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계를 던져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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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바캉스 시즌을 앞두고 체중계와 전투 중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지난해에 출산을 한 A씨는 몸이 불어 속상한 상황, 여름을 맞아 멋진 비키니 몸매를 자랑하고 싶어 다이어트에 돌입했는데 아침마다 올라가는 체중계에 큰 변화가 없어 울상이다.

“뱃살을 뺄 수 있는 확실한 치료법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면, 먼저 나오는 답변은 운동, 약물, 수술 등이다. 그러다 누군가 속삭이듯 답한다. “덜 먹는 거 아닐까.” 맞다. 비만의 결정적인 치료법은 매우 단순하다. 덜 먹으면 된다. 그러나 의학적 측면에서 비만의 결정적 치료법은 아직 없다고 이야기한다. 덜 먹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 ‘먹방(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이 대세다. 방송국이 주방으로 변신한 수준이다. 우리는 왜 먹방에 빠져드는 걸까. 우리 뇌 안에는 쾌락 시스템이 존재한다. 쾌락 하면 왠지 퇴폐적 느낌이 들지만, 사실 쾌락 시스템은 인간 생존에 있어 중요한 생존 아이템에 대해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됐다. 먼저 힘에 대한 욕구, 권력욕이다. 힘이 있어야 내 조직과 내 가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극이 스테디셀러인 이유다.

그다음이 사랑에 대한 욕구다. 사랑을 해야 가족을 만들 수 있다. 아이 키우는 프로그램이 방송을 가득 채운 이유다. 마지막으로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먹는 쾌감이다.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먹지 않고는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사랑이고 권력이고 아무 의미가 없다. 먹방은, 내용은 가볍게 보이나 사실은 내 쾌감의 가장 강력한 요소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어트가 쉽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욕은 쾌락을 동반한 강력한 생존 욕구이기 때문이다.

살이 찌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를 섭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필요 이상 먹고 있을까. 심리적 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상당 부분은 인생의 스트레스를 위로하고자 먹는 심리적 허기에 의한 것이다. 부부 싸움 후나 직장에서 상사에게 깨진 후 먹고픈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먹는 쾌락을 삶을 위로하는 데 사용하다 보니, 몸이 필요한 신체적 허기 이상 먹게 되고, 그 남는 에너지가 모두 온몸의 살로 가고 있는 셈이다.

심리적 허기를 줄이는 것에서 다이어트는 시작돼야 하는데 심리적 허기의 특효약은 ‘자유’다. 먹는 욕망을 통제하는 다이어트는 자유를 억압하기에 심리적 허기를 증폭시킨다. 체중계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 이유다. 체중계에 오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만큼 더 먹고 싶어진다. 우선 ‘체중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삶을 더 건강하게 즐기겠다’는 목표로 바꾸어야 한다. 똑같은 운동도 살을 빼려고 하면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운동의 목적은 살을 빼려는 것이 아닌 ‘내 몸의 움직임을 느끼고 자연과 같이 호흡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럴 때 우리 뇌는 이완되면서 자유라는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돼 있다. 먹는 것이 생존의 쾌감이라면, 자유는 생존을 통해 얻고자 하는 삶의 본질적 기쁨이다.

바캉스의 어원이 ‘자유’라 한다. 바캉스를 위해 굶지 말자. 뱃살이 있건 없건, 바캉스 기간 멋진 자연 속에서 내 마음과 몸의 자유로움을 충분히 즐길 때, 슬며시 심리적 허기도 줄어들게 된다.

다이어트 솔루션으로 ‘의식하며 천천히 식사하기’에 대해 소개한다. 바쁜 생활을 하다 보면 ‘먹기 위해 먹는’ 식사 시간을 갖기 쉽다. 미팅과 다음 미팅 시간에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든지, 점심시간에 해야 할 일이 남아 컴퓨터로 일을 하면서 식사를 한다든지 말이다. 이런 경우 먹긴 먹지만 내가 먹고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내 마음은 다른 일에 집중하게 된다. 이러다 보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긴장감을 먹는 셈이 된다.

이런 식사는 충분히 씹지 않게 해 소화도 어렵게 하고 포만감을 인식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먹게 해서 필요한 이상의 칼로리를 섭취하게 만들기 쉽다. 그러다 보면 체중도 증가하게 된다. 또한 소화라는 과정도 에너지를 쓰기에 과식은 오히려 일할 때 쓸 삶의 에너지를 축나게 한다. 배부른데 일 잘된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식하며 천천히 식사하기

의식하면서 식사하기(conscious eating)는 말 그대로 내 입 속에 맴도는 밥알의 느낌, 음식의 향, 그리고 색깔 등을 음미하며 식사하는 것이다. 음식 전문가도 아닌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싶겠지만 이 단순한 식사 습관이 잠시나마 바쁜 일상에서 나를 분리해 나를 느끼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마음에 충전을 가져온다. 충전된 마음은 심리적 허기가 줄기에 과식도 막아줄 수 있고 단것에 대한 탐닉도 줄여준다.

먼저 조용히 식사할 곳을 찾아본다. 자연과 가까운 곳이 가능하다면 금상첨화다. 일과 관련된 것을 주변에 두지 않는다. 음식은 건강에 좋은 것으로 선택해본다. 그리고 일은 잠시 멀리하고 내면의 감각을 일깨워본다. 먹기 전에 음식의 향과 색깔 등을 느껴본다.

그리고 세 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을 하며 이완을 한 후 식사를 시작한다. 천천히 잘 씹으며 그 느낌에 집중한다. 입안에 음식이 다 넘어가기 전에 또 음식을 넣지 않고 충분히 느껴본다. 느린 식사를 하는 것이다.

언제 그러고 있냐고 답답한 마음이 든다면, 그것이 내 뇌가 너무 전투적으로 켜져 있다는 증거다. 하루에 잠깐이라도 이런 이완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오히려 강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는 역설적 전략이다. 그리고 과도한 심리적 허기에서도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