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이기 시작하면, 옷 입기 참 애매하다. 슈트 위에 무엇인가 걸치자니 너무 더울 것 같고, 일반적인 외투를 입자니 젖는 게 두렵다. 그럴 때 많은 남자들이 선택하는 것이 ‘트렌치코트’다. 트렌치코트의 탄생 배경 일화는 이미 너무나 유명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장교의 전투용 비옷, 즉 군복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견장과 탄띠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전쟁 후 많은 사람들이 입으면서 유명해진 옷이라는 것. 개버딘 소재 특유의 치밀한 조직감 덕분에 발수, 방수, 방풍 기능을 갖춘 뛰어난 품질의 기능성 옷을 만들 수 있었던 영국의 버버리, 아쿠아스큐텀 등은 세계적인 인지도를 지닌 명품 브랜드가 됐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맥코트’는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한 아우터 브랜드 매킨토시의 코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버버리의 트렌치코트가 ‘바바리’로 불리는 것과 비슷하다. 세계적으로는 트렌치코트만큼이나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1823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거주하던 찰스 매킨토시는 외과의사 제임스 샤임이 발명한 방수 천에 대한 특허를 얻는 데 성공했다. 또 1819년부터 고무 코팅 직물로 의류를 만들던 토마스 핸콕의 회사도 인수·합병해 방수 천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 의류를 공급하는 회사를 차렸다. 그 회사의 이름이 매킨토시다.
매킨토시는 자사의 이름으로 완벽한 방수 성능을 지닌 레인코트를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에르메스나 루이비통, 구찌 같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레인코트 생산을 대행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매킨토시는 최고급 레인코트의 대명사로 불리며 2000년에 영국 여왕으로부터 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긴 역사 동안 수많은 아류작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오리지널 매킨토시 코트처럼 완벽한 방수, 방풍 성능을 지니지 못했다. 스타일 면에서도 캐주얼은 물론 포멀 비즈니스 슈트 차림에도 근사하게 녹아든다. 더구나 방수 성능은 트렌치코트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래서 쌀쌀한 계절에 눈이나 비가 오면 영국의 신사들은 하나같이 매킨토시 코트를 입고 자유로이 거리를 누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외투가 있다. 바로 바버의 왁스드 재킷. 영국인이라면 한 벌쯤 가지고 있다는 이 캐주얼 재킷은 캔버스 천에 왁스를 먹여 발수, 방수, 방풍 기능을 더한 독특한 질감의 원단으로 만든 옷이다. 영국 왕실에서도 애용하고 있으며, 할리우드 스타들은 물론, 스티브 매퀸 등 유명인이 사랑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천연 왁스로 코팅한 만큼 시간이 지나면 그 기능을 점차 상실하는데, 매장에서 다시 왁스를 입히는 서비스를 받거나, 직접 왁스를 구입해 다시 칠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기획 양정원 기자│ 글·사진 김창규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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