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보충서(codicil)는 기존의 유언을 수정하거나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문서로, 유언자가 기존의 유언을 추후 보완 내지 재확인하려는 의도에서 유언보충서를 작성한다. 유언장은 가장 최근의 유언보충서가 작성된 때와 동일한 시기에 재작성된 것처럼 취급된다. ‘유언보충서에 의한 추완(追完)’ 이론은 추정적 의사이론(doctrine of Presumed Intent)의 일종이다. 따라서 이 이론을 적용하면 유언자의 유언 계획이 무산될 경우에는 유언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기 때문에 이 이론을 적용할 수 없다.
관습법(common law)에서는 유언장이 작성될 당시에 유언자가 소유하고 있던 토지에 대해서만 유언장의 집행이 가능했다. 그리하여 유언자가 유언장을 작성한 후 새로운 토지를 취득하고 난 뒤 유언장을 재작성하지 않은 경우에는, 새로이 취득한 토지는 유언이 아닌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상속됐다.
이처럼 유언장을 작성한 후 취득한 토지에 대한 유증을 허용하지 않는 관습법에 대응해 법원이 개발한 이론이 바로 ‘유언보충서에 의한 추완’ 이론이다. 이 이론 덕분에 유언보충서가 작성될 당시 유언자가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유언보충서에 의해 수정된 유언장으로 처분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유언 보충은 의미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유언장이 작성된 후 새롭게 취득한 재산을 유언에 따라 처분하기 위해 이 이론을 사용해야 할 필요성은 없어졌다. 현대의 유언법령들은 ‘유언자가 사망할 당시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재산에 대해 유언을 집행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1990년 UPC 규정). 그렇지만 이 이론을 통해 유언과 관련한 여러 흠결들이 치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이론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해관계가 있는 증인이다. 유언자가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A와 B가 증인이 됐다. 그런데 그 유언의 내용이 전 재산을 A에게 남긴다는 것이었다면, A에 대한 유증은 무효가 된다. 그러나 1년 후 유언자가 유언장의 관련 없는 조항을 수정하는 유언보충서를 작성했고 그것이 두 사람의 이해관계 없는 증인에 의해 인증됐다면, 위 이론에 따라 A에 대한 유증은 유효할 수 있다.
둘째는 상속인이 누락된 경우다. 유언자가 전 재산을 유일한 자식인 C에게 남긴다는 내용의 유언을 한 후 1년 뒤에 두 번째 자식인 D가 태어났다. 그런데 그 후 유언자가 유언장의 관련 없는 조항을 수정하는 유언보충서를 작성한 경우, 위 이론에 따라 유언장이 D의 출생 이후에 재작성된 것으로 간주되고, D는 더 이상 누락된 상속인으로서 상속재산의 절반을 받을 자격이 없게 된다.
유언보충서는 유언장과 동일한 형식으로 작성돼야 한다. 따라서 유언보충서가 유언장과 같이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인증유언 방식으로 작성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자필유언을 인정하는 법역에서는 자필유언 방식에 의한 유언보충서의 효력도 인정한다. 예컨대 쿠랄트의 유산(Estate of Kuralt) 사건에서 피상속인인 찰스 쿠랄트(Charles Kuralt)는 엘리자베스 샤논(Elizabeth Shannon)이라는 여성과 30년간 내연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1989년에 몬태나주의 모든 재산(특히 3필지의 토지)을 엘리자베스에게 남긴다는 취지의 자필유언장을 작성했다. 그 후 1994년에 그는 인증유언장을 작성했는데, 여기에는 몬태나의 재산이나 엘리자베스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그 후 1997년에 그는 몬태나의 토지를 엘리자베스에게 이전시킬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재산 이전의 외형은 매매로 위장했으나 그 매수 자금은 그가 엘리자베스에게 교부했다. 즉 그는 우선 몬태나의 토지 중 첫 번째 필지 구입 자금을 엘리자베스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가 또 다른 필지 구입 자금을 엘리자베스에게 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병이 들었다.
그는 1997년에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은 “몬태나의 나머지 토지를 그녀가 상속받도록 보장하기 위해 그의 요청에 따라 변호사가 병원으로 그를 찾아올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1997년에 작성된 이 편지는 1994년 유언장에 대한 자필유언보충서로서 유효하다”고 주장했고, 찰스의 아내 페티(Petie)는 “그 편지는 단순히 유언장을 작성하겠다는 장래의 의사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유언보충서는 ‘이전의 유언(previous will)’을 언급해야 하는데 이 편지에는 1994년 유언장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2000년 몬태나주 대법원(Supreme Court of Montana)은 피상속인의 2회에 걸친 재산 이전 시도를 고려해 “편지를 작성한 피상속인의 의사는 장래의 의사가 아닌 몬태나에 있는 재산을 이전하려는 현재의 유언 의사이며, 1997년에 작성된 편지는 자필유언으로서의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은 상속재산 전체에 대한 유증이 아닌 특정 재산에 대한 유증이기 때문에 유언보충서라고 봐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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