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장소 협조 더 레스토랑(02-735-8441)
김준 경방그룹 회장은 재계의 소문난 클래식 애호가다. 국내 1호 상장사이자 97년 역사를 지닌 경방의 3세 경영진으로, 아버지인 김각중 전 경방그룹 회장에게서 경영 지분과 함께 음악적 자산을 물려받았다. 한때 성악도를 꿈꿨던 김각중 전 회장의 음악 열정을 보고 자라면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영감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화학 박사이면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즐겨 친다. 그의 음악 사랑은 ‘아트 앤 컬처(Art & Culture)’라는 사모임을 통해 실천된다.
최권욱 안다자산운용 회장은 헤지펀드 시장의 고수다. 투자 운용 분야에서 30년 한길을 걸어온 전문가로 과거 코스모투자자문 (현 스팍스자산운용)을 설립해 업계 1위로 키운 뒤, 5년 전 안다자산운용을 세워 현재 1조 원 규모의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특히 최 회장의 글로벌 인맥을 바탕으로 해외 유명 국부 펀드, 연기금 자금을 주로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오랜 미술품 컬렉터다. ‘미술과 투자는 서로 닮아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이지윤 국립현대미술관 운영부장은 미술계를 대표하는 예술 경영인이다. 런던에서 ‘숨 아카데미 앤 프로젝트’를 설립한 최고경영자(CEO)로 연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총괄디렉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관 개관 이래 첫 대규모 사진전이자 국내 역대 사진전 중 최대 규모인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5월 4일~7월 24일) 전시가 바로 그의 지휘 아래 나왔다. 또 국내외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아트 앤 컬처’ 멤버를 비롯한 명사들을 국립현대미술관의 고정 팬으로 만드는 것도 그의 몫이다.
최근 예술과 인문학이 기업 경영의 화두가 되고 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한경 머니가 세 명사를 한자리에 불러 모은 건, 우리 사회가 ‘예술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돼 가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안목을 뜻하는 ‘아이(eye)’. 그것은 삶의 질을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의 영역에서도 미래를 여는 키워드로 떠오른다. 각자의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예술을 삶 속에서 깊게 누리고 나누는 3인을 통해, 그 힌트를 얻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마련된 5월 17일 오후 2시의 좌담에서 이야기 물꼬를 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악장. 나의 예술 입문기
“예술은 최고의 취미이자 놀이”
예술의 여러 속성 가운데 유희가 있다. 그 자체로 즐겁고 아름다운 장르로, 최고의 성과를 추구할 때 나타나는 몰입·초월의 감성과 통한다.
최권욱 회장(이하 최 회장): 우연한 기회에 미술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15년 전 정보기술(IT) 버블이 오고 주식시장이 출렁였을 때 마침 서울 인사동을 지나다가 한 갤러리에 들어가게 된 게 컬렉션의 시작입니다. 당시 갤러리스트에게 그림에 대해 물어보니 초보자로 보였는지 별 대답을 안 해줬는데, 호기심 반 오기 반으로 어떤 그림을 하나 사게 됐어요. 당시에는 ‘무슨 그림이 이렇게 비쌀까’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그림이 이대원 선생의 것이었어요. 그 뒤로 전시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내가 보는 눈이 있나보다’ 생각하니 재미가 있더라고요.
김준 회장(이하 김 회장): 저는 (장르가) 음악이에요. 아버지를 따라 음악 세계에 입문했는데, 점점 나 자신의 세계를 개척하다 보니 고등학교 때부턴 아버지의 수준을 능가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더 빠져들었어요. 무엇보다 부자지간에 음악이 없었다면 그렇게 가까이 지내지는 못했을 거예요. 아버지는 특히 오페라의 팬이었는데, 미국 텍사스 유학 시절 방학 시즌이 되면 음악회를 보기 위해 뉴욕에서 한 달씩 보내셨어요. 1950~1960년 당시에는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한 마리아 칼라스, 주제페 디 스테파노, 마리오 델 모나코 등이 다 뉴욕에 있었어요. 아마 한국에서 우리 아버지만큼 좋은 공연을 많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제가 음반으로 들으면 옆에서 생생하게 아버지가 해설을 해주셨어요.
