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퍼즐
RETIREMENT ● Second Life Essay
[한경 머니 = 우재룡 한국은퇴연구소장 ]

나이가 들수록 매달 꼬박 꼬박 나오는 연금으로 노후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연금 상품은 복잡하며 수수료도 비싸다. 그래서 선뜻 가입하기 어렵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은퇴가 다가오고, 그제야 본격적으로 연금을 마련해보려고 하는데 이미 시간은 늦었다. 왜 우리는 노후 준비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늦게 시작하는 것일까?

경제학자들은 이런 심리 상태를 연금퍼즐(annuity puzzle)이라고 한다. 은퇴 후 연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동의는 하지만 가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수록 금융상품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을 직접 관리하기 어려워진다. 점점 판단력이 떨어지며 거동도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은퇴자들의 자산을 맡아서 관리해주는 법률이나 금융 서비스가 잘 발달돼 있다. 자산만 많다면 수백 년을 맡겨도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서비스가 아직 없으며 신뢰감도 떨어지므로 은퇴자들이 직접 관리해야 한다. 즉 다른 선진국보다 은퇴자들의 자산관리 부담이 크다.

노후 생활을 잘하려면 연금제도나 상품을 잘 이해해야 한다. 첫째로 평생소득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평생소득이란 은퇴 후에도 마치 월급처럼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현금 수입을 말한다. 주로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과 같은 연금을 지칭한다. 하지만 그밖에도 주식과 펀드의 배당 수입, 채권의 이자, 신탁 상품에서 나오는 배당, 건물의 임대료, 지적재산권에 대한 로열티 등이 있다. 조금 더 넓게 보면 정부의 고령자에 대한 기초노령연금과 같은 보조금, 자녀로부터 받는 생활비 등도 포함된다. 평생소득은 가장 손쉽게 연금을 이용해서 마련하는 경향이 강하다.

둘째는 얼마 정도의 평생소득이면 노후 생활이 가능하겠는지를 생각해보자.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은퇴 후에 직장 다닐 때 월급의 70~80%를 생활비로 준비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월 500만 원을 버는 직장인이 은퇴 후에는 매월 350만~4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평생소득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노후 생활 연구단체들이 국민들에게 설문을 해보면 대략 200만~300만 원의 평생소득이면 부부가 은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자신의 생활수준, 건강 상태, 거주지 등을 감안해 적정한 평생소득 금액을 미리 산출해봐야 한다.

셋째는 평생소득의 원천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가장 기본적인 평생소득원으로는 연금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연금으로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과 같은 특수직역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저축, 개인연금보험, 즉시연금, 주택연금 등이 있다. 하지만 연금 외에도 평생소득을 만들어내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주식으로부터 배당금을 장기간 수령하는 방법이다. 또한 장기 채권을 보유하고 그 이자 수입을 평생소득으로 활용해도 된다. 다음으로는 부동산 임대소득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오피스텔, 상가, 주거용 부동산, 업무용 건물과 같은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소득도 평생소득으로 간주될 수 있다. 매월 생활비를 지급하는 월지급식 금융상품을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넷째는 평생소득원의 위험을 잘 파악해야 한다. 모든 평생소득원에는 위험이 존재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2044년부터 수지적자가 발생해 2060년에 기금이 완전히 소진되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여전히 적자가 지속되고 있으며, 사학연금은 2046년에는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고령화 시대에는 각종 사회보험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한편 개인과 회사가 운영하는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에도 위험이 존재한다. 개인연금 가입률은 다소 나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20~30%의 낮은 가입률을 보이고 있어서 노후 자금이라는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어떻게 평생소득을 마련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평생소득을 마련할 것인가 하는 대비책을 세워보자. 첫째 방법은 개인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법으로 가입이 의무화돼 있다. 자신이 스스로 대비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은 개인연금이다. 개인연금은 다양한 상품이 존재하는데, 세액공제라는 혜택을 주는 개인연금저축이 가장 중요하다. 개인연금저축은 연간 400만 원까지 가입할 수 있으며, 연말정산 시 소득수준에 따라 13.2%나 16.5%의 세금을 공제해준다. 가입하기만 해도 이 정도의 수익률을 확보하는 상품이니 국내 금융상품 중 최고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연금 상품이다. 개인연금에는 변액연금, 변액유니버설연금과 같은 복잡하고 수수료가 비싼 상품도 존재한다. 개인연금은 다소 복잡한 제도이지만, 노후 자금을 마련한다고 할 때 세액공제를 받는 개인연금저축에 가입하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둘째는 연금 자산을 운용 시 저축보다는 투자를 해야 한다. 현재 퇴직연금은 90% 이상의 자금이 원리금을 보장하는 예금이나 채권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수익률이 1.6%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개인연금저축 역시 채권금리형 상품을 취급하는 보험 상품들이 전체 판매액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어서 낮은 수익률을 면치 못하고 있다. 펀드로 주식에 투자하는 상품인 개인연금저축 펀드형 상품은 전체 판매액의 10%도 되지 못할 정도로 적다. 연금이 활성화된 선진국에서는 국내외 주식 위주로 적극적으로 투자되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국내 금리가 1%대로 낮은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국내의 투자 자산에 분산투자를 해야 높은 수익률로 평생소득을 늘릴 수 있다.

셋째는 연금을 수령하는 방법도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을 타는 방법은 다양하다. 연금 수령 기간을 보면 확정기간형(5년, 10년, 20년 등)과 종신형이 있다. 부부 중 누가 탈 것인가를 보면 연금가입자만 타는 개인형, 연금가입자 사망 후에 배우자에게 계속 지급되는 부부형이 있다. 지급하는 금액의 크기를 보면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는 정액형, 처음에는 많이 주다가 점차 감소하는 감소형, 반대로 점차 증가하는 증가형 등이 있다. 국민연금의 노령 연금 시점은 계속 연기돼 앞으로는 만 65세부터 수령할 있다. 국민·퇴직·개인연금을 섞어서 은퇴 후 나이대별로 얼마의 연금 수입을 탈 것인가를 미리 시뮬레이션 해봐야 한다.

중장년이 되면 복잡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특히 금융, 연금, 대비책 이런 개념들이 들어가면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해 버린다. 자신의 은퇴 후 평생소득에 대해 지식을 쌓고 구체적으로 설계해봐야 한다. 연금을 무작정 더 가입하자는 말이 아니라 있는 연금을 제대로 따져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사람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궁금해진다.

우재룡 소장은…
국내 은퇴 설계 대중화에 기여한 은퇴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은퇴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수천 명의 은퇴자를 컨설팅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무설계 무작정 따라하기>, <긴 인생 당당한 노후 펀드투자와 동행하라>, <오늘부터 준비하는 행복한 100년 플랜>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