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 겸 배우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그를 처음 만난건 지난 겨울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연극‘백석우화-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의 앙코르 공연에서다. 커튼콜 받는 배우가 아닌 대표로서 김소희가 무대에 섰다. "올해 연희단거리패가 30주년을 맞아 연간 풍성한 연극 잔치가 열릴 예정이니 계속 관심 가져주세요.” 짙은 무대 분장 없이도 큰 두 눈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별한 예술가의 특별한 도구를 꿈꿨다”
여배우 김소희와 경자 김소희와의 교집합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대학로를 찾은 건 계절이 바뀌어서다. 그 사이, 연희단거리패는 계획된 일정을 착착 소화하고 있었다. 먼저 30주년을기념하는 첫 공연으로 2월에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그리는 ‘방바닥 긁는 남자’(김지훈 작, 고 이윤주 초연 연출)를 올렸다. 이어 3월에는 콜롬비아 보고타 국립극장의 초청을 받아, 국내
극단 대표로 해외 무대에 섰다. 이중섭 화가의 삶의 여정을 다룬 '길떠나는가족’(김의경 작,이윤택 연출)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1991년 초연 당시 김갑수 선배가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으로 유명해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공연 축제 ‘이베로 아메리카노 국제 연극제’에 공식 참가작으로 선정됐는데,콜롬비아 국립극장 극장장의 눈에 띄어 콜롬비아 예술가들도 쉽게 서지 못하는 콜론극장에우리가 서게 됐어요.”
4월의 공연은 그에게도 조금 특별하다. 대표가 아닌 배우로서 다시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유명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 ‘벚꽂동산’(4월 22일~5월 15일 게릴라 극장)에 연희단거리패의 대표 배우들과 함께 선다. 그가 맡은 배역은 여주인공 라넵스까야. 한 귀족 가문이 몰락하고 일어서는 러시아 혁명의 격변기에 벚꽃동산을 소유한 여자 지주 역할이다.

오랜만에 서는 무대인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연희단거리패의 30주년을 맞아, 어떤 공연들을 선보일 것인지 고심이 많았어요.‘벚꽃동산’은 저뿐만 아니라 이승헌(가예프 역), 오동식(레차 역), 윤정섭(로빠힌 역) 등 저희 극단의 선배부터 후배까지 대표 배우가 총출동하는 작품이죠. 이윤택 감독이 이 작품을 보면서 연극을 꿈꿨다고 해요. 체호프 원작에서 연희단거리패의 방식으로 재탄생했고, 꽃피는 봄에 올리기 위해 일찍부터 합을 맞춰왔어요. 올해는 ‘벚꽃동산’ 외에도 몇 개 작품에 더 출연할 예정이에요. 8월 중 ‘오이디푸스’를 올릴 예정이고, 이윤택 감독의 창작극 ‘꽃을 바치는 시간’도 준비하고 있어요. 30주년이라고 크게 판을 벌이는 것보다 내실을 기하고 우리 극단의 정체성을 연극으로 보여주자고 했습니다. 소박하고 단단하게, 30주년을 치르자는 생각입니다.”

김소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연희단거리패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연희단거리패는 30년 전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실험 극단으로 출발했어요. 연극계 거장인 이윤택 감독이 만들어 이끌어 오셨고, 저는 1994년부터 같이해왔어요. 지금은 서울 게릴라
극장과 밀양연극촌을 중심으로 60여 명의 단원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어요. 거리패라는 이름처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어느 곳에서도 공연이 가능한 연극을 추구해요. 대극장부
터길거리 연극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로 상시 공연이 가능한 레퍼토리 극단입니다. 저희끼리는‘메소드 연극 집단’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는데, 방법론적으로는 일반적인 연기 문법을 지양
하고 연희단거리패의 연극적 문법과 메소드가 확실한 연극을 지향하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우리 극단을 연구하러 온적이 있는데, 그때 붙여준 별칭은 ‘이상주의 연극 공동체’입니
다. 사회적인 가족을 이루고 합숙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이상주의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요즘 같은 세상에 단체생활을 한다는 게 조금 신기해 보이긴 합니다. 공동체로 사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여름 즈음에는 신입 단원이 대거 들어와서 80여 명으로 늘어날 예정입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하지만, 공동체로 살길 원하는 뜻 맞는 100명을 모으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아요.
우리는 사회적인 가족을 이루고 있는 셈이죠. 이 안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서로 키워줄 정도로 끈끈한 관계 속에 있어요. 하루 몇 시간씩 연습하고 각자의 시간을 가지면서 또 같이 먹고 자는, 하루 종일 연극만 생각할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일주일만 시간을 주면 상시 공연이 가능합니다.”

