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 계획은 빠를수록 유리하다. 승계란 한두 해에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업승계 계획의 첫 번째 원칙을 꼽으라면 자녀를 가업승계 계획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성공적 '가업승계 계획'의 비결
은퇴를 앞둔 창업자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중 하나가 경영권 승계와 더불어 소유권 즉, 주식 분배에 관한 것이다. 과연 어떤 소유권 구조가 적절할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실 소유권과 관련된 결정은 창업자의 가치관과 가족관계, 그리고 기업의 상황이 반영돼야 하므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창업자가 어떤 선택을 하든 소유권의 선택 기준은 다음 3가지 방식 중 1가지가 될 것이다.

첫째, 1명의 자녀가 지배적인 소유권을 갖고 단독으로 경영하는 것, 둘째, 자녀들에게 소유권을 동등하게 분배하고 서로 협력해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는 것, 마지막으로 기업을 분리해서 각자 단독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3가지 방식 모두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장점과 동시에 문제점이 있었다.

어떤 방식을 택해도 문제가 있다면, 과연 소유권 방식을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일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은 미래의 계획을 수립하는 데 가족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미래를 책임질 자녀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승계 계획은 단지 부모들의 바람일 뿐이며, 부모들이 사망한 이후에는 대부분 부모들의 기대와 다르게 상황이 전개된다. 미래의 계획이 잘 지켜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계획을 직접 수행할 당사자들을 계획 수립에 참가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예컨대 두 사람이 하나의 오렌지를 놓고 서로 갖겠다고 싸운다고 가정해보자. 가장 현명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해보면 대부분은 정확하게 이등분해서 반반씩 나누어 갖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고 얘기한다. 간혹 게임을 해서 이긴 한쪽이 다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렇다면 오렌지를 나누기 전에 각자에게 오렌지가 왜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한 사람은 알맹이로 오렌지주스를 만들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껍질을 활용해 잼을 만들 계획이라고 답했다면? 공평하게 반씩 나누거나 누군가 한 명이 다 갖는 것보다는 알맹이와 껍질을 각각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편이 가장 현명하지 않은가.

이와 같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교환할 수 있다면 더 효과적이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다음 실제 사례를 통해 가족들이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살펴보자.

자녀의 의사를 반영하라
중소기업의 창업자인 강 모 회장은 딸만 셋을 두고 있다. 아들이 없어 예전부터 승계 문제로 고민을 했는데 다행히 회계학을 전공한 첫째 딸과 심리학을 전공한 둘째 딸이 회사에 들어와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강 회장은 첫째 딸이 적극적이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책임지고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회사를 맡겨야 할지, 아니면 형평성을 고려해 세 딸에게 똑같이 소유권을 분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에게 자녀들의 의견을 반영해 계획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가족의 동의를 얻어 필자가 자녀들을 각각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첫째 딸은 아버지가 일구어 놓은 기업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기업 경영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둘째 딸은 해외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 해외에서 공부를 더 하길 원했다.

그리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 전공을 살려 일하고 싶다고 했다. 셋째 딸은 외국인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 회사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했다. 둘째와 셋째 딸은 큰언니가 능력도 있고 그간 후계자 수업을 잘 받아 왔으니 회사는 전적으로 그녀가 맡아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가족회의를 열어 첫째 딸이 지배력을 가질 수 있도록 그녀에게 70%의 지분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른 자녀에게는 회사 지분의 일정 부분과 강 회장의 개인 재산 중 일부를 증여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실질적 가치로 따진다면 동생들의 몫은 첫째의 몫에 훨씬 못 미쳤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내린 결정에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물론 가족이 함께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일은 여기서 소개한 바와 같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승계와 관련된 예민한 문제를 자녀들과 함께 얘기하는 것을 꺼린다. 그리고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창업자의 은퇴 문제와 승계 문제는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금기사항이다.

그래서 창업자 본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승계와 관련된 의사결정은 창업자 혼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업자 혼자서 기업과 가족, 소유권과 관련해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만족할 만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세대교체 문제는 중요한 일이지만 당장의 급한 일들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승계 계획이 미흡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가족기업들이 창업자 세대를 넘어서면서 30%밖에 생존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승계 계획의 부재’를 꼽았다. 만일 체계적인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가족과 기업의 구심이었던 경영자가 사망하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소유권이나 경영권 문제로 가족 간 분쟁이 생길 수 있고, 기업의 방향성마저 흔들린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유산 분배나 상속세 문제로 기업을 매각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이처럼 승계 계획이 있느냐 없느냐는 가족기업의 존폐가 달린 중대한 문제다. 반면, 강 사장의 가족과 같이 부모와 자녀 간, 형제자매 간 신뢰가 높고 평소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가족의 경우 가족들이 함께 미래를 계획하는 데 적극적이다.
성공적 '가업승계 계획'의 비결

