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위한 일자리 만드는 것이 혁신이죠”
Interview
김정열 리드릭 대표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2014년부터 3년 연속 서울시 우수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된 인쇄 및 복사용지 업체 리드릭(Ridrik). 이곳의 채용 우선순위는 ‘얼마나 일 잘하는 직원이냐’에 있지 않다. 얼마나 일반 기업에 고용되기 어려운 사회취약계층이냐가 고려 대상이다. 진정으로 ‘이윤보다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위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기업의 성공 모델을 실험 중이다.

“직접발송(Direct Mail, DM) 사업 분야의 연 매출이 1600만 원 수준인데, 직원 월급은 그 20배 규모죠. 그런데 지난달 직원을 2명 더 뽑았습니다. 하하.”

인쇄 및 복사용지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 ‘리드릭’의 김정열(56) 대표가 생각하는 ‘혁신’은 일반적인 정의와 사뭇 다르다.

“일반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전 공정을 기계화하고 24시간 돌려 생산량을 확대할까 고민한다면, 리드릭은 거꾸로 기계공정을 줄이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작업을 연구합니다.”

김 대표는 이러한 일환으로 최근 배송팀을 2인(장애인, 비장애인) 1조에서 3인 1조로 바꿨다. “비용은 더 들더라도 직원의 수고를 줄여 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근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리드릭의 현재 직원 수는 80명. 이 가운데 청각·지체·지적장애를 가진 직원이 55명이며, 특히 중증의 지적장애인이 42명이다. 그는 “앞으로도 고용의 여력이 생기면 일반 기업에 취업이 어려운 중증의 지적장애인을 우선 고용할 것이다”라고 했다.

“느리지만 여럿이 함께 멀리 간다”
김 대표는 장애인 사회에서 이름난 활동가다.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하다. 지난 1987년부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참여한 창립 멤버로 연구소장까지 역임했다. 지난 2005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사무총장을 지낸 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내 사업단으로 출발한 리드릭으로 복귀했다. 2010년 리드릭이 빚으로 존폐의 기로에 섰던 때였다.

“리드릭이 원자재 값을 갚지 못하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차압이 들어왔죠. 자칫하면 연구소까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대표직을 수락했습니다.”

소방수로 나선 김 대표는 국장, 이사, 본부장, 원장 등의 경영진을 없앴다. 지출 등의 원칙도 새롭게 정비했다. 기획, 직업자활, 디자인 등 6명의 팀장을 두고 중요 안건은 회의를 통해 결정토록 했다. 임금도 30% 삭감했다. 이때 50명의 직원 중 4명이 떠났다.

각종 비용은 줄였지만, 복사용지의 원자재는 오히려 고급화했다. 기존 수입 제품에서 국내 대기업 제품으로 바꾼 것. 위기를 기회로 바꾼 승부수였다.

“당시 공장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밖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까요. 생산 단가가 높아지더라도, 판매 확대가 우선이다 싶어 국내산 원자재로 바꿨습니다.”

종전 연 매출 40억 원 수준이던 리드릭의 매출은 2011년 60억 원으로 단박에 뛰어올랐다.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운이 좋았죠. 직원들과 워크숍을 가서 상의했습니다. 수익으로 빚부터 서둘러 상환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뭡니까. 중증 지적장애인 20명을 더 고용했습니다.”
리드릭은 더디 성장하더라도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을 이정표로 한다. 당시의 빚은 지난해 전부 상환했다.
“약자를 위한 일자리 만드는 것이 혁신이죠”
차별·야간 근무·정년 없는 ‘3無 직장’
리드릭은 중증 장애인과 전문가가 함께하는 생산 공동체다. “수익은 기술자들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일반 기업처럼 투자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 생산 공동체 안에서 재분배되는 구조다”라고 설명한다. 노동과 고용을 통해 희망의 시스템을 만드는 데 방점을 둔다. 팀장 회의를 통해 예산과 실적 등이 투명하게 공유되고, 성과 평가 및 배분 기준도 만들어진다.

“중증 지적장애인의 생산능력을 일반 고용시장에서처럼 평가하기는 어려워요. 근속연수에 가중치를 두죠. 근속연수와 근무 태도 등을 고려해 지적장애인도 주임, 대리 등으로 승진하고 월급도 올려줍니다.”

김 대표는 “리드릭은 지적장애인들이 선호하는 직장이다”라고 자부심을 내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여느 직장에선 며칠, 몇 달을 버티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이 장기 근속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미 7년 넘게 근무한 직원도 있다. “딴 곳에 갔다가도 금방 다시 돌아와요. 신체는 멀쩡하니까 ‘왜 힘든 일 못하느냐’고 하루 종일 일만 시키니까요.”

김 대표는 “지적장애인들은 스스로 심신의 건강을 관리하기 어려워 이에 맞는 프로그램 진행과 장애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안정적인 근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리드릭 직원 중에는 직업재활 교사도 3명이나 있다.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미술치료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여가활동 등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급여도 이곳 지적장애인의 경우 평균 80만 원에 육박한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대개 월급이 20만 원을 밑도는 현실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리드릭은 비장애인에게도 매력적인 직장의 요소가 적지 않다. 우선 수익 창출이 지상 과제인 사업장처럼 스트레스가 크지 않은 편이다. 또한 야근도 없고 정년도 없다. 현재 리드릭에는 환갑을 훌쩍 넘은 직원이 이미 2명 있다. 다만 정해진 월급 외에는 인센티브 같은 제도가 없어 큰돈을 벌고자 하는 이에게는 부적합할 수 있다는 김 대표는 “처음부터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경우는 별로 없겠지만 장애인과 함께하는 작업 속에서 보람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직장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리드릭은 앞으로 사회적 기업의 성공 모델로 리드릭 공동체를 전국적으로 넓혀 가는 꿈을 꾼다. “만일 리드릭이 문을 닫게 되면 아마도 중증 장애인의 절반 이상은 생활시설로 가야 할 겁니다. 생활시설에 가면 1년에 몇 번이나 바깥에 나가볼까요. 하루 종일 벽이나 TV를 보는 삶이 아닐까요.”

김 대표는 “중증 장애인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다고 노동 효율성이 갑자기 향상될 수 없으므로 이들을 고용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을 기간 제한 없이 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생활시설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 붓는 대신, 사회취약계층을 고용한 사회적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소비자들에게도 함께 걷는 사회를 위한 인식의 전환을 당부했다.

“내 돈(세금)이 생활시설에 쓰이는 게 좋을까요? 윤리적 소비에 쓰이는 게 좋을까요?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을 위한 윤리적 경영을 하는 곳인 만큼 제품이 다소 비싸더라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문화가 널리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배현정 기자 gr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