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50대 남성이 아프다. 그것도 마음의 병을 단단히 앓고 있다. 최근 이목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우울증 환자 5명 중 1명이 50대(20.2%)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0대 남성 우울증 환자는 5년 새 18.9% 늘어 다른 연령대보다 더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우리 사회의 중추이자 인생의 황금기에 있는 50대의 시련을 더 이상 그들만 감당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Cover]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그들, 대한민국 50대 남자
“너는 숙제 몇 가지 남았냐?” 요즘 50대 남성들의 동창 모임에서 흔히 오가는 질문이라고 한다. 중년에 이른 50대 남성에게는 여섯 가지 숙제가 있는데, 양가 부모님 네 분의 장례, 자녀(두 명 기준)의 결혼이다. 네 부모님 중 두 분의 장례를 치렀고, 자녀 둘 중 한 명을 결혼시켰다면 세 가지 숙제를 마쳤고 세 가지가 남은 셈이다.

숙제. 베이비붐 세대에게 숙명과 같은 이름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족을 위해 청춘을 불사른 그들이지만 아직까지 자녀의 대학 학비와 결혼 비용에 헐떡이고, 고령의 부모 부양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노후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어디 이뿐인가. 대부분의 50대는 평생을 직장에서 헌신해 왔지만, 이제는 언제 명예퇴직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불안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급진전 되는 신체적 노화는 당황스럽고, 가정에서는 고립이, 사회에서는 아래 세대와의 부조화가 견디기 어렵다. 어느 순간 약해진 마음에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한다.

돈이 많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으면 사정은 달라질까.
전문가들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일수록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고 말한다. 즉, 앞만 보고 채찍질하며 달리느라 스스로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고민을 할 틈이 없었기 때문에 ‘성공 뒤에 오는 공허함’을 많이 느낀다는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른다는 중년 남성들도 부지기수다.

늘어난 수명은 이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20년 전만 해도 50대라고 하면 ‘늙은이’ 축에 속했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의 50대는 과거의 30~40대 정도에 불과하다. 자신은 여전히 팔팔하다고 느끼지만 사회나 직장 내에서의 시선은 ‘저무는 해’다.

이런 상황에서 50대 남성이 인식하는 삶의 질이 ‘바닥’ 수준인 것은 당연한 얘기다. 지난 10월 1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5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이 평가한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80점으로 OECD 평균(6.58점)보다 낮았다. 50대 이상의 만족도가 5.33점으로 30~49세(6.00점), 15∼29세(6.32점)에 비해 월등히 떨어진다.
[Cover]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그들, 대한민국 50대 남자
그렇다고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주축이자 동력인 50대의 붕괴는 대한민국 전체를 수렁에 빠지게 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고 말한다. 즉, 국가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윗세대들이 ‘행복’이라는 응당한 보상을 받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다음 세대도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현재의 삶에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껏 자신을 희생한 대가가 허무함이라면 누가 과연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라며 “선배들의 불행한 모습을 목격한 30~40대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50대 남성이 다시 한 번 일어서야 할 때다. 한경 머니가 빅 스토리 주제를 ‘Bravo, My Fifty!’로 잡고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 미래가 불안하지만, 지금부터 다시 신발 끈을 조이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노력을 한다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머니는 현금 자산 3억 원 이상을 보유한 50대 남성 1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라이프스타일, 가족 관계, 일, 은퇴, 재테크 및 상속 등에 대해 세세한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지 확인해보고, 보다 행복한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시한다.

‘나는 이제 지천명이다’의 작가이자 고전학자 조광수 교수는 50대를 24절기에 빗대어 한로(늦가을)부터 소설(초겨울)까지의 기간이라고 말한다. 인생으로 치면 청년과 장년 시절 동안 애써 이룩한 성취를 중년에 이르러 확인하고, 보람되게 즐기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인생 전성기의 꼭짓점이며, 마지막으로 즐겨보는 불타는 화려한 축제다.”
남자의 50대는 이토록 찬란하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