연희단거리패 하면 밀양 폐교와 밀양여름축제가 유명합니다. 최근 또 하나의 근거지를 마련했다고요.
“최근에는 기존 밀양연극촌보다 더 오지인 김해의 도요마을에 합숙공간을 마련했어요.서울에도 대학로에 연습실이 있는데, 배우들이 집중적으로 연습을 하고 싶어도 아르바이트를 하러가야 하고, 너무 바빠요. 서울은 사람을 빨리 움직이게 하는건 있지만, 너무 번잡하고 자기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게 하진 못하죠. 우리가 왜 연극을 하는지, 우리가 하는 연극은 무엇인지, 본질적인 것들을 잊게 돼요. 그래서 밀양 폐교로 들어간 것인데, 밀양여름축제가 많이 유명해져서 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어요. 저희에게는 우물 같은 곳이 필요하거든요. 우물이 있어야 물을 퍼다 사람들에게 줄 수 있으니까요. 예술적인 원천이 되는 질문이나 연습, 시행착오를 할 만한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더 오지로 들어갔어요.”

30년 동안 이와 같은 연극 공동체를 유지해 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단지 몇십 년이라서 중요하다기보다는, 그 시간 동안 어떤 작업을 하면서 살아왔는지가 중요한데 우리는 30년을 가열하게 살아왔어요.매일,매달,매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려왔고,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작업하고 만들어내는 일을 반복해 왔어요. 이름만 걸어 놓은 게 아니라 실제로 많은 상주 단원들이 이렇게 오래 활동해 온 민간 극단은 우리가 유일할 거예요. 개인
들이 많은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연습 이외에 일도 많이 해야 하고, 잠도 많이 못자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해요. 보통 연극하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으른 베짱이
를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일개미에 가깝죠.”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연기 연습만으로는 좋은 연기에 도달할수없어요.삶속에서, 땀을 흘려야 해요. 우리는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서 연극 훈련을 시작해요. 반복을 통해서만 좋은 질감이 나오니까요. 이곳
에서 배우들이 배우만 하는 사람은 없어요. 배우이면서 조명이나 음향을 담당하거나, 배우 겸 의상을 담당이거나 하는 식으로 다 자기 파트가 있어요. 무대도 저희가 직접 만들죠. 저같은
경우 기획, 교육, 배우, 대표 등을 다 해요.”

연극만 하면서 돈을 벌기가 쉽지 않은 구조인데,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나요.
“이곳에선 적지만 월급을 줘요. 이 정도는 돼야 인간으로서 최소한 존엄을 지킨다는 수준에서 기수에 따라 본봉이 지급됩니다. 수입이 적으면 적게 받고, 많으면 많이 받아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자급자족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절약하는 편이에요. 무대도 외부에 맡기지 않고 직접 제작하는데,‘방바닥 긁는 남자’의 무대로 상까지 받았어요. 또 많은 레퍼토리 가운데 대중적인 레퍼토리들이 있는데, 보따리를 싸서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 외부 공연도 하면서 수익을 내는 거죠. 수입이 마이너스일 때도 있는데, 그때도 같이 책임지고 부담을 해요. 현실적인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대책을 세우고 회의도 많이 하죠, 한쪽으로는 이상적인 연극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걸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고민들과 노력들도 많이하고 있습니다.”

연희단거리패는 여러모로 조금 독특한 곳인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 기마대에 비유하기도 해요. 말을 타고 함께 달리는 기마대인데, 말을 타고 가면서 생각도 하고, 누구 하나 떨어지면 다시 태워서 가야 하죠. 앞서 달리는 무리가 있으면 다른
한쪽에서또달릴준비를해요.”