이지윤 운영부장(이하 이 부장): 운이 좋게도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모여 있는 경동교회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어요. 한 번도 얘기해본 적 없지만, 원래 저는 오페라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던 사람이에요. 불어불문학과로 진학하는 바람에 내려놨을 뿐, 대학 때는 나윤선 재즈 가수와 함께 뮤지컬 <가스펠> 무대에 서기도 했어요. 그리고 당시 한국에 막 들어온 교환학생 제도를 통해 1989년 프랑스 소르본대로 가게 됐죠. 그때 식비를 아껴 가면서 매일 같이 수업 듣고 가는 데가 루브르박물관이었어요. 또 운 좋게 교환학생으로 스탠퍼드대로에 가게 됐는데, 뉴욕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본 순간, ‘한국의 예술가들을 세계로 수출해야겠다’는 이 한 가지 마음을 품었어요. 사실 지금까지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셈이죠.
김 회장: 고전 음악은 제게 가장 재밌는 놀이에요. 저로서는 행운인 게, 부자 아버지를 만나서 재산을 물려받은 것도 있지만 더 고마운 것은 ‘어떻게 잘 놀 수 있는지’를 배운 거예요. 지금도 그때 배운 것 그대로 그렇게 놀아요. ‘아트 앤 컬처’를 통해 같이 공연을 보러 다니고 음악으로 대화하고, 신예 아티스트들을 초청해서 하우스 콘서트도 열고 있어요.
최 회장: 사실 저는 오랜 기간 투자를 하다 보니 예술을 취미로 삼는 것에 오히려 가책(guilty)을 느껴 왔어요.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분석하고 공부를 해야지, 취미에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번아웃’을 막기 위해 힐링 차원에서 접근했던 미술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쪽으로 바뀌어 간 거예요. 저는 홍콩과 한국을 2주 간격으로 오가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는데, 집에 미술품을 걸어 놓고 자주 들여다봐요. 최근 새로 컬렉팅한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은 뚱뚱한 귀부인으로 유명한 그림인데, 출퇴근 할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아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김 회장: 솔직히 저는 지금 웬만큼 공부한 음대 학생들보다 제가 나은 것 같은데, 왜냐하면 베토벤, 모차르트 교향곡을 다 외우니까요. 지휘를 할 수 있으려면 다 외워야 해요. 예를 들면 오케스트라의 어느 파트, 어떤 부분이 틀렸는지를 지적할 수 있어요. 지휘를 하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지휘를 해서 그렇지,(웃음) 나는 다 외워서 지휘합니다.
2악장. 예술이 나에게 주는 것들
“예술의 속성은 소통·나눔·교감”
예술의 또 다른 본질은 바로 소통이다. 예술은 혼자 즐길 때보다 함께 나누고 교감할 때 통하는 느낌이 배가 된다.
이 부장: 런던에서 운영한 비영리 회사 이름이 ‘숨(Suum)’이었던 것도 예술이 세상을 숨 쉬게 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큐레이터는 ‘큐라(cura)’라는 말이 어원인데 ‘치료한다’, ‘보살핀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그런 예술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소통하게 하는 것이 우리 큐레이터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 회장: 감동받은 것을 얘기하고 함께 토론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여기에 악보를 공부하면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한번은 제가 처음 브람스 교향곡을 들었을 때 별 감동이 없어서, 브람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서 뭐가 좋은지 물어봤어요. 포인트를 듣게 되고, 공감을 하면서 브람스를 많이 이해하게 됐어요. 베토벤을 좋아했었는데 또 새로운 세계가 열리더라고요. 점점 폭이 넓어지는 거죠.
최 회장: 제 주변에 또 예술 애호가들도 많으신데, 한 지인은 본인 회사에서 운영하는 공연장에 초대해줘서 그것을 계기로 음악인들과 교류를 하게 됐어요. 예술가들을 만나니까 행복해지더라고요. 김준 회장은 1년의 공연 스케줄을 미리 보여주고 원하는 공연의 티켓을 다 제공해줘요. 1년 회비가 있긴 한데 아마 다 더하면 그것의 몇 배가 될 겁니다.
