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도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럭셔리’는 존재한다. 그리고 꿈꾸기조차 힘든 이른바 ‘럭셔리카’를 탄다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평범한 자동차 전문 기자가 들려주는 특별한 럭셔리카 리얼 시승기.
자칫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의 시승 소감이 될까 봐 미리 고백하건대 필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럭셔리카를 소유한 적이 없다. 다만 행운이 따르는 직업을 가진 덕분인지 여러 차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대의 ‘럭셔리카’ 자동차를 경험했다. 절반쯤은 은행의 도움을 받아 얻은 집에 살면서, 꿈꾸기조차 힘든 이른바 ‘럭셔리’ 자동차를 탄다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분에 맞지 않는 사치와 호사도 반복되면 역치가 높아지는 법. 벤츠 타고 놀랐던 가슴이 이제는 롤스로이스를 타도 담담하다. 서킷에서 타이어가 녹을 때까지 달렸던 람보르기니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듬직한 롤스로이스, 안정적인 람보르기니
일생 최초의 럭셔리카 탑승은 일간지에서 여행 담당 기자로 일할 당시, 자동차 담당 기자들도 타 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롤스로이스였다. 홍콩의 페닌슐라 호텔의 특급 의전 서비스 덕분이다. ‘홍콩에서의 럭셔리 소비는 이렇게 시작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주차장에서 만난 차는 롤스로이스 팬텀의 익스텐디드 휠베이스 모델이다. 당시 가격은 알지 못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약 6억9000만 원대에 팔린다. 홍콩 페닌슐라 호텔은 이 차를 2006년 14대를 한번에 구입했다. 롤스로이스의 주문생산 방식인 비스포크 프로그램에 따라 외부는 페닌슐라의 독특한 녹색으로 치장했고 VIP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내부에는 핸드타월 보관 공간과 냉장 공간이 각각 마련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매트. 보통의 차라면 매트라고 표현하겠지만, 이 차에는 밤새 내린 소복한 눈을 밟을 때와 같은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밟기가 미안할 정도다. 친절한 기사의 안내에 따라 올라타고 홍콩 공항을 빠져 나와 고가도로를 달린다. 여행 담당 기자의 본분은 잊은 채 차 구경에 빠졌다. 푹신하지만 출렁이지 않는 승차감과 차체는 무겁지만 더 강한 힘으로 밀어주는 엔진은 듬직했다. 제복을 갖춰 입고 운전하는 기사의 뒷모습을 보자니 이것이 바로 ‘럭셔리카’의 소위 ‘끝판왕’인가 싶었다.

이후 취재 분야를 자동차로 옮기니, 보다 다양한 럭셔리카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경기도 화성시의 자동차성능연구소 트랙을 달렸던 람보르기니는 슈퍼카 특유의 매끄럽고 폭발적인 성능을 맛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 공수한 우 핸들의 람보르기니 LP560-4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모양만큼이나 서킷을 움켜쥐고 달렸다. 어색한 우 핸들도 문제는 아니었다. 걸윙 도어를 열고 앉는 순간 몸으로 알고 있던 물리학의 법칙을 살짝 내려놔야 했다. ‘과격한 코너에서는 타이어가 울면서 결국 미끄러질 거야’라는 상황에서도 끈적이는 접지력을 유지했고 ‘시속 200km는 어떤 느낌일까’라는 궁금증도 단박에 풀어줬다. 계기판이 가리키는 시속 200km(사실은 그보다 휠씬 더 높은 속도까지 달렸다)는 서울에서 경기도 외곽을 오가던 시속 120km의 총알택시보다 2배는 빠르지만 10배는 안정적이었다. 역시, 슈퍼카는 타봐야 맛을 안다.


벤츠, 풀 LCD 계기판 인상적
이제는 메르세데스-벤츠를 바라보는 시선도 무던해졌든지 혹은 메르세데스-벤츠보다 훨씬 고가의 차가 많이 등장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2013년 12월 출시한 메르세데스-벤츠 신형 S 클래스를 럭셔리에 포함시켜도 될지 잠시 고민을 했다. 대당 1억2000만 원대지만, 일부 차종은 3억 원에 육박한다. 슈퍼카에 비하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지만 없어서 못 판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과연 이 차가 럭셔리카가 맞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어찌됐건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는 선망의 대상이다. 특히나 새롭게 태어난 S 클래스는 주변 시선을 견뎌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국내에 출시한지 불과 한 달도 안 된 차를, 그것도 흰색을, 심지어 경상남도의 구불거리는 산길을 달리고 있으니 시선을 끌 수 밖에. 바닷가에 잠시 세워두고 거닐다 보면 어김없이 차를 힐끗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시승을 위한 것이지만, 평일 대낮에, 바닷가에서, 고급 차를 타고 와서, 옆에 서 있는 S 클래스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분명 조만간 이 차를 구입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흘간 S 클래스를 타고 돌아다니니 무엇인지 모를 뿌듯함이 생긴다. 마치 내 차인 양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풀 액정표시장치(LCD)로 만든 새로운 계기반이나 앞차와의 간격을 자동 조절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뒷좌석이 젖히고 안마까지 해 주는 안락한 의자는 둘째 문제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도 드러날 수 밖에 없기에, 시선을 끌 수 밖에 없는, 알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

‘럭셔리’라는 단어의 의미는 ‘사치’ 혹은 ‘호사’다. 백과사전에서는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고 적은 물량으로 고급스럽게 만든 상품이라고 정의한다. 연간 수만 대씩 찍어 내는 자동차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럭셔리 자동차에는 ‘수작업’, ‘소량 생산’, ‘한정판’ 같은 말이 붙는다. 그렇게 따지자면 앞서 얘기한 메르세데스-벤츠의 S 클래스는 해당되지 않는다.