형제 경영, 꿈을 공유하라

30년 전 회사를 창업해 이제 60대 중반에 접어든 중소기업의 김 사장은 30대 중후반의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두 아들 모두 학업을 마치고 각각 국내의 대기업과 외국 기업에 다니다 몇 해 전부터 회사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정체됐던 기업은 자녀들이 회사에 들어와 일하면서 최근 성장세로 돌아서고 있다. 현재 이 회사의 매출은 연간 약 300억 원가량 되고 직원은 120명 정도다. 하지만 최근 해외시장에서 제품이 호평을 받으며 앞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사장은 두 자녀들이 지금은 사이도 좋고 서로 협력해서 일을 잘 하고 있지만 자신이 은퇴한 후에도 형제들이 협력해서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을까 염려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회사를 공동으로 경영하도록 해야 할지, 아니면 사업부를 분리해서 각자 회사를 하나씩 따로 운영하도록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몇 년 후 자신이 은퇴하기 전 회사를 분리해 자녀들에게 하나씩 맡기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필자가 그의 자녀들을 각각 만나보니 그들의 생각은 김 사장과 달랐다. 자녀들은 형제가 서로 각자의 장점을 살려 공동으로 경영하는 형제 경영 방식을 선호했다. 크지 않은 기업을 나누는 것보다는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리더십이 강한 형은 경영을 책임지고, 해외에서 마케팅을 공부하고 경력을 쌓은 동생은 해외로 진출해 기업을 확장해보고 싶어 했다. 결국 이 회사도 자녀들의 생각을 반영해 앞으로 공동으로 경영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김 사장은 가장 먼저 자녀들과 함께 자신의 경영철학과 핵심 가치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수립한 가족 공동의 꿈은 ‘히든챔피언’ 기업이 되는 것이었다. 김 사장은 직원들과 함께 그들의 꿈을 공유했다.

그리고 전 직원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통해 기업의 비전을 도출했고, 그에 따른 전략과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경영철학을 기업 경영에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인사제도를 마련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두 형제가 공동의 비전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김 사장은 그동안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이사회의 기능을 보다 공식적인 기구로 출범시켰다. 이사회는 김 사장과 그의 두 아들, 그리고 임원 3명으로 구성했고 회사의 주요한 의사결정은 반드시 이사회의 논의를 거쳐 진행하는 것으로 했다. 김 사장은 향후 형제 중 누가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을 맡든 회사의 주요한 의사결정은 이사회의 논의를 거쳐 합의하도록 공식화했고 그에 따른 세부 규정도 마련했다.

아직 회사가 중소기업 수준이라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자문단을 구성해 회사의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각종 자문을 받고, 향후 기업이 더 성장하면 사외이사를 포함시켜 이사회를 보다 전문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는 공식적인 가족회의를 구성했다. 두 형제는 모두 결혼해 큰아들은 아들을 2명 두었고, 둘째 아들은 1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이들의 나이는 3세에서부터 10세 사이다. 김 사장은 앞으로 3세대들 중 누군가는 회사에서 함께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손자들이 어렸을 때부터 한 가족이라는 동질감을 갖는 것과, 며느리들이 서로 경쟁심을 갖기보다는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성공적 '가업승계 계획'의 비결
그래서 가족이 함께 전통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가족회의에는 아들과 며느리들을 포함해 전 가족이 참여하며, 맨 먼저 가족 워크숍을 통해 가족이 함께 가훈과 가족행동규정을 수립하고 이를 명문화했다. 또한 공식적으로 전 가족이 함께 매년 가족여행을 하는 규정도 마련했는데, 가족여행은 두 며느리들이 전적으로 맡아서 준비하도록 했다.

물론 모든 의사결정은 가족들이 충분히 토의하고 합의한 것이다. 김 사장의 가족들은 함께 미래의 꿈을 공유하고, 가족회의나 가족모임을 통해 서로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공동체라는 책임의식 생겼고, 가족 간의 결속이 강화됐다.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자녀들이 싸우지 않고 협력해서 기업을 잘 이끌어 가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승계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하는 경영자는 그리 많지 않다. 설령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만의 생각에 머물러 있거나 ‘후계자가 잘못하면 어쩌나’, ‘자녀들끼리 싸우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부정적인 질문에 기초해 계획을 세운다. 승계 계획은 이와 같은 부정적인 질문을 기초로 해서는 안 된다.

이보다는 걱정하는 것 이면의 긍정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즉, ‘어떻게 하면 후계자가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녀들이 협력하고 화목하게 지낼까’, ‘어떻게 하면 대를 이어 건강한 가족과 기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해법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 사장과 같이 승계 계획은 경영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승계 계획을 세우는 일은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글: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 소장
일러스트 김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