김 회장: 일종의 재능 기부를 하기도 해요. 각자가 알고 공부한 부분을 멤버들에게 쉽게 설명해주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이지윤 부장 같은 경우에 요즘 기업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람 중 한 명인데, 미술사라는 배경이 매력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임에서도 현대미술사 강의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죠.
최 회장: 피아니스트도 있고, 성악가도 있어요. 주로 고전 음악의 세계에 대해 얘기해요. 예를 들면 베토벤 심포니를 듣고, 그것을 작곡했던 시대 배경과 베토벤의 상황, 당대 작곡가들까지 같이 살펴보는 식입니다. 확실히 내공 있는 사람 근처에 가니까 압축 교육이 돼서 좋긴 하더라고요.
이 부장: 저도 좋은 전시가 있으면 꼭 생각을 하게 돼요. 어차피 저는 봐야 하는 공연인데, 같이 가면 제가 아는 지식을 전해줄 수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여는 사진전에 멤버들을 초청했어요. 소통하고 나누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예술가들이나 창의적인 사람들이 인정받는 사회가 될 때,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영국은 예술가들에게 작위도 주고 많이 인정을 해주거든요. 문인들도 다 존경받는 직업이고요. 한국도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최 회장: 저는 예술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죠. 미술품의 가치를 배운 건 미국 솔로몬그룹의 아담 솔로몬 전 회장을 통해서예요. 그분이 패밀리오피스를 운영하셨는데, 한번은 집에 초대를 해주셨어요.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고 있는 8층짜리 빌라였는데, 가서 보니 집이 꼭 갤러리 같았죠. 이집트 유물에서부터 각국의 유명 미술품이 다 있었어요. 그분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소개해주시면서 “케빈도 돈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갖고 싶어질 거다”라면서 “부만 쌓아서는 상류층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해주셨죠. 저도 언젠간 제 컬렉션으로 갤러리를 만들고 싶어요.
김 회장: 르네상스 하면 메디치라는 가문 있고, 한국에서도 예술 후원을 하는 부호들이 많으신데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한 가지 오해를 하는 게 예술이 꼭 돈이 많아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우리 모임에는 부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아요. 20대 후반 샐러리맨도 있고요. 책임감을 갖는 차원에서 올해부터 연간 50만 원씩 회비를 걷는데,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1년에 50만 원이면 지금 제가 누리는 것을 그대로 누릴 수 있어요. 예술을 돈을 들여서 즐길 수 있는 건 제 경험상 거짓말이에요. 미술 컬렉션 빼고는 다 할 수 있어요.
3악장. 예술에서 배우는 경영
2%의 부족함을 채우는 미감, 그리고 안목
기업들은 이제 예술이라는 무기를 꺼내 들고 있다. 지금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창조와 혁신의 정신에 가장 맞닿아 있는 분야가 다름 아닌 예술이다.
이 부장: 우리 사회가 예술을 필요로 한다는 데 공감해요. 정말이지 요즘은 경제나 경영 쪽에서 예술에 관심이 많으세요. 제가 강의를 나간 곳도 미대가 아닌 경영대였죠. 연세대에 특강을 나가서 ‘창조산업과 예술경영’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가, 한 학생이 학장에게 편지를 써서 정식 과목으로 개설이 된 것인데요, 2011~2014년 연세대 경영대 겸임교수를 하면서 그때 배출한 제자들이 많아요. 지금은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또 제 역할을 담당하면서 예술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최 회장: 미술 회화 중에서도 인상주의 이후로 컨템퍼러리까지 다 좋아하는데요. 어떤 그림이 비싸질까를 보면 결국 창의성이라고 생각해요. 기존 질서를 파괴한 작품들이죠. 비즈니스도 유사한 맥락이 있어요.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것을 깨트리고, 환영 받지 못하던 데서 어느 순간 주류 문화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요.