최근 수입차업계에서는 ‘다음 차는 무엇?’이 화두다. 불티나게 팔린 S 클래스의 다음이 무엇이 될 것이냐는 질문이다. 아마도 S 클래스보다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차를 소비자들이 원할 것인데 어떤 브랜드가 이 시장을 차지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다. 그래서 벤츠는 마이바흐 브랜드를 살려 냈고 폭스바겐 그룹은 벤틀리, 람보르기니를 밀어 주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페라리와 마세라티는 한국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요즈음 이런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에서도 많이 파는 데 재미가 들렸는지 자꾸만 저렴한(?) 차를 내놓는다. 2억 원에서 3억 원 사이가 타깃이다. 페라리가 4도어 쿠페를 만들었고 포르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벤틀리가 뛰어들었다. 엔진은 12기통에서 8기통으로 다시 6기통으로 줄었고 차 값도 5억에서 3억으로 다시 2억 원대로 내렸다. 경차에서는 10만 원 차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런 럭셔리 자동차에서는 1000만 원 차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다른 가치를 제공해 준다면 말이다.


페라리, 가족을 위한 슈퍼카
벤틀리를 시승할 때 독특한 경험을 했다. 이른바 도로가 모세의 기적처럼 열렸다. 벤틀리 본사가 위치한 서울 영동대교 인근에서 올림픽대로로 올라서자 주변 차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다지 가까이 붙은 것도 아닌데 앞 차는 자꾸만 옆 차선으로 자리를 옮긴다. 신호등에 걸렸을 때도 독특하다. 장인의 손길이 한 땀 한 땀 묻어 있는 실내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녹색등이 들어 왔다. 옆 차선에 있던 차는 이미 한참을 달려 나갔지만 나의 뒤차는 조용하다.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일면 씁쓸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현실이다. 혹여나 이런 차를 만나 정면충돌이라도 할까 봐 대물보험 한도를 10억까지 올리는 나라다.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며 도로를 달렸지만 만약 이 차를 내가 구입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겠다며 시원하게 김칫국 마시는 결심을 한다.
페라리가 최초로 만든 사륜구동 슈퍼카, 가족을 위한 페라리 FF를 시승하면서는 강남의 한 카페에서 급히 결성된 동호인 모임에도 잠시 들렀다. 벌서 4년 전 일이지만 이들은 럭셔리카 시장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사실은 페라리 FF에 대한 한탄에 가까웠다. “페라리마저 가족용 차를 내놓다니”, “FF가 4억 원대에, 합리적인 가격에 나오다니 누구나 살 수 있는 시대다”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공감도, 동조도 할 수 없었지만 전부 30~40대들의 모임이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레인지로버, 부드러운 주행 감동
럭셔리카 시장에서도 요즘 화두는 SUV다. 포르쉐도 람보르기니도 벤틀리도 SUV를 만든다. 이들이 노리는 시장은 현재 판매하는 고급 SUV의 다음 수요다.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 못지않은 가격대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가 물량이 부족해 예약하고 6개월을 기다리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레인지로버를 시승하던 날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딸은 카시트에서 힘차게 울어댔다. 아기에게 럭셔리카의 존재감은 제로다. 치마를 입은 와이프에게도 높은 SUV는 별로다. 에어서스펜션을 조절해 차고를 낮췄지만 그저 그렇단다. 이 차가 무려 1억8000만원대라고 설명을 해 줬지만 상관없다는 눈치다.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린 필자만 부드러우면서도 고속에서도 꽉 잡아 주는 하체와 큰 차체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서 리터당 14km를 넘나들던 고속연비에 감동을 받았다. 눈에 보이는, 손에 닿는 곳 하나하나에 모두 ‘럭셔리’를 붙인 정성에서도 높은 만족감을 느꼈다. 정작 차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마을버스 운전석과 같은 높이에 있는 레인지로버의 운전석은 그다지 럭셔리와 멀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가장 우아한 사륜구동 SUV인 올 뉴 레인지로버를 타면서도 신형 S 클래스를 타고 지방을 돌아다닐 때, 벤틀리를 타고 강남대로를 벗어나 올림픽대로에 들어섰을 때의 오묘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일장춘몽 같은 시승이었지만 소위 ‘럭셔리’라고 부르는 자동차에서는 비슷한 감성이 느껴진다. 억지로 표현하자면 이 차를 타고 분식집에 김밥과 라면을 먹으러 가도 꽤 럭셔리해 보일 것 같은 감성이다. 슬리퍼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차에서 내려도 마음만은 두둑한 솜사탕 같은 자신감이다. 지극히 속물스러운 소감이지만 어차피 럭셔리는 자본주의의 꽃이 아니던가.

100g의 쇠가, 100g의 카본이 100g의 금보다 더 비싸게 팔려도 할 말 없는 시장이 럭셔리 시장이다.

레인지로버에서 내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천억 대 자산가도 아무리 비싼 차를 사 봐야 고작 10억 원. 수백억 자산가도 10억 원이다. 더 비싼 차는 없다. 그러니 럭셔리 자동차는 더 비싸도 된다. 그래도 팔린다면 얼마든지 비싸게 팔아야 한다. 럭셔리카가 있어 대중차 개발의 부담이 줄어들고 신기술 대중화가 빨라진다면 말이다. 자산가들이 럭셔리카를 구입하는 자체가 보다 안전한 탈 것을 위한 일종의 기부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에 이만큼 합리적이고 칭찬받아 마땅한 소비가 어디 있을까.


이다일 오토데일리 기자