수장이다 보니 연기만 할 때는 신경 쓰지 않던 여러 경영적인 문제들을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대표를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연극에 대한 막연한 관념과 이상을 가지고 연극에 접근하는 동안 땅에 발붙일 틈이 없었는데, 대표를 하다 보니까 변하지 않으면 안됐어요. 제 인생에서 해보지 않았던 것들, 신경 쓰지 않았던 현실적인 것들을 하나씩 배우는 것 같아요.”

보통은 2년씩 대표를 맡았던 것으로 아는데, 이례적으로 2008년 이후 쭉 경영을 하시는 것을 보면 특별한 능력이 있으신 것 같아요.
“이곳에서 선배이다 보니 어떤 의견을 제시하고 소통하는 데 조금 나은 것 같아요. 감독이자 스승의 이야기를 동료나 후배에게 전달하기도 하고요.또 동료들은 어떤 분야에서는 저보다
나은 전문가들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기획자나 제작자로서 끊임없이 의견을 내고 들으려고 해요.목표는 극단이 좋은 작업을 하는 것이죠. 부끄럽지 않은 과정과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줄곧 이곳에서 연극 생활을 해 왔는데,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었습니까.
“대학 시절 인상 깊게 본 연극 몇 편이 있는데, 그중 세개가 모두 이윤택 연출이었어요. ‘바보각시’, ‘길 떠나는 가족’, 그리고 ‘오구’ 였어요. 그전까지 보던 연극과는 조금 달랐는데,이상
하고 낯설게 기억에 남았어요. 알고 보니 이윤택 감독의 작품이었고,호기심에 우리극연구소에 1기 단원으로 합류하면서 연희단거리패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됐어요.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으로 러시아 연출가인 박탄코프에 대해 썼는데, 그 이상하고 낯선 세계에 매료돼 버렸죠. 연희단거리패에서 하는 연극 세계가 이와 비슷했어요. 환상과 현실이 섞인다든지, 조합되지 않는 것들이 한 무대에 있다든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뜬금없는 것들이 등장하는 거예요. 이상하고 낯설지만 돌아보면 이게 진실이야 하고 떠오르는 그런 세계죠.”

김소희 하면‘이윤택의 페르소나’라는 별칭이 붙습니다.
“제가 연극을 할 때 세웠던 목표가 ‘특별한 예술가의 특별한 도구’였어요. 폴란드의 예지 그로토프스키라는 연출가가 있어요. 그의 옆에는 리샤르트 치에슬락이라는 배우가 있는데, 그 배우 사진을 보고 반해서 연극을 시작하게 됐어요. 제 롤 모델이에요. 눈이나 어떤 에너지가 일반 배우의 사진과 달랐는데, 완벽하게 도구화된 느낌이었죠. 자기를 완전히 던져서 무대에
서 어떤 것을 표현해내는 도구화된 인간. ‘인간이 저런 일을할수 있구나’, 완전히 압도당했어요. 그게 관객에게 뭔가를 주는 거죠.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배우라는 삶도 특별하구나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이윤택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표현은 엄청 난거죠. 목표를 벌써 이뤘구나했어요.”

김소희의 연기에는 에너지가 넘친다는 평들이 있습니다.
“매 작품마다 매 연습마다 굉장히 노력을 해요. 완전히 던지려고 하는데, 노력한다고 달라지느냐고 물으면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항상 작품을 받으면 이번엔 이런 점을 배울 수 있겠구나생각해요. 역할을 통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중에서 특별하게 저의 존재를 많이 투영했다고 하는 작품들은 김지훈 작가의 ‘원전유서’에서 했던 매맞는 아내 어진네 역할이에
요. 어떤 인생도 중요하지 않은 삶이 없고, 그 인생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할이 작든 크든 가볍게 하는 때는 없어요. 그런데 어진네나 ‘혜경궁 홍씨’의 혜경궁 홍씨 같은 역할은 사람들이 크게 반응해주고 알아봐줬던 것 같아요. 스스로도 새로운 저 자신을 보게 됐고요.”

