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진 정수조경 대표
20년 넘게 정보기술(IT) 제품을 만져 온 그의 손은 이제 흙과 더욱 친숙해졌다.가든 콘셉트 디자이너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정수진 정수조경 대표를 만났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탁 트인 전망이 한눈에 들어올 때쯤 풀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서울 강남구 율현동에 위치한 정수조경에 들어서는 길. 모자를 눌러쓰고 한 손에는 잡초를 움켜쥔 남성이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정렬하게 놓인 소나무와 갖가지 꽃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뜻 봐도 꽤 넓어 보이는 공간이다. 첫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인지 인사를 나누기 전 이곳 규모와 눈에 띄는 소나무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 입을 비집고 나왔다.
“이곳 규모는 약 2644.6㎡ 정도 됩니다. 소나무와 다양한 꽃, 풀들이 조화롭게 보이죠? 전체적으로 그렇게 보여도 하나씩 또 떼서 보면 각각 콘셉트가 있어요. 제목이 있는 갤러리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여기도 벌써 6년이 됐네요.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햇수이기도 합니다.”
애정이 가득 묻어난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수진 정수조경 대표다. 스스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그의 과거부터 궁금하다. 비닐하우스 형태로 지어진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은퇴후 대학에서 조경 공부한 학구파
“일찍이 해외 유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66년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공부하다가 삼성전자에 특채로 들어가게 됐죠. 과장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몇 년 다니다가 외국계 IT 회사로 옮기게 됐죠. 거기서 영업부장으로 시작해 대표이사까지 20년을 근무했어요.”
이후 회사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퇴사해 캐나다 통신장비 업체인 노텔네트웍스코리아 대표를 맡아 6년간 지냈다. 몇 년간 방황하다가 퇴직금으로 마련한 율현동의 땅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땅이라는 게 집하고 가까워야 합니다. 30분 내로 갈 수 있어야 하죠.
그래야 자주 가게 되고, 뭐든 하게 된다고 봐요. 여기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죠.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생각해 보면 어머님이 어릴 때 조경 관련 일을 취미삼아 하셨는데, 그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자연을 좋아해 산에 많이 다녔고, 외국 회사에 오래 있다 보니 해외 출장도 잦아 자연과 예술 계통에 흥미가 생겼어요.”
그는 이런 생각이 들자 바로 연암대 평생교육원 조경학과에 들어갔고, 공부를 할수록 취미가 아닌 비즈니스로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그는 월급쟁이 인생에서 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준비만 꼬박 3년 걸렸습니다. 회사 생활과는 다르게 스스로 자금, 경리, 연구·개발(R&D), 구매, 판매, 영업, 홍보 등을 모두 맡다 보니, 인생 중 가장 바쁜 생활을 보내게 된 셈이죠.”
그렇게 3년 후 그는 운 좋게도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지인의 부탁으로 LIG사천연수원 전체 조경 리모델링을 담당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는 가든 콘셉트 디자이너로서 가든 디자이너와 조경 시공 업체를 진두지휘하면서 여러 섹터마다 다른 콘셉트의 정원을 만들고, 소나무와 팔각정이 어우러진 연못을 만들면서 약 9917.3㎡ 규모를 꾸몄다. 2013년 SBS TV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나온 계단식 정원도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엄밀히 말하면 제 일은 조경업과는 다릅니다. 소나무만 가져다 놓고 판매하기보다 뭔가 의미 있는 조경을 하려다 보니, 소나무란 하드웨어와 주변을 꾸밀 소프트웨어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나무를 판매하면서 가든 콘셉트 디자이너로 사업을 지속할 생각입니다.”
정수조경에는 그의 이런 마인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수목인 빗살무늬 소나무 옆에 울릉도 돌로 공간을 채우면서 주변을 꽃으로 꾸며 동서양 융합을 표현하는가 하면, 정원에 아궁이와 식탁을 꾸며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식 정원으로 꾸미기 위해 김장독 묻을 공간과 텃밭 꾸밀 공간도 따로 마련하고, 조명과 음악 같은 소프트웨어적 요소 등 다양한 콘셉트를 접목했다.
“좋은 소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정원은 확 달라집니다. 집값을 생각해서 인테리어에 공을 많이 들이는데, 조경이야말로 비용 대비 효용이 가장 커요. 좋은 나무는 값을 유지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값어치가 올라가게 돼 있습니다.”
정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정원은 어떤 것일까. “우선 소나무 등 한국적인 소재가 있어야 하고, 1년 중 되도록 오래 동안 꽃을 피우는 서양화로 주변을 꾸미면 좋아요. 정원 내 캠프파이어나 텃밭 등 아웃도어 개념이 있으면 더 좋고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관리가 편한 정원’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원은 관리가 어려워지면 아예 포기하게 된다는 게 지론인 그는 “일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사람들도 소나무를 좋아하지만, 한국 소나무만큼 좋은 품종은 없다”고 말한다.
“정원이 생기면 가족이 모입니다”
정 대표는 주로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9대1 비율로 나무를 가져온다. 주로 소나무가 90%를 차지하며, 10%는 회화나무, 팽나무, 소사나무 등으로 구성됐다.
주택용 소나무를 비롯해 빌딩 전면에 설치할 수 있는 대형 건물용 소나무까지 약 100주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정수조경에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특이한 돌도 40여 개나 있다. 정 대표는 “갤러리 형식이라는 이유로 가격을 비싸게 받지 않는다”며 “나무 가격대도 200만 원부터 억대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준비만 3년, 본격적인 사업은 3년 전부터 시작한 정수조경의 평균 연 매출은 10억 원 규모다. 그는 발생하는 영업이익을 조경 사업에 재투자하고 있다.
“정원을 만드니, 손자, 손녀들이 늘 놀러오려고 하고, 커서도 정서적으로 물려주는 게 많습니다. 가족들이 늘 모이는 장소로 탈바꿈하기 때문에 가족 소통 차원에서 정원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봐요. 보통 가족이나 건강에 투자를 할 시간적 여유는 없을 겁니다. 그런 부분을 찾아 주는 게 저의 미션이라고 생각해요.”
정 대표는 은퇴 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늦었다는 생각은 금물”이라며 “앞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여유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다만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완벽한 준비 뒤에 행동에 나설 것”을 조언했다. 조경 사업에 관심이 있는 경우, “관련 공부를 충분히 하는 것은 기본이고 적어도 3~4년은 기다릴 수 있는 자금력이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원재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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