김 회장: 모든 게 서로 다 연결되는 것 같아요. 미술과 음악은 당연히 그렇고, 투자도 마찬가지예요. 투자가 뭐냐면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건데, 내 세계에만 매몰돼 있으면 그게 잘 안 보인다고요. 만약 내 삶에 음악이 없었다면 그건 상상을 못하겠어요. 정서에만 도움이 된 게 아니라 사업을 하는 데도 그래요. 음악이 없었다면 내가 사업을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물론 사업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최 회장: 제 지인이기도 한 최진석 서강대 교수의 말이, 학계에서는 인문학이 죽었다고 하면서 강의를 줄이는데 기업인들은 혈안이 돼서 예술과 인문을 배우려고 한대요. 왜 이런 역설이 생기느냐. 어떤 영역도 생존하지 못하면 당장 죽는 건 없대요. 그런데 유일하게 기업은 성공하면 그냥 퇴출이죠. 전쟁을 하는 것과 똑같은데, 이제 예술을 입히지 못하면 기업이 생존하지 못하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끼기 시작했어요.
김 회장: 제 주위에 돈 많은 사람을 많이 아는데요. 맛있는 식사와 와인 정도, 골프는 치는데 주된 관심사가 예술과 인문이에요. 우리는 지난번 하우스 콘서트에서 쇼팽 콩쿠르 세미파이널까지 올라간 피아니스트를 초청했어요. 이번에는 클라리넷을 하는 학생을 초청해요. 형편이 어려워서 클라리넷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고등학교 음악반에서 배워서 결국 서울대를 들어간 친구죠.
이 부장: 사실 저는 외국에 훨씬 더 네트워크가 많아요. 구겐하임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 관장에서부터 세계 선박왕을 비롯한 세계의 컬렉터들을 많이 만났죠. 2008년에는 윌리엄 왕자의 커미션을 받아서,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모든 연구비가 윌리엄 왕자의 오피스에서 다 나왔고, 이를 통해 한·중·일 사진전을 열었죠. 그 전시를 통해 한국의 사진작가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 같아요. 이를 바탕으로 지금은 한국에 오는 세계의 컬렉터들에게 한국 현대미술의 매력을 알리는 호스트 역할을 하려고 해요.
4악장. 예술에서 배우는 인생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
혼자서도 기꺼이 새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용기, 바로 예술이 주는 선물 아닐까.
최 회장: 제가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는데요. 미국이나 유럽의 헤지펀드들, 또 스위스의 패밀리오피스에 가보면 깜짝 놀라요. 한국은 금융 회사를 방문하면 책상에 책과 컴퓨터가 있고, 사람들의 표정은 딱딱하고 느낌이 거의 똑같잖아요. 그런데 유럽의 패밀리오피스를 방문했는데, 모든 사무실이 거의 다 예술 작품인 거예요. 일단 인테리어부터 가구 하나, 소품까지 남달라요. 그걸 보면서 ‘아, 이게 다르구나’ 싶었어요.
이 부장: 그게 바로 안목이에요. 맞는 말씀인 게 제가 런던에 있었잖아요.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33%가 은행에서 나오기 때문에 런던에서 예술을 후원하는 주축이 뱅커들이거든요. 헤지펀드 관계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왜 컬렉팅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이래요. “어떤 사람의 돈을 맡아야 하는데, 나의 취향과 안목을 보여주지 않고서 내가 어떤 철학과 방향을 보고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득하겠느냐.”
최 회장: 그래서 저도 충격을 받고 와서 여의도를 떠났어요. 사람들이 군중에서 떠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잖아요. 주식 투자도 그렇거든요. 모두가 ‘아니요’라고 할 때 ‘예’ 할 수 있는 용기,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하지 못하고 허들 안에 갇혀 있어요. 유럽에서는 어떻게 하면 나를 남과 다르게 할까에 초점을 맞춰서 인테리어도 달리 하고 투자도 그런 식으로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의도를 떠나 강남으로 왔어요. 그리고 이사를 하면서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고 컬렉팅한 미술품도 걸었어요. 특히 외국 고객들의 달라진 반응을 보면서 역시 안목이 중요하구나를 느꼈어요.
