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석 교수 & 이윤경 기자의 ‘식탐’

팔레 드 고몽은 몇 가지 측면에서 입지전적인 레스토랑이다. 숱한 고급 음식점이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서울 청담동에서 16년을 버텼다는 점, 국내에서 대중성이 떨어지는 프렌치를 그것도 파인다이닝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더 놀라운 건 100년 가는 식당을 만들겠다는 주인장의 포부다.
팔레 드 고몽의 실내 전경.
팔레 드 고몽의 실내 전경.
팔레 드 고몽은 실내외 인테리어나 음식의 맛 등으로 국내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프렌치 파인다이닝(fine dining: 최고급 코스 요리를 내놓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품격 레스토랑)이다. 특히 1만여 병에 달하는 고급 와인을 보유하고 있는데,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100인의 미식가협회’ 이브 그로고자 회장도 “미슐랭 스타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칭찬한 바 있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가 8월호에 소개할 음식점으로 팔레 드 고몽을 추천했다. 기자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일상을 벗어나 해외의 멋진 레스토랑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여름휴가 시즌에 팔레 드 고몽을 소개하는 건 시기적으로도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면 팔레 드 고몽으로 피서를 와 프렌치 정찬의 진수를 맛보는 것도 꽤나 멋진 바캉스이리라!
슈트에 보타이 차림으로 격식을 갖춘 예종석 교수가 팔레 드 고몽에서 와인을 음미하고 있다.
슈트에 보타이 차림으로 격식을 갖춘 예종석 교수가 팔레 드 고몽에서 와인을 음미하고 있다.
예 교수, 레스토랑에서 보타이 꺼내 든 사연
그동안 한경 머니에 등장했던 진동둔횟집, 목란, 그란구스또 등이 예 교수가 ‘자주’ 드나드는 단골집이었다면(진동둔횟집은 심지어 일주일에

4번도 방문하는 음식점이 아니었던가), 이곳은 외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일 때, 특별하게 기분을 내고 싶을 때에 한해 찾는 곳이라고 했다. 팔레 드 고몽은 레스토랑의 격을 최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문턱 역시 한껏 높였다.

레스토랑의 외벽은 담쟁이 넝쿨로 뒤덮여 마치 유럽의 고성을 떠올리게 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고풍스런 실내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커트러리, 유리잔, 그릇 등이 세팅된 테이블은 자로 잰 듯 흐트러짐이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덧입은 빈티지함이 레스토랑의 가치를 높인다. 예 교수는 “프랑스 파리에도 이 정도로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파인다이닝은 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레스토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에서 보타이를 꺼냈다. “파인다이닝에서는 격식을 차려야 한다”며 보타이를 매고 벗어 두었던 정장 재킷을 걸쳤다.
산딸기 밀푀유.
산딸기 밀푀유.
“1970년대에 프랑스에 갔더니 레스토랑에서 입구에 양복을 사이즈별로 구비해 두고 넥타이와 함께 손님에게 빌려 주더군요. ‘드레스 업(dress up)’을 하지 않으면 입장 자체가 불가능하단 뜻이죠.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웃음) 식기나 그릇도 모두 최고급 명품으로 구비하고 이 집기들을 비싼 보험까지 들어 놓은 곳도 있더군요. 그만큼 프렌치 파인다이닝들이 ‘격’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미슐랭 스리 스타 레스토랑의 매니저들은 패션이나 매너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멋쟁이들이었죠.”

그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급 음식인 프렌치 요리의 발전상을 풀어 나갔다. 프랑스 음식은 수세기에 걸친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통해 지금에 이르렀는데, 나폴레옹 등 유럽 왕실과 지도자들의 요리사였던 마리 앙투안 카렘(Marie-Antoine Careme)과 오귀스트 에스코피에(Georges Auguste Escoffier)가 19세기 초 프랑스 최고급 정찬 문화인 ‘오트 퀴진’의 기틀을 마련했다. 20세기 들어와서는 폴 보퀴즈(Paul Bocuse)의 주도하에 새로운 요리법인 ‘누벨 퀴진’이 명맥을 이어간다. 그 전까지 ‘소스’로 음식 맛을 냈다면, 누벨 퀴진 운동 이후에는 원재료의 맛을 살린 음식을 만들게 된 것이다. 무겁고 기름진 요리는 좀 더 가볍고 신선한 요리로 바뀌었고 소스도 진하게 만드는 대신 졸여서 사용하게 됐다. 채소는 살짝 익혀 부드럽고 신선한 맛을 즐기게 됐다.
버터에 익힌 채소를 곁들인 양갈비 구이.
버터에 익힌 채소를 곁들인 양갈비 구이.
“귀한 재료를 쓰고, 수준 높은 요리법을 구사해 만들어 내는 프렌치 음식은 일반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죠.”

