건들이다.

인문학(humanities)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학문 영역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목표는 ‘보다 더 인간다운, 가치 있는 삶’이다. 타로와 인문학은 이토록 절묘하게 조우한다. 문제는 ‘보다 더 인간다운,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마이더스 왕의 신화는 이 문제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준다. 타로 카드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저주받은 왕도 있고, 매일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도 있다.

box-4원소설과 연금술
모든 물질이 불, 흙, 공기, 물이라는 4가지 기본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4원소설은 고대 그리스의 엠페도클레스에 의해 주창됐다. 이 학설은 이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지를 받으며 발전해 유럽에서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확립되기 전까지 물질적 세계관의 기본 전제로 간주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의 원소가 뜨겁고 건조함(불), 건조하고 차가움(흙), 뜨겁고 축축함(공기), 축축하고 차가움(물)이라는 속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따라서 각각의 물질은 가진 속성 가운데 하나만 바뀌어도 다른 물질로의 변환이 가능해진다. 연금술의 여러 가설들은 이와 같은 4원소설에 기초해 모든 물질을 불과 공기에 속하는 양성적인 것과 물과 흙에 속하는 음성적인 것으로 나누고, 여러 가지 물리화학적 조작을 통해 이들 물질을 통합하거나 분리함으로써 변형시키는 방식들을 이론화한 것이다.

특히 연금술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유황과 수은은 양성적인 물질의 정수와 음성적인 물질의 정수로 일컬어지며, 유황의 불을 통해 순수하게 정화된 수은은 ‘엘릭시르’라 불렸으며, 이 물질을 통해 비금속은 귀금속으로 변환될 수 있다고 믿어졌다.

box2-타로 카드 읽기
메이저 아르카나의 1번 카드는 ‘마법사(The Magician)’이라 불린다. 마법사는 다름 아닌 연금술사이며, 물질의 기초가 되는 4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머리 위에는 무한대의 상징이 있고, 그의 탁자 위에는 4원소를 상징하는 완즈, 컵, 소드, 펜타클(앞에서부터 순서대로)이 놓여 있다. 마법사는 또한 연금술사들의 신인 헤르메스를 지시하기도 한다.

헤르메스는 신들의 사자이고, 지혜와 슬기의 신이자 거짓말과 사기의 신이고, 장사꾼들의 신이자 도둑들의 신이기도 하다. 그는 길을 가르쳐주지만 가기 쉬운 길을 가르쳐주는 신은 아니다. 이 신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언제나 옳은 답만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마법사 카드는 이 신이 지니고 있는 다면적인 면모를 동시에 드러내 보여준다. 일반적인 타로 해설서에서 이 카드는 기술, 사교, 충고, 병, 고통, 상실, 재난, 자신감, 의지 등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