개인적으로는 지난 2월에 올린‘백석우화’를 재밌게 봤습니다. 백석 시인에 대해 재발견을 하게 됐어요.
“‘백석우화’같은 작품은 요즘 연극과 거꾸로 가는 연극이에요. 많은 요소를 넣기보다는 오히려 다 걷어냈죠. 소극장에서 소박하게 북 하나를 가지고 노래를 했어요. 대단하게 접근하지
않고, 가볍게탁쳤는데 홈런을 때린것같은 느낌이에요. 덧입히고 덧칠하는게아니라다걷어내고 보여줄 것만 보여주면서 진짜 감동을 주는,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핵심을 꼽았을 때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 같아요.”

유독 비극의 여주인공을 많이 맡으셨죠.
“연극에서 많은 사람들이 해보고 싶어 하는 역할들을 거의 했어요.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주인공을 다했고,어떤분은 저에게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고 했죠. 고전적인 작품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도 하고 온갖 좋은 역할을다 했는데, 그런 역할 자체가 약간 사연이 있고 독하거나 혹은 비극적이거나, 인상적인 역할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24년간 연극이라는 한 우물을 파신 셈인데,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는 비결이 뭔가요.
“약간만 한눈을 팔아도 결과가 안 좋기 때문에, ‘이 정도 하면 되겠지’하는 그 이상을 해야 해요. 그래서 버겁다고 늘 생각하는데, 니체가 ‘인간이 가장 행복한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 다음은 태어나자마자 빨리 죽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죠. 그런 말이 위로를 주는것같아요. 삶은 원래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나이 들고 시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겐 원죄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또 일이 버거울 때는 주변에 많이 물어봐요. 선생님에게 의논하고, 경험 많은 선생님과 동료들,후배들이 있고 끈끈하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당겨주면서 힘들어도 확 주저앉지 않게 되는 게 아닐까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있나요.
“저는 무대에서 힘을 얻어요. 관객과 만나면 숨을 주고받기 때문에 건강을 찾죠. 쌓여 있던 것을 버텨내고 관객들이 불어넣어주는 숨을 마셔요.배우를 하면 상당히 건강해져요.”

지난해 연극 ‘갈매기' 연출도 하셨죠. 학생들도 가르치시는데,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십니까.
“배우 혹은 연기자 김소희죠. 연기를 한다는 것은 헌신인 것 같아요. 배우라는 삶에 감동을 받을 때는 내가 진짜 어떤 빛나는 것, 정말 순수하고 빛나는 어떤 것을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를 던졌을 때예요. 그래서 배우라는 삶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헌신은 가장 빛나는 단어예요.”

김소희는 연극계에서 하나의 브랜드이며 티켓 파워다. 그런 그가 오랜 벗들과 함께 ‘월급쟁이배우’로 살아간다는 점, 특별한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특별할 것 없는 ‘오늘의 현실’을 단단하
게 살아낸다는 점은 그의 연기에 울림을 더해주는 요소들이다. 노동과 땀, 반복을 통해 좋은 질감을 만들어내는 연희단거리패의 방식처럼 김소희 또한 자신에게 맡겨진 다역을 기꺼이 감당하기에 그가 청년 시절 매료됐던 ‘이상하고 낯선 세계’에 지속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것 아닐까. 마치 좋은 연극을 한 편 보고 난 뒤의 여운 같은 것이, 인터뷰 후에도 지속됐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연세대 국어국문학와 동국대 대학원 연극영화 석사를 마쳤다. 대학에서 극예술연구회 동아리를 통해 연극에 발을 들이게 됐다. 1994년 연희단거리패에서 운영한 우리극연구소 1기 배우로 수석입단하면서 이윤택 감독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연극‘햄릿’,‘맥베스’,‘원전유서’,‘고곤의 선물’,‘혜경궁 홍씨’,‘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어머니’등 많은 연극에서 주연을 맡았다. 2008년부터 연희단거리패 대표로 일하고 있다. 2014년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전임교수를 맡았다. 2015년 연극‘갈매기’를 통해 연출가로 이름을 알렸다. 올해는 ‘벚꽃동산’을 비롯해‘오이디푸스’, ‘꽃을 알리는 시간’등을 통해 연극 무대에 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