이 부장: 안목을 가진 사람을 키워내는 게 21세기에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인문학, 미술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아요.
김 회장: 지금은 최 회장을 ‘케빈 형’이라고 부르는데, 처음엔 투자 때문에 만났거든요. 1년 정도 알았는데 틀림없이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했어요. 사무실에 가서 느낀 게 아니라 얘기를 하면서 느끼는 거죠. 그야말로 통찰력이 있어요. 단기 수익이나 숫자가 아니라, 전체 흐름을 보고 업종과 기업의 문화와 역사적인 것까지 풀어내는 것을 보고, 매력에 끌렸어요. 대부분 투자가들이 투자 수익률을 올릴 생각을 하지 않고 눈치를 볼 생각을 해요. 근데 제가 “최 회장님, 여기에 왜 투자하십니까. 나는 싫은데요” 했더니 “싫으면 나가십시오” 하더라고요.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투자하는지를 분명히 얘기해줘요. 그건 자기 나름대로의 역사에 대한 이해, 미래 비전과 통찰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얘기거든요. 투자도 수치가 아닌 태도를 보고 하는 거예요.
이 부장: 컬렉터들에게 평소 조언하는 게 첫째, 작품을 살 때 내 집 소파 뒤에 걸 것만 생각하지 말고 사라, 둘째, 바로 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사라예요. 이 두 가지를 하지 않으면 미술 투자에서도 성공할 수 있어요. 투자 수익률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역시나 작가의 태도를 보고 사는 거거든요.
김 회장: 다 똑같아요. 전문가라는 게 내가 가진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더 넓게 알아가는 거예요. 일례로 미켈란젤로를 보면 예술부터 공학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그 많은 것을 다 할 수 있었을까요. 꼭 천재라서가 아니라 어떤 부분을 대하는 ‘태도’를 배워 두면,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이 부장: 유럽에 비해 한국 사람들이 약한 게 바로 안목이에요. 그 차이에서 마지막 2%가 달라지는데, 이게 한두 사람만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다 같이 바뀌어야 해요. 한국인이 약한 게 2%의 끝마무리라고 하는데, 그건 예술적인 감각이거든요. 차세대 리더들에게는 특히 이것이 필요해요.
최 회장: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서 예술을 못 즐기는 것 같아요.
김 회장: 동전의 양면이라고 봐요. 정신적 여유가 있어서 예술을 할 수도 있지만, 예술이 정신적 풍요를 낳아주고, 그 풍요가 더 좋은 인연과 풍요를 낳아주죠.
이 부장: ‘눈동자 개발 이론(retine theory)’이라는 게 있어요. 미술 전시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설명해줘야 한다고 하지만 아이들한테 굳이 설명할 필요 없어요. 그 환경에 몸이 젖고 눈이 경험하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즐겨봐야 나이가 들어서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와요.
2시간에 걸쳐 쉼 없이 내달리던 좌담은, 레스토랑의 문이 닫히면서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좌담회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귀기울여 경청하다가도, 어떤 대목에서는 셋이서 동시에 얘기할 정도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실내악 공연은 솔리스트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한 호흡으로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게 연주의 질감을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각각 금융(최권욱), 기업(김준), 미술(이지윤) 분야를 대표하는 3인이 함께한 특별 좌담은 조화로운 실내악 공연 한 편에 비유할 만했다. 예술과 인생이라는 공통 주제로 화음을 쌓아 갔는데, 그날의 날씨만큼이나 봄 햇살에 잘 어울리는 장조 화음이었다.
최권욱 회장은…
서강대 독문과 졸업.
서울대 경영대학원.
코스모투자자문 대표.
2011년 안다자산운용 회장(현).
이지윤 운영부장은…
연세대 불어불문학 졸업.
커톨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미술사학 박사.
숨 아카데미 앤 프로젝트 대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장(현).
김준 회장은…
1963년생. 고려대 화학과 졸업.
미 브라운대 대학원 화학 박사.
2016년 경방 대표이사 회장(현).
대한방직협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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