프렌치 요리는 개화기 때 양식의 하나로 우리나라에 들어 왔지만, 이탈리안이나 미국 음식에 비해 대중화되지 못했다. 워낙 ‘문턱’이 높다 보니 대중이 접근하기 쉽지 않아서다. 1920년대 조선호텔이 운영했던 팜코트(지금의 나인스 게이트 그릴)를 비롯해 여러 시도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독립 프렌치 파인다이닝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귀국한 서현민 사장이 1999년 청담동에 팔레 드 고몽을 내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고몽의 성’ 100년 레스토랑을 꿈꾸다
팔레 드 고몽은 ‘고몽의 성’이라는 뜻이다. 이 ‘고몽’은 프랑스 파리의 극장 이름에서 따왔다. 이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부터 서 사장의 목표는 뚜렷했다. 100년 이상 살아남을 전통 프랑스 레스토랑을 만드는 것. 그는 레스토랑도 영화를 연출하듯 완벽한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와인, 손님이 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조명, 음악, 스태프들의 의상까지 빈틈없는 팔레 드 고몽의 소프트웨어들이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콧대 높은’ 레스토랑답게 음식과 와인 가격대도 높다.
[Food & Story] 프렌치 파인다이닝의 정수, 팔레 드 고몽
[Food & Story] 프렌치 파인다이닝의 정수, 팔레 드 고몽
버터에 익힌 채소를 곁들인 양갈비 구이, 꿩고기, 푸아그라, 프로슈또로 속을 채운 피티비에, 버터에 익힌 산딸기 밀푀유 등이 인기 메뉴이며 세계 3대 진미로 불리는 푸아그라, 캐비아, 트러플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코스 요리는 13만5000원대부터 시작한다. 서 사장이 와인 컬렉션에 쏟아 붓는 돈도 만만치 않은데, 1860년산 마데이라, 1899년산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 1900년산 샤토 마고, 1961년산 샤토 라투르 등이 이곳의 대표 희귀 와인 리스트다.

아직은 미식 문화가 무르익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비싼 재료를 쓰면서 최상의 품격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파인다이닝이 몇 군데나 될까. 서 사장이 직원들과 와인, 서비스뿐만 아니라 인성에 대한 공부도 따로 하며 이곳의 퀄리티를 16여 년째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은 사명감 때문이다. 예 교수 역시 이 점을 높이 평가했다.

“사람들은 이런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으면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데, 유지비만 따져 보더라도 이익을 남길 수가 없는 구조죠. 이 친구의 식당 경영에 대한 철학을 들어 보면 파리나 런던 일류 식당의 오너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옷도 늘 제대로 갖춰 입고 운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파인다이닝의 기본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죠. 실제로 해외 유수의 기업 회장들이 방한했을 때 팔레 드 고몽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서울 시내에서 이만 한 집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는 이곳에 재계 최고경영자(CEO)들과 종종 들러 코스 요리와 와인을 즐긴다. 40년 넘게 와인을 마셔 왔고 한국소믈리에협회 이사를 지낼 정도로 와인에 해박한 예 교수도 팔레 드 고몽에 오면 소믈리에에게 컨설팅을 부탁한다. 그날 먹을 요리와 예산에 맞춰 와인을 주문하면 환상의 마리아주를 즐길 수 있다고. 팔레 드 고몽은 세대를 이어 지속되는 레스토랑을 꿈꾸고 있다. 서 사장은 지금도 인테리어를 하나하나 직접 손보면서 ‘고몽의 성’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있다. 예 교수는 “이 음식점이 없어질까 봐 걱정하는 이들이 꽤 많다”며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팔레 드 고몽이 ‘청담동의 터줏대감’으로 명맥을 이어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품격 있는 프렌치 파인다이닝 문화를 전파할 수 있길 기자 역시 바랐다.


예종석 교수는…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이자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풍부한 음식 경험과 탁월한 미각을 소유한 음식문화평론가.

이윤경 기자는…
한경 머니 기자.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찾아나서는 맛 탐험가. 레스토랑과 푸드 기사를 쓰는 칼럼니스트.


이윤경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 취재 협조 팔레 드 고몽(02-546-8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